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에 못 뛰더라도, 동행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지난 2일 광주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린 광주FC와 FC서울의 K리그1 개막전. 경기 전부터 많은 팬들의 관심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출신’ 제시 린가드(잉글랜드)의 서울 엔트리 포함 여부에 쏠렸다. 선발 출전은 어렵더라도 ‘교체로라도 K리그 데뷔전을 치르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만 182경기에 출전해 29골·14도움을 기록한 선수인 만큼 팬들의 관심이 큰 건 당연한 일이었다.사실 김기동 서울 감독은 광주로 향하기 직전까지도 고민이 컸다. 대중의 많은 관심이 쏠린 건 알지만, 린가드의 컨디션이 완전히 올라오지 않은 점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실제 린가드가 공식 경기에 나선 건 지난해 4월이 마지막이었다. 김 감독과 미팅을 통해서도 그는 자신의 컨디션이 60~70% 수준이라고 했다. 김기동 감독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컨디션을 더 끌어올린 뒤 엔트리에 합류하길 바랐다. “많은 팬들이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다. 실망감을 안기면 어떡할 거냐”며 설득도 나섰다.그러나 린가드는 절실했다. 김 감독과 미팅을 통해 “경기에 못 뛰더라도, K리그 선수들이 어떤 식으로 하는지라도 직접 보고 싶다”며 동행만이라도 바랐다. 서울에 휴식을 취할 수도 있지만 장거리 이동을 감수하고라도 빨리 K리그에 적응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결국 김 감독은 린가드를 개막 엔트리에 넣었다. 경기 전 “경기에는 안 넣고 싶다”며 린가드의 실제 출전 가능성을 냉정하게 바라보면서도, 현장에 동행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봤다. 린가드는 선발 대신 벤치에 앉아 경기를 지켜봤다.서울이 0-1로 뒤지던 후반 31분. 린가드의 교체 투입 가능성에 선을 긋던 김기동 감독은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졌다. 골이 절실한 상황, 그래도 한방을 보여줄 만한 능력이 있는 린가드를 마지막 교체 카드로 꺼내든 것이다. 린가드가 교체 출전을 준비하자 관중석이 술렁이더니, 실제 그가 교체로 투입돼 그라운드를 밟자 경기장엔 많은 환호가 쏟아졌다. 린가드 본인에게도 약 1년 만에 공식 경기에 출전하는 순간이었다. 광주 동행을 원했던 의지만큼이나 그라운드 위에서 보여준 의욕도 넘쳤다. 2선에 포진한 린가드는 투입 직후부터 단숨에 서울 공격의 중심에 섰다. 패스와 슈팅으로 잇따라 존재감을 보였고, 날카로운 크로스로 일류첸코의 헤더도 도왔다. 2선 중앙뿐만 아니라 측면까지 자유롭게 움직이며 기회를 노렸다. 추가시간엔 상대 역습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거친 태클로 상대 공격을 끊었다. 광주 벤치는 물론 관중들도 '퇴장'을 연호할 만큼 과격했던 태클. 린가드는 주심으로부터 경고를 받고, 이 과정에서 상대 선수와 가벼운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끝내 K리그 데뷔전에서 공격 포인트를 쌓지는 못했다. 팀도 추가시간 쐐기골을 실점해 0-2로 완패해 린가드도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아직 컨디션이 100%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날 짧은 시간이나마 보여준 존재감은 향후 기대감을 더욱 키우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경기에 못 뛰더라도 동행하고 싶다"며 원정길을 자청하고, 경기 중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를 선보이는 등 '의욕'이 넘치는 모습에 서울 팬들의 박수도 쏟아졌다.사실 린가드가 서울로 입단했을 당시부터 K리그 이적 배경을 두고 적잖은 의문이 제기됐던 게 사실이었다. 중동의 거액 연봉 제안, 유럽 잔류 등 다른 러브콜을 배제하고 K리그로 향했기 때문이다. 그가 병행하고 있는 개인 사업에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러나 린가드는 개막전부터 의지를 보여주며 자신을 향했던 물음표를 스스로 지워가는 모습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경기장에 돌아와서 축복과 감사해”. 자신의 SNS에 다소 어색하게 번역된 한국어로 덧붙인 그의 K리그 데뷔 소감은, 린가드가 서울에 입단한 진짜 이유를 엿볼 수 있는 표현이기도 했다.광주=김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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