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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 요즘 뭐 봐?][‘세작, 매혹된 자들’, 사랑 혹은 대결... 바둑 같은 멜로와 정치의 결합


바둑을 두어 본 이들은 알 것이다. 내 집이라 여겼는데 상대방이 한 수를 놓는 순간 순식간에 상대 집으로 바뀌기도 한다는 것을. tvN 토일드라마 ‘세작, 매혹된 자들’은 마치 바둑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결코 그 누구도 끊어낼 수 없을 것처럼 공고해 보이던 두 사람의 마음이, 어느 순간 바뀐 상황 속에서 당혹스러울 정도로 깨져버리는 걸 보게 되기 때문이다. 강희수(신세경)와 진한대군 이인(조정석)의 만남은 품격있는 멜로 사극의 한 대목처럼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이겨야 이름을 알려준다지만 그 누구도 이겨본 적이 없어 이름을 알 수 없는 내기바둑꾼으로 남장한 강희수는,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후 볼모로 끌려갔다 돌아온 진한대군 이인과 대국을 하며 그에게 빠져든다. 한집으로 이긴 강희수는 이인이 아끼는 별호 ‘몽우’를 자신에게 달라고 하고 그래서 몽우와 이인의 망형지우가 시작된다. 이 멜로적 상황의 이면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두 사람의 공감대 또한 깔려 있다. 전쟁의 참상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조선인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청나라 사람들과 잘 지내야 했던 이인을 질시하는 조선의 신하들 입에서는 그가 청나라 측 사람이 됐다거나 심지어 세작일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하지만 강희수는 그걸 믿지 않는다. 그런 현실적인 선택이 결국 약한 조선의 백성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에 더 가치를 부여한다. 그래서 이들의 이끌림은 사적인 관계이면서도 동지적 의미로서의 공적인 관계로도 엮인다. 이인은 남장을 한 강희수의 정체를 모르지만, 강희수는 이인의 스승이자 조선을 위해 초개처럼 목숨 하나는 버릴 수도 있는 충신 강항순(손현주)의 딸이다. 이러니 이인과 강희수의 관계는 결코 끊어지지 않을 단단한 결속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단 한 수에 판세가 뒤바뀌는 것처럼 이들의 결속을 깨버리는 운명적 사건이 벌어진다. 병세가 악화하면서 이인에 대한 질투와 의심이 깊어진 왕 이선(최대훈)이 폭주하다 결국 독살당하면서다. 절망과 욕망이 뒤섞이면서 이인은 왕이 되기로 작정하고 흑화된다. 일단 권력의 칼을 뽑았으면 상대를 무너뜨려야 자신이 살 수 있는 법. 이인이 휘두르는 권력의 칼날은 정적들만 제거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강희수의 목끝에도 닿게 된다. 이 일에 억울하게 연루된 강희수는 함께 끌려와 모진 고문을 당했던 홍장(한동희)만은 살려달라 애원하지만 왕이 된 이인은 이를 단칼에 거절한다. “과인은 이제 필부가 아니다. 이 나라의 임금이다. 임금에겐 신하와 정적만 있을 뿐 친구는 없다.” 이인의 흑화는 이제 강희수의 흑화로 이어진다. 3년 도형(타지역으로 보내져 강제노역을 하는 형벌)을 받고 그곳으로 가다 홍장마저 사망하자 강희수는 도주하고 3년 후 돌아와 기대령(임금의 바둑 사범) 선발에 지원한다. 목적은 ‘간악한 술책으로 세상을 속이고 용상에 오른 주상을 끌어내리기 위함’이다. 이처럼 ‘세작, 매혹된 자들’은 바둑의 한 수 한 수처럼 사태가 계속 뒤집어지고 바뀌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런데 왜 제목이 ‘세작’일까. 그건 이 작품의 기획의도 속에 어렴풋이 의미가 담겨있다. ‘세작의 도(道)는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해 상대를 속이고 그 마음을 얻어 종국엔 상대의 뜻마저 흔들리게 만드는 것, 치명적인 혼란 속으로 상대를 빠뜨려 목적을 이루는 데 있다.상대를 완전히 속이려면 그 과정에서 세작 자신도 상대만큼 흔들려야 하고 치명적인 혼란을 겪어내야 할 것이고 이는 사랑에 빠지는 과정과 너무도 흡사하다.’ 즉 목적이 상대를 속이고 결국 무너뜨리려는 것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얻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는 스스로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바로 이 ‘세작’에 담긴 의미다. 이인을 무너뜨리려 돌아왔지만 강희수는 그 과정에서 얼마나 흔들리게 될까. 또 강희수의 그 목적을 알면서도 그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된 이인은 왕이 아닌 ‘필부’로서 어떤 감정의 진폭을 겪게 될까. 사랑과 우정의 사적 서사 위에 왕과 정적 사이의 공적 서사를 겹쳐 놓고, 그것을 ‘세작’이라는 독특한 위치에 선 시선으로 그려내는 작품이다. 조정석과 신세경의 연기 변신도 흥미롭지만, 빈틈없이 포석해 치열한 극적 대국으로 나아가는 잘 짜인 바둑 같은 묘미도 빼놓을 수 없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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