9회 마지막 공격에서 [김은식의 이사만루]
수정2025-10-30 08:00등록2025-10-30 08:00
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element.0:00지난 2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5 프로야구 KBO리그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1차전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관중들이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김은식 | 작가응원하는 야구팀이 서너점 넘게 뒤진 9회 마지막 공격에서 주자 없이 아웃 두개를 잡히면, 지하철역 앞 줄 서는 시간이라도 좀 아껴보자는 마음으로 주섬주섬 자리를 뜨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마저 잡히지 않는다면 출입구 밖으로 아주 나서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그 무렵이면 그라운드가 시야 언저리에 걸치는 출입구 한쪽에 양손에는 이것저것 챙겨 든 채 몸과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꺾고 선 어정쩡한 한 무리가 부대끼곤 한다. 아마도 그중에는 동점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출루와 홈런의 개수를 세느라 조용히 분주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안타 한개가 터져 나오면, 어떤 이들은 몸을 다시 돌려세우고 한두걸음 그라운드로 다가서며 마음에 없는 불평을 내뱉기도 한다. 또다시 희망고문이 시작되었다고.광고좌절한 기억보다 바라던 것이 이루어진 기억이 더 많은 사람이란 없다. 그리고 희망은 힘이 세지만 깨진 희망이 남기는 상처는 깊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될 만한 일과 그렇지 못할 일을 나누는 데 먼저 마음을 쓰고, 무엇을 시작하건 기대하지 않으려 애쓰며 마음속 가장 여린 곳을 동여맨다. 그렇게 우리는 포기하면 편하다고 말하고, 무뎌지고 거칠어지며 평온하게 말라간다.하지만 한조각이라도 남아 있다면 버리지는 못하는 것이 희망이고, 차라리 고문이라고 투덜대면서도 끝내 마음을 거두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다. 누구나 패색을 느낄 만한 상황을 백번 만난다면 얼추 아흔아홉번 정도는 지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의 기억 속에서는 ‘약속의 8회’라는 둥 ‘도하의 기적’이라는 둥 하필 한두개 될까 말까 한 대역전승의 순간이 비집고 올라오고, ‘설마’ 하고 짓누르는 이성을 ‘혹시’ 하는 미련이 밀어 올려 들썩인다. 야구 한경기가 삶에서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이겠는가만, 그 자리에서도 어쩔 줄 몰라 몸과 마음을 뒤틀어대는 사람들과 함께 우리는 울고 웃는다.광고광고아흔아홉번쯤 울다가 한번 웃은 끝에 스스로 묻는다. 오늘 나를 살게 하는 것은 아흔아홉번의 좌절을 잘 달랜 슬기로운 포기인가, 아니면 아흔아홉번 상처받고도 다시 기대를 걸어보게 만드는 단 한번 짜릿한 대역전극의 무책임한 기억인가.희망이 고문한다면, 기꺼이 굴복해 손을 잡자. 다만 희망과 절망이 헛바퀴 돌며 제풀에 지치지 않도록 깨진 희망의 조각이나마 모아서 쌓아 올리자. 한두점 뒤지면 어깨가 축 처지는 팀과 열점을 빼앗기고도 눈에 불을 켜는 팀의 앞날이 어땠는지 떠올리며 오늘의 좌절을 딛고 서기로 하자.광고세번의 민주정부에서 못 한 일이 네번째라고 쉽겠으며 검찰개혁만 해도 숨넘어갈 지경에 사법개혁은 또 어느 세월에 하겠는가. 하지만 하루 이기고 하루 지는 공놀이 말고 어차피 언젠가 꼭 함께 이루어야만 할 소망에 대한 것이라면, 어차피 포기 못 할 것을 굳이 포기하려 마음 쓰지 말기로 하자. 이기고 싶은 마음은 접을 수 있지만, 지지 말아야 할 싸움은 포기할 수도 없다.이룰 수 없는 꿈은 슬프다는 말이 문득 떠오르는, 시월의 마지막 밤이 다가온다. 그 밤을 지나고 한달만 더 살아내면 내란의 그 밤도 돌아온다. 지루하고 답답했을망정 그 한해 사이에 서게 된 자리가 다르지 않다고 말할 이는 없으리라. 버틴다고 다 이기는 건 아니지만, 버티고 쌓아 올리며 나아가지 않고도 이기는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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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5 프로야구 KBO리그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1차전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관중들이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응원하는 야구팀이 서너점 넘게 뒤진 9회 마지막 공격에서 주자 없이 아웃 두개를 잡히면, 지하철역 앞 줄 서는 시간이라도 좀 아껴보자는 마음으로 주섬주섬 자리를 뜨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마저 잡히지 않는다면 출입구 밖으로 아주 나서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그 무렵이면 그라운드가 시야 언저리에 걸치는 출입구 한쪽에 양손에는 이것저것 챙겨 든 채 몸과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꺾고 선 어정쩡한 한 무리가 부대끼곤 한다. 아마도 그중에는 동점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출루와 홈런의 개수를 세느라 조용히 분주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안타 한개가 터져 나오면, 어떤 이들은 몸을 다시 돌려세우고 한두걸음 그라운드로 다가서며 마음에 없는 불평을 내뱉기도 한다. 또다시 희망고문이 시작되었다고.
좌절한 기억보다 바라던 것이 이루어진 기억이 더 많은 사람이란 없다. 그리고 희망은 힘이 세지만 깨진 희망이 남기는 상처는 깊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될 만한 일과 그렇지 못할 일을 나누는 데 먼저 마음을 쓰고, 무엇을 시작하건 기대하지 않으려 애쓰며 마음속 가장 여린 곳을 동여맨다. 그렇게 우리는 포기하면 편하다고 말하고, 무뎌지고 거칠어지며 평온하게 말라간다.
하지만 한조각이라도 남아 있다면 버리지는 못하는 것이 희망이고, 차라리 고문이라고 투덜대면서도 끝내 마음을 거두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다. 누구나 패색을 느낄 만한 상황을 백번 만난다면 얼추 아흔아홉번 정도는 지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의 기억 속에서는 ‘약속의 8회’라는 둥 ‘도하의 기적’이라는 둥 하필 한두개 될까 말까 한 대역전승의 순간이 비집고 올라오고, ‘설마’ 하고 짓누르는 이성을 ‘혹시’ 하는 미련이 밀어 올려 들썩인다. 야구 한경기가 삶에서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이겠는가만, 그 자리에서도 어쩔 줄 몰라 몸과 마음을 뒤틀어대는 사람들과 함께 우리는 울고 웃는다.
아흔아홉번쯤 울다가 한번 웃은 끝에 스스로 묻는다. 오늘 나를 살게 하는 것은 아흔아홉번의 좌절을 잘 달랜 슬기로운 포기인가, 아니면 아흔아홉번 상처받고도 다시 기대를 걸어보게 만드는 단 한번 짜릿한 대역전극의 무책임한 기억인가.
희망이 고문한다면, 기꺼이 굴복해 손을 잡자. 다만 희망과 절망이 헛바퀴 돌며 제풀에 지치지 않도록 깨진 희망의 조각이나마 모아서 쌓아 올리자. 한두점 뒤지면 어깨가 축 처지는 팀과 열점을 빼앗기고도 눈에 불을 켜는 팀의 앞날이 어땠는지 떠올리며 오늘의 좌절을 딛고 서기로 하자.
세번의 민주정부에서 못 한 일이 네번째라고 쉽겠으며 검찰개혁만 해도 숨넘어갈 지경에 사법개혁은 또 어느 세월에 하겠는가. 하지만 하루 이기고 하루 지는 공놀이 말고 어차피 언젠가 꼭 함께 이루어야만 할 소망에 대한 것이라면, 어차피 포기 못 할 것을 굳이 포기하려 마음 쓰지 말기로 하자. 이기고 싶은 마음은 접을 수 있지만, 지지 말아야 할 싸움은 포기할 수도 없다.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프다는 말이 문득 떠오르는, 시월의 마지막 밤이 다가온다. 그 밤을 지나고 한달만 더 살아내면 내란의 그 밤도 돌아온다. 지루하고 답답했을망정 그 한해 사이에 서게 된 자리가 다르지 않다고 말할 이는 없으리라. 버틴다고 다 이기는 건 아니지만, 버티고 쌓아 올리며 나아가지 않고도 이기는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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