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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411: 누구도 메트(Met,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를 처음 방문했던 때는 잊지 못한다
부모를 따라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한 나이지리아계 미국인 친구와 시카고에서 며칠 보냈던 적이 있습니다. 친구의 차를 얻어타고 있는데, 한 빌딩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에 주차장으로 향하는 통로를 지키고 있던 경비원에게 제 친구가 뜬금없이 "혹시 00에서 오지 않았어요?" 물었습니다. (나이지리아가 아니었습니다.) 제 친구의 짐작은 맞았습니다. 무표정하게 통로를 지키고 있던 건장한 체격의 경비원이 불현듯 자신의 고향을 알아맞힌 방문자가 반가워 갑자기 아이처럼 티없는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걸어오던 게 기억납니다.
"어떻게 알았어?" "그냥 보면 대충 알아. 얼굴이랑 뭐…보면 대충 알아."
동북아시아인인 우리들이 한국인의 생김새는 이런 경향이 있다, 일본인들은 저런 특징이 있다, 종종 말하곤 하는 것과 비슷한 얘기였습니다. (맞고 틀리고는 별개의 문젭니다.) 차가 지하주차장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짧은 찰나, 서로 얼굴 생김을 일별하는 것만으로도 미국의 1~1.5세대 아프리카 이민자들끼리의 '이심전심'이 문득 형성됐던 겁니다. 제 친구를 비롯한 그의 남매들은 이제 모두 이른바 '번듯한' 직업을 가진 미국 중산층으로 잘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이지리아에선 이른바 '지식인 계층'에 속했던 친구의 부모님이 세 자녀의 교육을 위해 고국에서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이민한 후 그 가족의 정착기가 녹록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한국계 이민 가정들에게도 익숙할 이야깁니다. '한 권의 책'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전세계로부터 수천 수만 가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이민의 나라, 자본주의 시대의 제국인 미국에서 무심코 지나치곤 하던 경비원들에게 얼마나 다양한 삶의 페이지들이 숨어 있겠는가, 새삼 그 책장들의 틈새를 조금 엿본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형인 톰이 갑자기 병상에 눕게 되면서 모든 우선순위가 뒤바뀌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2년 8개월 동안 나에게 현실 세계란 베스 이스라엘 병원의 병실과 퀸스에 있는 방 하나짜리 형의 아파트가 전부였다. 졸업 후 뉴욕 중심가의 고층 빌딩에서 화려한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정작 나에게 아름다움, 우아함, 상실 그리고 어쩌면 예술의 의미를 가르쳐준 것은 그런 조용한 공간들이었다.
2008년 6월, 형이 세상을 떠나고 나자 나는 내가 아는 공간 중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일자리에 지원했다. 열한 살 때와 달리 이번에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생각지도 않으며 그곳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도착했다. 가슴이 벅차고 찢어지는 듯했다. 한동안은 그저 가만히 서 있고 싶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지금 낭독하는 게 조금은 겸연쩍습니다. 지난해 11월말에 출간됐으니, '따끈한 신간'은 물론 아닙니다. 그래도 한 주에 한 권의 책을 읽는 [북적북적]의 시계로 볼 때, 이 정도면 아직은 '시기를 놓쳤다'고 할 정도로까지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았다고 우겨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출간 석 달 만에 무려 14쇄를 찍은 베스트셀러가 됐으니, 이제 와서 '소개' 하기는 좀 민망한 게 사실입니다. [북적북적] 가족들 중에는 이미 읽은 분들이 많을 것 같아 고민했습니다.
그래도 이 책을 읽지 않고 넘어가기는 너무 아쉬웠습니다. 사실 영문번역체 특유의 딱딱한 느낌이 어쩔 수 없이 조금은 있기 때문에, 번역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독서취향을 가진 분들이라면 선뜻 손이 안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분들이 [북적북적]으로 이 책을 일단 접해보시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라도 함께 읽어보자고 소매를 잡아끌 수 있는 책이거든요. 이런 분들 모두 해당됩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보신 분. 가본적은 없지만 앞으로 가볼 생각이 있는 분. 미술, 예술, 역사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분. 또는, 어느 날 문득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다고 느꼈을 때,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쓰여진 시 한 구절이나 교보문고 빌딩에 나붙어 있던 문구 하나, 지나가다 들은 버스커의 바이올린 한 소절... 그 어떤 것으로부터든 문득 가슴을 치는 위로를 느껴본 분. 삶에 때때로 찾아오는 고즈넉한 순간들에 놓여본 분. 이중 어느 한 카테고리에만 해당돼도, 이 책을 좋아하시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 시선이 페르메이르('베르메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낭독자)가 즐겨 그렸던 조용한 집 안 풍경으로 가서 멈춘다. 뺨을 손으로 받치고 졸고 있는 하녀('잠든 하녀'. 잠든 인물을 둘러싼 일상 속의 물건들이 정적인 분위기를 이루고, 실내로 들어오는 빛의 자연스러운 표현이 절묘한 작품-옮긴이)가 보이고, 그 뒤로는 잘 정돈되고 텅 빈 듯한 집 안의 모습이 모든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작가 특유의 빛을 받으며 펼쳐진다. 그림을 보다가 페르메이르가 포착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나는 깜짝 놀랐다. 가끔 친숙한 환경 그 자체에 장대함과 성스러움이 깃들어 있다는 느낌이 들곤 하는데 그가 바로 그 느낌을 정확히 포착한 것이었다. 그것은 나의 형 톰의 병실에서 끊임없이 들었던 느낌이었고, 쥐 죽은 듯 고요한 메트의 아침이면 떠올리게 되는 바로 그 느낌이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인 패트릭 브링리는 자신을 '톰 브링리의 동생'이었다고 소개합니다. 그만큼 영특하고, 다방면에 재능이 많았으며, 다정하기까지 한, 잘난 형을 자랑스러워 하는 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형이 20대 후반에 암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패트릭 브링리 본인도 뉴욕의 유서깊은 잡지 [뉴요커]에 취직해 화려한 미래가 약속돼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커리어를 막 시작하던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형의 죽음 이후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그만두고, 2008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취직합니다. 미술과 예술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반듯한 부모님 밑에서 자란 그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도피처였던 것 같습니다.
'Met(메트로폴리탄 미술관)'는 '미술관'이라는 말로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콜렉션을 보유한 곳입니다. 책 속에서 요약하고 있듯이 "평균 크기 뉴욕 아파트 3천 개를 합친 면적"의 공간에서, 그야말로 생각해 낼 수 있을 만한 그 어떤 종류의 역사유물이나 그 어느 시대의 예술작품이든 모두 만나볼 수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이집트관부터 중세 시대 기사들의 갑옷이나 동서양의 전통 악기들, 현대 아프리카계 아티스트들의 설치 작품까지… 이 방대한 아름다움의 세계 속에서 패트릭 브링리가 그날그날 배치되는 전시실도 다릅니다. 그 안에서 저자는 가장 존재감 없어야 하는 존재, 그러나 절대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존재인 경비원으로 10년 동안 일합니다. 인류가 남긴 거의 모든 종류의 예술적 자취들로부터, 그리고 저마다 개성이 다른 관람객들과 서로 짐작할 수도 없었던 종류의 사연을 지녔던 동료 경비원들로부터, 저자는 조금씩 이 다음의 시간으로 나아갈 힘을 흡수합니다. 그리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돼서 '메트'를 떠납니다.
"실례합니다." 커플 중 남자가 말한다. "제 여자친구가 여기 있는 유물들이랑 다른 것들 모두가 진짜라는데, 정말, 그러니까, 진짜인가요?"
나는 그렇다고 답한다.
"그렇지만 그게 무슨 뜻이죠?" 남자가 밀어붙인다. "저것들이, 막, 오리지널이에요? 다 진품이에요? 이집트에서 온?"
나는 유물들이 이집트에서 왔다고 답한다.
"그러면 여기 이게…" 이번에는 여자가 말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화강암으로 된 사자상의 갈기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자 나는 가볍게 그녀를 저지한다. "아, 그렇지, 미안해요. 그러면 여기 이거, 얼마나 오래된 거죠?"
나는 5천 년 된 석상이라고 답한다.
"5천 년?" 그녀가 말한다.
"5천 년!" 그가 말한다. 둘은 그게 별거 아니라는 듯 장난스럽게 주고받으며 되풀이한다. "그런데요." 이제 남자친구 쪽이 내게 정말 솔직하게 말해달라는 투로 묻는다. "이 모든 게 다 정말 진짜일 리는 없잖아요…"
이 커플이 퍽 마음에 든 나는 그들이 미술관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들이 들어 있는 전시 케이스를 들여다보는 걸 지켜본다. 그들은 구석기시대 손도끼와 신석기시대 화살촉 하나하나를 시간을 들여 차분히 살펴본다. 그들이 이토록 느리게 이동하는 이유가 짐작이 간다. 이 미술관이 얼마나 큰지 전혀 모르는 것이다.
2년 전 뉴욕에 머무를 때, 저 역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는 걸 참 좋아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연달아 매일매일 출근 도장을 찍었던 날들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K팝이 울려퍼지던 미술관 앞의 핫도그 스탠드며(이 책에서도 '경비원들에게는 핫도그 한 개에 1달러만 받는 곳'으로 언급됩니다),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야트막한 계단에 앉아 노닥거리던 사람들, 언제나 부산하던 입구와 그 곳을 통과할 때의 설레던 기분이 생생합니다. 메트로폴리탄에 방문해 본 적은 없지만 그 분위기를 빠르게 원격 스캔해 보고 싶은 분이라면, 2018년 영화인 [오션스 에잇]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영화 자체도 재미있을 뿐 아니라) 'Met'가 얼마나 방대하고 아름다우며, 고차원 절도극을 그리기에 적합한, 수많은 구석구석들을 배경으로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이른바 '멧 갈라'도 유명합니다. 미국의 한다 하는 '셀럽'들은 모두 참여해 그 해의 의상 테마에 맞춰 저마다 준비한 예술적 의복행동을 자랑하는 극도로 호화로운 행사가 열리는 바로 그곳입니다.
사람들은 화려한 옷차림의 바빠 보이는 사람들한테는 취하지 않을 태도로 경비원들을 대한다. 전시가 마음에 들 때는 곁으로 다가오며 우리가 평생 이토록 아름다운 걸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해한다. 전시가 예술인 척하는 콧대 높은 헛소리라고 생각할 때는 '당신과 나 빼고 모두가 이 개똥 같은 걸 좋아하는 것 같다'는 메시지를 담은 눈빛을 보낸다. 아무래도 이건 유니폼 때문인 것 같다. 유니폼은 우리를 부자에게든 서민에게든 누구에게라도 공감해줄 것 같은 허름한 신사 정도로 보이게 한다.
우리 중 누구도 이 주제, 그러니까 이 세상과 그 모든 아름다움에 관해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한다. 미켈란젤로가 태어난 해와 죽은 해를 알지언정 막상 그의 작업실이나 페르시아의 세밀화가, 나바호족의 바구니 짜는 장인의 작업실 등등 예술의 현장에 가면 자신의 무지를 얼마나 압도적으로 실감하게 될 것인가. 심지어 그 예술가들조차도 거대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기 일쑤인 이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도 메트에서는 길을 잃을 것이다.
하지만 '메트'는 무엇보다도, 인류가 만들어온, 인류가 고심해 만들어내고자 노력해온 모든 종류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공간입니다. 입장료를 받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여전히 뉴욕시민들에게는 입장료를 강제하지 않습니다. 다만, '뉴욕시민들은 원하는 만큼 기부해 달라'는 자율제를 운영합니다.
저는 한참 의논해서 동행과 1달러씩 냈습니다. 'Met'에 대해 느끼는 애정으로는 더 큰 돈을 기부하고 싶었지만, 한국인인 우리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1달러 넘게 기부하는 건 왠지 좀 '오버'하는 사대주의 같다는 자기검열을 거쳤습니다. '전세계가 사실 미국에 웬만큼은 세금을 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거든? 그래도 '메트' 너를 참 좋아하고, 너에게 이 고마움을 전하고는 싶기 때문에, 맨손 입장은 하지 않을게.' 나름 진지하게 제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지점을 고민했습니다. 다만, '메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것이 '미국 뉴욕'의 미술관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중요한 점이긴 하다고 생각합니다. 유럽 제국주의의 피비린내를 아무래도 맡지 않을 수 없는 유럽의 대형 박물관들과 달리, '메트'는 그런 종류의 부담이 비교적 덜합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독특한 태생과 전개가 그야말로 유니크한 느낌의 자본주의 제국 최대의 미술관을 탄생시켰다고 생각합니다. 관람객들 뿐만 아니라 그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뉴욕 특유의 다양성과 개방성이 물씬 느껴지는 곳입니다. 규모와 아우라로 내리누르는 느낌이 놀랄 만큼 별로 들지 않고, 인류가 갈구하고 기대왔던 모든 종류의 아름다움이 지구상 오직 뉴욕에서만 가능한 바로 그 다양성에 어우러져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바로 그래서 'Met'에는 세상 그 어느 미술관도 갖지 못한 넉넉한 품이 있습니다. 전도유망했던 20대에 형을 잃고 미술관에 '숨어든' 경비원이 되었던 저자 패트릭 브링리부터 제 친구와 찰나의 향수병을 나누던 시카고 어느 빌딩의 경비원 같은 이민자들까지…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사연을 지닌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세상 그 어느 미술관보다 더 넉넉한 품으로 얼싸안는 면이 있습니다.
"누가 나를 암살하려고 했었어요." 그는 나중에 내게 말해줬다. "어느 날 퇴근해서 집에 가는데, 내 방해로 부패한 거래를 못하게 된 사람이 고용한 총잡이 두 명이 총을 쐈죠. 왼팔에 한 발, 배에 여덟 발을 맞았어요." 그는 그 일을 무미건조한 어투로 말하고, 여덟 발이라는 단어를 조금도 강조하지 않는다.
"신이 도와서 주요 장기는 상하지 않았지만요. 1994년의 일이에요. 화요일에 사건이 벌어졌고 금요일에는 은행에서 돈을 대서 비행기에 실려 파리로 날아가 오장육부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수술을 받았죠. 그후 4개월을 회복하는 데 보냈고요. 관광비자로 미국에 오자마자 망명 신청을 하고 꽤 금방 통과가 됐죠. 뉴욕에서 얻은 첫 직장에서는 시간당 4달러 24센트를 받고 일했고, 경비원으로 처음 일할 때는 5달러 얼마를 받았어요. 밴더빌트에서 알던 사람들이 도와줘서 월 스트리트에 직장을 구할 수 있었지만 중간 관리자 포지션이어서 이전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았어요. 나 같은 억양과 피부색으로는 그게 최선이었죠. 회사가 합병되면서 해고됐고, 곧바로 세계 금융 위기가 시작됐어요. 그때 좀 거친 동네에서 당좌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주는 업체를 인수했는데 내가 그런 일을 제대로 할 정도로 강하지도, 못되지도 못하다는 결론만 얻었죠.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어요. 평생 모은 돈을 모두 날렸지요. 하지만 괜찮아요. 괜찮아."
그는 충격을 받은 내게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정말이지 괜찮아요. 살아 있고, 가족이 있고, 양심을 잃지 않았으니까. 날 죽이려고 했던 사람을 지금 당장 만나면 악수를 할 수도 있어요.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괜찮아요."
이야기를 마친 조셉은 일과를 끝내고 그레이트 홀에 모인 동료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이 푸른색 근무복 아래에는 정말 갖가지 사연들이 있을 거예요."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의 원제는 [All the Beauty in the World]입니다. 그야말로 세상 유일무이하게 독특한 그 초대형 미술관 'Met'에서, 삶과 역사의 의미를 담아내고자 애썼던 그 모든 인류의 발자취들과 그 자취를 따라오는 사람들 틈에 10년간 스며들어 생을 송두리째 흔든 상실과 슬픔을 소화하고 그 너머로 나아갈 힘을 길러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마지막 장이 가까워질 수록, 패트릭 브링리가 기댔던 'Met'의 넉넉한 품과 같은 품을 사실 어디서든 만나볼 수 있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우리나라 중앙박물관이나 현대미술관 같은 모든 공립 전시관들은 물론이거니와,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당선된 시민의 시 한 구절이나 교보문고 빌딩에 나붙은 문구, 길거리 악사의 바이올린 한 소절일 수도 있을 겁니다. 어떤 시공간에서나 어떤 계기로든 불현듯 맞닥뜨릴 수 있는, 예술이 선사하는 기적적인 '원격이동'의 순간. 그게 바로, 때로 '저것은 왜 여기 이다지도 깊숙하게 파고드는 것일까' 의아하기까지 한 예술의 힘. 우리가 인간이란 그룹이라는 걸 문득 기쁘게 감각하게 하는 예술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북적북적]이 우리에게, 패트릭 브링리와 메트로폴리탄이 나눴던 서로의 품 같은 따스한 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감히 바라봅니다.
*웅진지식하우스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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