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평등은 줄었는데, 왜 우리는 절망하나 [세상읽기]
수정2025-11-10 08:00등록2025-11-10 08:00
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element.0:00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누리집 갈무리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복지국가재구조화연구센터장광고조금 뻔한 질문을 해보자. 소득 불평등이 심각한가? 주저 없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질문을 조금 바꾸자. 소득 불평등은 심각해지고 있나? 역시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물론 자산 불평등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산 불평등의 뿌리는 결국 소득 불평등에 있다. 쓰는 것보다 더 많은 소득이 있어야 자산 축적이 가능하다. 그렇게 축적한 자산에서 발생하는 소득이 소득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소득 불평등이 경제적 불평등의 정도를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인 이유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염려하는 많은 사람이 심각해지는 소득 불평등이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그러나 국내외에서 발표된 소득 불평등 지표들은 일반적 인식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료를 보면,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지니계수든, 팔마 지수든 어떤 지수를 사용해도, 지난 10년간 완화되었다. 소득 불평등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며,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한다는 ‘상위 10%의 소득 점유율을 하위 40%의 점유율로 나눈 값’(팔마 지수)도 2011년 1.7배에서 2022년 1.2배로 29.4%나 감소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지니계수도 동기간 0.388에서 0.324로 16.5% 감소했다. 수치만 보면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꾸준히 완화된 셈이다.광고광고그런데 왜 평범한 사람들은 소득 불평등, 더 나아가 사회 전반의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고 믿는 것일까? 2022년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경제적 양극화가 매우 심각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무려 81.5%에 달했다. 소득 불평등이 낮아지는데도, 사람들의 인식은 오히려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역설은 단순히 재분배를 늘린다고 해소될 문제가 아니다. 지난 10년간 소득 불평등이 완화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복지지출 증가였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지출은 2010년 7.4%에서 2022년 16.2%(2024년 15.3%)로 무려 114.9%나 증가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불평등이 더 심각해졌다고 믿고 있다.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그 이유가 사회경제적 계급이 고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점점 더 자신의 현재 상태를 벗어날 수 없고, 심지어 더 나빠졌다고 느끼고 있다. 세가지 지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중위소득의 75~200%에 해당하는 중산층 가구 비율의 변화다. 오이시디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중산층 비중은 2014년 62.9%에서 2016년 55.2%로 급락했다. 오이시디 회원국 중 가장 급격한 변화였다. 둘째, 오이시디의 ‘망가진 사회적 승강기’라는 보고서는 한국을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 세대로 이어지는 계층의 대물림이 압도적으로 높은 국가라고 적시했다. 마지막으로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가 발표한 최근 통계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의 빈곤탈출률이 점점 낮아지기 시작해 처음으로 30% 아래로 떨어졌다.광고소득 불평등은 완화되었지만,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실제로 최근 한 실험적 연구는 통념과 달리 소득 불평등이 낮아져도 사회적 이동성은 더 나빠질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의 자산 형성을 지원하거나 복지급여를 늘리는 전통적인 재분배 정책만으론 사람들이 체감하는 심각한 불평등을 완화할 수 없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불평등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정책 대응은 이동성을 복원하는 것에 맞추어져야 한다. 그렇다고 습관처럼 이야기하듯, 교육 기회를 넓히거나 괜찮은 대학을 몇개 더 만드는 식으로는 이동성이 복원되진 않는다. 이미 고학력 청년들이 넘쳐나지만, 그들이 일할 ‘괜찮은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안은 괜찮은 일자리를 늘리는 데서 찾아야 한다.문제는 한국 경제의 핵심 동력은 대기업이 주도하는 제조업인데, 이 제조업이 괜찮은 일자리를 만드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독일을 비롯해 제조업 강국 대부분이 직면한 현실이다. 결국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균형을 이루는 구조로 전환해야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돌봄과 같은 사회서비스를 좋은 일자리로 만들고, 첨단 제조업에 기반한 물류, 디자인, 문화 등 역동적 서비스 산업에서 괜찮은 일자리를 만드는 길밖에 없다. 괜찮은 일자리가 많아져야 사회경제적 지위가 대물림되는 세습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야 평범한 사람들이 미래를 꿈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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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누리집 갈무리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복지국가재구조화연구센터장
조금 뻔한 질문을 해보자. 소득 불평등이 심각한가? 주저 없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질문을 조금 바꾸자. 소득 불평등은 심각해지고 있나? 역시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물론 자산 불평등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산 불평등의 뿌리는 결국 소득 불평등에 있다. 쓰는 것보다 더 많은 소득이 있어야 자산 축적이 가능하다. 그렇게 축적한 자산에서 발생하는 소득이 소득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소득 불평등이 경제적 불평등의 정도를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인 이유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염려하는 많은 사람이 심각해지는 소득 불평등이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외에서 발표된 소득 불평등 지표들은 일반적 인식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료를 보면,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지니계수든, 팔마 지수든 어떤 지수를 사용해도, 지난 10년간 완화되었다. 소득 불평등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며,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한다는 ‘상위 10%의 소득 점유율을 하위 40%의 점유율로 나눈 값’(팔마 지수)도 2011년 1.7배에서 2022년 1.2배로 29.4%나 감소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지니계수도 동기간 0.388에서 0.324로 16.5% 감소했다. 수치만 보면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꾸준히 완화된 셈이다.
그런데 왜 평범한 사람들은 소득 불평등, 더 나아가 사회 전반의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고 믿는 것일까? 2022년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경제적 양극화가 매우 심각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무려 81.5%에 달했다. 소득 불평등이 낮아지는데도, 사람들의 인식은 오히려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역설은 단순히 재분배를 늘린다고 해소될 문제가 아니다. 지난 10년간 소득 불평등이 완화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복지지출 증가였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지출은 2010년 7.4%에서 2022년 16.2%(2024년 15.3%)로 무려 114.9%나 증가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불평등이 더 심각해졌다고 믿고 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그 이유가 사회경제적 계급이 고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점점 더 자신의 현재 상태를 벗어날 수 없고, 심지어 더 나빠졌다고 느끼고 있다. 세가지 지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중위소득의 75~200%에 해당하는 중산층 가구 비율의 변화다. 오이시디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중산층 비중은 2014년 62.9%에서 2016년 55.2%로 급락했다. 오이시디 회원국 중 가장 급격한 변화였다. 둘째, 오이시디의 ‘망가진 사회적 승강기’라는 보고서는 한국을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 세대로 이어지는 계층의 대물림이 압도적으로 높은 국가라고 적시했다. 마지막으로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가 발표한 최근 통계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의 빈곤탈출률이 점점 낮아지기 시작해 처음으로 30% 아래로 떨어졌다.
소득 불평등은 완화되었지만,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실제로 최근 한 실험적 연구는 통념과 달리 소득 불평등이 낮아져도 사회적 이동성은 더 나빠질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의 자산 형성을 지원하거나 복지급여를 늘리는 전통적인 재분배 정책만으론 사람들이 체감하는 심각한 불평등을 완화할 수 없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불평등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정책 대응은 이동성을 복원하는 것에 맞추어져야 한다. 그렇다고 습관처럼 이야기하듯, 교육 기회를 넓히거나 괜찮은 대학을 몇개 더 만드는 식으로는 이동성이 복원되진 않는다. 이미 고학력 청년들이 넘쳐나지만, 그들이 일할 ‘괜찮은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안은 괜찮은 일자리를 늘리는 데서 찾아야 한다.
문제는 한국 경제의 핵심 동력은 대기업이 주도하는 제조업인데, 이 제조업이 괜찮은 일자리를 만드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독일을 비롯해 제조업 강국 대부분이 직면한 현실이다. 결국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균형을 이루는 구조로 전환해야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돌봄과 같은 사회서비스를 좋은 일자리로 만들고, 첨단 제조업에 기반한 물류, 디자인, 문화 등 역동적 서비스 산업에서 괜찮은 일자리를 만드는 길밖에 없다. 괜찮은 일자리가 많아져야 사회경제적 지위가 대물림되는 세습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야 평범한 사람들이 미래를 꿈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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