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살아야 한다, 비록 꿈일지라도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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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5-10-10 12:05등록2025-10-10 12:00

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element.0:00녹색 광선 l 강석희 지음, 돌베개(2025)대략 십여년, 나는 평생 가장 건강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저 정의는 매우 주관적이다. 겉으로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내 몸은, 숱한 진단과 투약, 투병으로 일관했다. 중학생 때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드러기와 발진, 각종 통증에 시달렸고 20대 초반에는 항원항체반응이 일어나지 않으니, 무균실에 들어가라는 진단을 받았다. 무얼 먹어도 소화 시키지 못했고 과민성 대장염으로 장거리 버스는 엄두도 못 냈으며 몸무게는 채 40킬로가 되지 않았다. 걷는 것도 오래 앉아 있는 것도, 쉽지 않았다. 믿지 않는 신을 끝없이 원망했고, 뱃속 장기를 꺼내 깨끗한 물에 씻어서 다시 집어넣는 꿈을 매일 꾸었다.‘녹색 광선’은 비장애인으로 정상 이데올로기를 장착하고 순조롭게 살던 주인공 연주가 설렘과 우월감이 당연했던 삶을 잃고 ‘섭식 장애’라는 진단을 받은 후, ‘지체 장애’인 이모와 함께 살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게 되는 이야기다. 어릴 적 연주에게 이모는 가장 힘센 사람이었고, 이모의 전동 휠체어는 제일 좋은 장난감이었다. 그러나 도색으로 잠시 무용해진 경사로 앞에서 일곱 살 연주는 처음으로 이모의 뒷모습을 본다. 이후 이모의 블로그에 담긴 ‘거짓말’을 읽은 연주는 하기 싫은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이모의 삶에 분함을 느낀다. “왜 가질 수 없는 걸 갖고 싶어 하는지. 그리하여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드는지. 나는 그게 화가 났다.”나는 저 문장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왜 마땅히 ‘가질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지, 가지면 안 되는지, 꿈꾸면 안 되는지, 그게 정말 생떼인지 묻고 싶었다. 장애인이 꾸는 꿈과 비장애인이 꾸는 꿈은 달라야 하는가? 장애인은 비장애인이 꾸는 꿈을 꾸면 안 되는 건가? 왜 안 될까? 그런 건 누가 정하는 걸까? 문제는 장애인의 몸이 아니라, 장애를 빌미 삼아 구별하고 낙인을 찍고 장애가 있어서 할 수 없다고, 가질 수 없다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비장애 중심주의다. 있는 장애인을 없는 존재로 만드는 비장애 중심주의가 몸의 장애보다 더한 고통과 차별, 폭력을 양산한다.광고소설은 수없는 ‘씹뱉’과 ‘먹토’ 끝에 연주가 커터칼로 무릎에 상처를 그리는 ‘당사자’가 되고 난 후 새롭게 보게 된 세상을 쫓아간다. 이모 윤재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라 자신만의 욕망을 가진 존재였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였으며,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이었다. 이모는 자신을 ‘낫게’ 할 희망 하나로 ‘사랑과 폭력, 보호와 구속, 신념과 집착’이 뒤섞여 요동치는 집에서 ‘탈출’한다. 이모는 비장애 중심주의가 만든 숱한 장애물과 싸우고 타협하면서 장애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구축해 간다. 소설 속 윤재는 연주가 그토록 찾아 헤맨 단단하고 빛나는 검은 돌이다.나는 이 소설의 3부와 4부를 꿈으로 읽었다. 연주가 동자승에게 검은 돌을 받고, 연주의 ‘생활 트레킹’ 친구들이 검은 돌 ‘묵묵’을 돌보며 연주와 이어진다는 설정과 그 설정을 뒷받침하는 디테일은 연주가 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빛, 찰나의 ‘녹색 광선’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꿈 같아도 이모가 다시 눈을 뜬 부분도 수긍할 수 있었다. 살아야 한다. 비록 그것이 꿈일지라도, 포기하지 않은 꿈은 “어차피 모든 것이 말끔하게 좋아질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연주를 살게 하고, 나 같은 사람도 ‘내 인생에서 가장 건강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한다. 그것이면 충분하다.광고광고송수연 청소년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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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광선 l 강석희 지음, 돌베개(2025)

대략 십여년, 나는 평생 가장 건강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저 정의는 매우 주관적이다. 겉으로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내 몸은, 숱한 진단과 투약, 투병으로 일관했다. 중학생 때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드러기와 발진, 각종 통증에 시달렸고 20대 초반에는 항원항체반응이 일어나지 않으니, 무균실에 들어가라는 진단을 받았다. 무얼 먹어도 소화 시키지 못했고 과민성 대장염으로 장거리 버스는 엄두도 못 냈으며 몸무게는 채 40킬로가 되지 않았다. 걷는 것도 오래 앉아 있는 것도, 쉽지 않았다. 믿지 않는 신을 끝없이 원망했고, 뱃속 장기를 꺼내 깨끗한 물에 씻어서 다시 집어넣는 꿈을 매일 꾸었다.

‘녹색 광선’은 비장애인으로 정상 이데올로기를 장착하고 순조롭게 살던 주인공 연주가 설렘과 우월감이 당연했던 삶을 잃고 ‘섭식 장애’라는 진단을 받은 후, ‘지체 장애’인 이모와 함께 살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게 되는 이야기다. 어릴 적 연주에게 이모는 가장 힘센 사람이었고, 이모의 전동 휠체어는 제일 좋은 장난감이었다. 그러나 도색으로 잠시 무용해진 경사로 앞에서 일곱 살 연주는 처음으로 이모의 뒷모습을 본다. 이후 이모의 블로그에 담긴 ‘거짓말’을 읽은 연주는 하기 싫은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이모의 삶에 분함을 느낀다. “왜 가질 수 없는 걸 갖고 싶어 하는지. 그리하여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드는지. 나는 그게 화가 났다.”

나는 저 문장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왜 마땅히 ‘가질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지, 가지면 안 되는지, 꿈꾸면 안 되는지, 그게 정말 생떼인지 묻고 싶었다. 장애인이 꾸는 꿈과 비장애인이 꾸는 꿈은 달라야 하는가? 장애인은 비장애인이 꾸는 꿈을 꾸면 안 되는 건가? 왜 안 될까? 그런 건 누가 정하는 걸까? 문제는 장애인의 몸이 아니라, 장애를 빌미 삼아 구별하고 낙인을 찍고 장애가 있어서 할 수 없다고, 가질 수 없다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비장애 중심주의다. 있는 장애인을 없는 존재로 만드는 비장애 중심주의가 몸의 장애보다 더한 고통과 차별, 폭력을 양산한다.

소설은 수없는 ‘씹뱉’과 ‘먹토’ 끝에 연주가 커터칼로 무릎에 상처를 그리는 ‘당사자’가 되고 난 후 새롭게 보게 된 세상을 쫓아간다. 이모 윤재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라 자신만의 욕망을 가진 존재였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였으며,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이었다. 이모는 자신을 ‘낫게’ 할 희망 하나로 ‘사랑과 폭력, 보호와 구속, 신념과 집착’이 뒤섞여 요동치는 집에서 ‘탈출’한다. 이모는 비장애 중심주의가 만든 숱한 장애물과 싸우고 타협하면서 장애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구축해 간다. 소설 속 윤재는 연주가 그토록 찾아 헤맨 단단하고 빛나는 검은 돌이다.

나는 이 소설의 3부와 4부를 꿈으로 읽었다. 연주가 동자승에게 검은 돌을 받고, 연주의 ‘생활 트레킹’ 친구들이 검은 돌 ‘묵묵’을 돌보며 연주와 이어진다는 설정과 그 설정을 뒷받침하는 디테일은 연주가 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빛, 찰나의 ‘녹색 광선’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꿈 같아도 이모가 다시 눈을 뜬 부분도 수긍할 수 있었다. 살아야 한다. 비록 그것이 꿈일지라도, 포기하지 않은 꿈은 “어차피 모든 것이 말끔하게 좋아질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연주를 살게 하고, 나 같은 사람도 ‘내 인생에서 가장 건강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한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송수연 청소년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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