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새벽배송 규제 논란…‘소비자 편익’과 ‘노동자 건강권’ 사이
박태우기자수정2025-11-02 06:00등록2025-11-02 06:00
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element.0:00택배과로사대책위와 고 정슬기씨 아버지 정금석 씨가 지난해 731일 오전 서울 중구 근로복지공단 서울지역본부 앞에서 연이은 쿠팡 과로사고, 정부가 나서 줄 것을 촉구하며 로켓배송 과로사 피해자 고 정슬기씨 산재신청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택배 사회적대화기구’에서 전국택배노동조합이 ‘심야시간대(자정~새벽 5시) 배송 제한’을 제안하면서 새벽배송 규제를 둘러싼 논쟁이 커지고 있다. 새벽배송 규제에 대한 주장은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심야노동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건강권 침해를 근거로 한다. 하지만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다음날 아침에 집앞으로 배송해주는 새벽배송이 이미 소비자들의 삶에 깊숙히 들어온 상황이라, 소비자들의 불편을 가중시킨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쿠팡이 쏘아올린 ‘야간노동’광고논란의 근원적인 배경엔 쿠팡과 같은 새로운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의 등장이 있다. 2014년 쿠팡은 전날 주문하면 다음날 배송하는 로켓배송을 시작했다. 컬리 역시 2015년 신선식품을 중심으로 새벽에 고객에게 배달하는 ‘샛별배송’을 시작했다. 쿠팡도 2019년 ‘로켓프레시’ 서비스로 새벽배송 시장에 참전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새벽배송 시장은 규모를 더욱 키웠다. 새벽배송을 위한 배송기사뿐만 아니라 물류센터 근무자 등 야간노동을 하는 이들은 계속 증가했다. 쿠팡의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쿠팡풀필먼트서비스 직접고용 인원(고용노동부 고용형태공시 기준)은 2018년 6068명에 그쳤지만, 올해 5만7919명으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쿠팡의 야간 고정 배송기사도 1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야간노동이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있다. 야간노동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규정한 발암물질이다. 뇌심혈관 질환뿐만 아니라, 수면장애로 인한 우울증에도 영향을 준다. 하지만 한국의 근로기준법엔 야간(밤 10시부터 다음날 6시까지)에 일하면 1.5배의 가산수당을 지급하게 하는 것 말고는 별도의 규제가 없다. 이는 원래 사용자들에게 금전적 부담을 줘 야간근로를 줄일 목적이었지만, 오히려 노동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기 위해 야간근로를 선택하는 유인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광고광고이마저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닌 배송기사(특수고용노동자)에겐 적용이 되지 않는다. 주 52시간 노동상한제도 마찬가지다.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인 배송기사들이 급증한 배경에는 쿠팡의 경영상 변화가 영향을 줬다. 쿠팡이 처음 로켓배송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배송기사는 쿠팡이 직접고용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인 ‘쿠팡맨’(현 쿠팡친구)이었다. 그러나 2021년 쿠팡의 배송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가 택배사업을 시작하면서 대리점을 통해 특수고용 형태의 배송기사(‘퀵플렉서’)를 대폭 늘렸다.쿠팡은 배송기사에게 연장·야간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됐고, 주 52시간 이상 일을 시킬 수 있었다. 고정급이 아니라 건당 수수료를 받는 만큼, 배송기사들은 물량을 계속 늘렸다. 새벽배송 마감에 대한 심리적 압박도 컸다. 이후 쿠팡에서도 배송기사 과로사 문제가 논란이 됐다. 지난해 5월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야간고정 퀵플렉서로 일했던 정슬기(당시 41살)씨는 주 6일, 저녁 8시30분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주 평균 63시간 일하다 자택에서 심근경색으로 숨진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정씨가 쿠팡로지스틱스 쪽과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 중에는 쿠팡로지스틱스 쪽이 추가 요청한 배송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개처럼 뛰고 있다”고 말이 남아 있기도 했다. 택배노조는 정씨 외에 알려지지 않은 과로사가 쿠팡에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광고쿠팡 배송전문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쪽 담당자가 쿠팡 퀵플렉스로 일하는 정슬기(41)씨에게 직접 업무지시하는 내용의 문자 메세지 갈무리. 전국택배노동조합 제공심야노동 규제와 소비자 편익택배노조가 심야시간대(자정~새벽5시) 배송을 제한하자고 한 것도 최소한의 규제를 만들자는 취지였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새벽배송을 폐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배송품목 제한을 두는 방식으로 배송물량을 줄여 소비자의 편익과 노동자 건강권의 균형을 찾아보자고 제안한 것”이라고 했다.하지만 이런 목소리가 ‘새벽배송 금지’로 와전되며 논란이 확산됐다. 새벽배송이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된 만큼, 이를 규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새벽배송 금지’를 추진하는 것은 새벽배송을 활용하는 생활인들에게도, 필요한 돈을 벌어야 하는 근로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노량진 수산시장의 새벽 개장, 편의점의 24시간 개점, 야간 경비업무 등 다른 수많은 업종도 못하게 금지해야 한다는 말인지 묻고 싶다”고 주장했다.광고한 전 대표의 주장은 ‘야간노동의 필수성’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는 반론이 나온다. 새벽배송이 노동자들의 건강권 침해를 ‘용인’할 만큼 우리 사회에 필수적인 것이냐는 것이다. 이승윤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새벽배송은 필수의 영역이 아니라 편의의 영역”이라며 “의료·치안·소방 등은 안전망 기능을 수행하고, 수산시장 새벽 경매는 유통구조상 필연성을 갖는다. 하지만 택배 새벽배송은 기능적 불가피성이 없다”고 주장했다.유럽에서는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이유로 ‘불필요한 야간노동’은 금지돼야 한다는 원칙이 이미 존재한다. 프랑스 노동법전은 “야간노동은 예외적으로만 허용된다”고 명문화하고 있다. “사업의 계속성 또는 사회적 이익을 갖는 업무의 계속성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만 야간근로가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비슷한 취지로 유럽연합의 근로시간 지침은 통상 야간(자정~새벽 5시)에 3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을 ‘야간노동자’로 규정하고, 이들의 노동시간은 하루 8시간을 넘기지 못하게 하고 있다.노무제공자 야간노동 규제 어떻게?국제노동기구(ILO)가 협약을 통해 회원국의 야간근로를 규제한 대상은 아동·여성(1919년), 그리고 제빵업(1925년) 순으로 이어졌다. 빵을 사먹는 소비자들의 편익을 고려하더라도 제빵노동자들의 건강은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마찬가지로 새벽배송을 하더라도 노동자들의 건강권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특수고용직 배송기사들의 건강이 나빠지면 쿠팡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손실을 우리 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한다”며 “최소한 교대제 도입 등을 통해 야간 고정근무를 하지 못하도록 규제해야 하고, 새벽배송도 줄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야간노동에 대한 규제를 국정과제로 삼고 있는 노동부 역시 ‘실 근로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에서 구체적인 대안을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노무제공자들의 야간노동을 어떻게 규율할지가 고민의 영역이다.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야간노동이라는 유해·위험으로부터의 보호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만 국한돼서는 안된다”며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 규율하든지, 일터 권리보장 기본법에 규정한 뒤 업종별 표준계약서 등의 방식으로 규율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박태우 기자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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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과로사대책위와 고 정슬기씨 아버지 정금석 씨가 지난해 731일 오전 서울 중구 근로복지공단 서울지역본부 앞에서 연이은 쿠팡 과로사고, 정부가 나서 줄 것을 촉구하며 로켓배송 과로사 피해자 고 정슬기씨 산재신청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택배 사회적대화기구’에서 전국택배노동조합이 ‘심야시간대(자정~새벽 5시) 배송 제한’을 제안하면서 새벽배송 규제를 둘러싼 논쟁이 커지고 있다. 새벽배송 규제에 대한 주장은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심야노동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건강권 침해를 근거로 한다. 하지만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다음날 아침에 집앞으로 배송해주는 새벽배송이 이미 소비자들의 삶에 깊숙히 들어온 상황이라, 소비자들의 불편을 가중시킨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쿠팡이 쏘아올린 ‘야간노동’
논란의 근원적인 배경엔 쿠팡과 같은 새로운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의 등장이 있다. 2014년 쿠팡은 전날 주문하면 다음날 배송하는 로켓배송을 시작했다. 컬리 역시 2015년 신선식품을 중심으로 새벽에 고객에게 배달하는 ‘샛별배송’을 시작했다. 쿠팡도 2019년 ‘로켓프레시’ 서비스로 새벽배송 시장에 참전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새벽배송 시장은 규모를 더욱 키웠다. 새벽배송을 위한 배송기사뿐만 아니라 물류센터 근무자 등 야간노동을 하는 이들은 계속 증가했다. 쿠팡의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쿠팡풀필먼트서비스 직접고용 인원(고용노동부 고용형태공시 기준)은 2018년 6068명에 그쳤지만, 올해 5만7919명으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쿠팡의 야간 고정 배송기사도 1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야간노동이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있다. 야간노동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규정한 발암물질이다. 뇌심혈관 질환뿐만 아니라, 수면장애로 인한 우울증에도 영향을 준다. 하지만 한국의 근로기준법엔 야간(밤 10시부터 다음날 6시까지)에 일하면 1.5배의 가산수당을 지급하게 하는 것 말고는 별도의 규제가 없다. 이는 원래 사용자들에게 금전적 부담을 줘 야간근로를 줄일 목적이었지만, 오히려 노동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기 위해 야간근로를 선택하는 유인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마저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닌 배송기사(특수고용노동자)에겐 적용이 되지 않는다. 주 52시간 노동상한제도 마찬가지다.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인 배송기사들이 급증한 배경에는 쿠팡의 경영상 변화가 영향을 줬다. 쿠팡이 처음 로켓배송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배송기사는 쿠팡이 직접고용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인 ‘쿠팡맨’(현 쿠팡친구)이었다. 그러나 2021년 쿠팡의 배송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가 택배사업을 시작하면서 대리점을 통해 특수고용 형태의 배송기사(‘퀵플렉서’)를 대폭 늘렸다.
쿠팡은 배송기사에게 연장·야간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됐고, 주 52시간 이상 일을 시킬 수 있었다. 고정급이 아니라 건당 수수료를 받는 만큼, 배송기사들은 물량을 계속 늘렸다. 새벽배송 마감에 대한 심리적 압박도 컸다. 이후 쿠팡에서도 배송기사 과로사 문제가 논란이 됐다. 지난해 5월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야간고정 퀵플렉서로 일했던 정슬기(당시 41살)씨는 주 6일, 저녁 8시30분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주 평균 63시간 일하다 자택에서 심근경색으로 숨진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정씨가 쿠팡로지스틱스 쪽과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 중에는 쿠팡로지스틱스 쪽이 추가 요청한 배송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개처럼 뛰고 있다”고 말이 남아 있기도 했다. 택배노조는 정씨 외에 알려지지 않은 과로사가 쿠팡에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쿠팡 배송전문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쪽 담당자가 쿠팡 퀵플렉스로 일하는 정슬기(41)씨에게 직접 업무지시하는 내용의 문자 메세지 갈무리. 전국택배노동조합 제공
심야노동 규제와 소비자 편익
택배노조가 심야시간대(자정~새벽5시) 배송을 제한하자고 한 것도 최소한의 규제를 만들자는 취지였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새벽배송을 폐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배송품목 제한을 두는 방식으로 배송물량을 줄여 소비자의 편익과 노동자 건강권의 균형을 찾아보자고 제안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가 ‘새벽배송 금지’로 와전되며 논란이 확산됐다. 새벽배송이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된 만큼, 이를 규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새벽배송 금지’를 추진하는 것은 새벽배송을 활용하는 생활인들에게도, 필요한 돈을 벌어야 하는 근로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노량진 수산시장의 새벽 개장, 편의점의 24시간 개점, 야간 경비업무 등 다른 수많은 업종도 못하게 금지해야 한다는 말인지 묻고 싶다”고 주장했다.
한 전 대표의 주장은 ‘야간노동의 필수성’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는 반론이 나온다. 새벽배송이 노동자들의 건강권 침해를 ‘용인’할 만큼 우리 사회에 필수적인 것이냐는 것이다. 이승윤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새벽배송은 필수의 영역이 아니라 편의의 영역”이라며 “의료·치안·소방 등은 안전망 기능을 수행하고, 수산시장 새벽 경매는 유통구조상 필연성을 갖는다. 하지만 택배 새벽배송은 기능적 불가피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유럽에서는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이유로 ‘불필요한 야간노동’은 금지돼야 한다는 원칙이 이미 존재한다. 프랑스 노동법전은 “야간노동은 예외적으로만 허용된다”고 명문화하고 있다. “사업의 계속성 또는 사회적 이익을 갖는 업무의 계속성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만 야간근로가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비슷한 취지로 유럽연합의 근로시간 지침은 통상 야간(자정~새벽 5시)에 3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을 ‘야간노동자’로 규정하고, 이들의 노동시간은 하루 8시간을 넘기지 못하게 하고 있다.
노무제공자 야간노동 규제 어떻게?
국제노동기구(ILO)가 협약을 통해 회원국의 야간근로를 규제한 대상은 아동·여성(1919년), 그리고 제빵업(1925년) 순으로 이어졌다. 빵을 사먹는 소비자들의 편익을 고려하더라도 제빵노동자들의 건강은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마찬가지로 새벽배송을 하더라도 노동자들의 건강권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특수고용직 배송기사들의 건강이 나빠지면 쿠팡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손실을 우리 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한다”며 “최소한 교대제 도입 등을 통해 야간 고정근무를 하지 못하도록 규제해야 하고, 새벽배송도 줄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야간노동에 대한 규제를 국정과제로 삼고 있는 노동부 역시 ‘실 근로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에서 구체적인 대안을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노무제공자들의 야간노동을 어떻게 규율할지가 고민의 영역이다.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야간노동이라는 유해·위험으로부터의 보호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만 국한돼서는 안된다”며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 규율하든지, 일터 권리보장 기본법에 규정한 뒤 업종별 표준계약서 등의 방식으로 규율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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