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한국 정착 꿈꾸지만 체류자격 높은 벽에 부딪힌 아이들
김용희기자수정2025-10-31 06:00등록2025-10-31 06:00
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element.0:00한국어 교육 중 하나로 독후감을 쓰고 있는 새날학교 학생들. 새날학교 제공지난달 8일 오후 방문한 새날학교는 광주와 전남 함평군 경계인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에 자리하며 한적한 분위기였다. 건물 입구에는 ‘세계를 품은 새날학교’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보였다. 건물은 2층짜리 1개 동으로, 올해 3월 기준 중학교 3학년 1개 반 1명, 고등학교 1학년 2개 반 15명, 2학년 2개 반 18명, 3학년 2개 반 23명 등 학생 57명이 다니고 있다.한창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각 교실 입구에는 여느 한국 학교처럼 ‘다른 반 친구 출입금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반마다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한국어, 러시아어, 베트남어 문구가 공통으로 보였다. 새날학교에는 카자흐스탄 16명, 우즈베키스탄 13명, 러시아 7명, 우크라이나 5명, 키르기스스탄 2명 등 고려인 학생 43명과 베트남 10명, 중국 3명, 타이 1명 등 아시아권 학생 14명이 다니고 있다.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에 자리한 다문화 대안교육 위탁기관 ‘새날학교’.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새날학교는 광주고려인마을 등에 거주하는 외국인 자녀를 위해 2007년 설립된 대안 교육기관이다. 새날학교 설립 전 한국 학교에 다니던 고려인 청소년들은 방치되고 있었다. 한국말을 모르니 학교 적응을 못 했고 수업 중 엎드려 자거나 교실 밖으로 나가는 일이 잦았다. 학교에서도 이들을 돌볼 능력과 준비가 부족해 아무런 제지를 하지 못했다. 하남공단이나 평동공단에서 공장 일을 하는 부모들은 생계에 신경 쓰며 자녀 교육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광고현재 새날학교는 외국에서 살다 부모를 따라 한국에 온 고려인 청소년들이 한국 학교(원적 학교)에 다니다 언어 문제 등으로 적응하지 못하면 1년 단위로 위탁교육을 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매년 말 자체 평가를 통해 학생이 학습용 한국어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원적 학교로 복귀시키는 구조다. 하지만 원적 학교로 복귀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광주 새날학교 학생들이 진로 체험 수업을 받고 있다. 새날학교 제공부모를 따라 초등학교 4학년 때인 2011년 입국해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덴 마리나(23)는 새날학교에서 학업을 마친 뒤 전남대 간호학과를 다니며 간호사를 꿈꾸고 있다. 재외동포 체류자격(F-4)을 지닌 그는 3년에 한번씩 비자를 갱신해야 하지만 계속 한국에서 살 계획이다. 마리나는 “다른 친구들은 한국어 교육이나 디자인 쪽을 선택했지만 난 간호사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광고광고새날학교는 한때 학생들에게 대학 위주 진학 지도를 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대학보다 취업에 도움이 되는 전공을 우선 권유하고 있다.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해도 취업을 보장할 수 없고 부모의 경제력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학생 10명의 전공을 보면 조리, 미용, 치위생, 자동차, 통번역 등 모두 취업 중심이었다. 김영경 새날학교 교감은 “졸업생들은 외국인 신분이기 때문에 공공기관 등에서 일하기 어렵다”고 했다.지난 28일 방문한 서울 구로구 오류동 지구촌학교 학생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 학교에는 중국, 베트남,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모두 22개국 학생 250여명이 다니고 있다. 5층 건물에 자리 잡고 있지만 건물 자체가 좁아 아이들은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 서로 몸을 부대끼며 살아간다. 중학생과 고등학교 1~2학년생이 있는 4층에는 학생 200여명이 함께 생활한다. 입학 대기 학생이 40~50명에 이르는데도 공간 한계로 추가 학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광고서울시 구로구 오류동에 있는 지구촌학교 4층 복도. 학생 2명만 지나가도 꽉 찰 만큼 비좁은 복도에는 쉬는 시간을 맞은 아이들이 가득했다. 이준희 기자이 학교에서 ‘고3’은 특별 대우를 받는다.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이들은 5층 교실에서 따로 공부하고 있다. 지구촌학교는 아이들 대학 진학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박지혜 지구촌학교 교감은 “아이들에게 기술적인 부분을 가르쳐야 할지, 좋은 대학을 보내는 데 집중할지 고민이 있었다”며 “저희는 아이들이 부모님이 하던 일을 계속 답습해야 한다는 생각을 좋게 볼 수 없었다”고 했다.어느 쪽이든 학생들에게 졸업 뒤 생활은 녹록하지 않다.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에서 교육을 받더라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이들을 ‘이방인’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당장 체류자격부터 문제다. 외국인은 한국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교육 과정을 밟았더라도, 공부나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 체류자격을 잃는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공존 대상이 아닌 감시와 통제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가진 꿈은 무시된다. 김진희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청년들이 자영업을 하고 싶은지, 체육인이 되고 싶은지, 연예인이 되고 싶은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정부는 이들이 당장 일터에 가 뿌리 산업에 배치되길 바라기 때문에 이주배경 청년은 자기 진로를 탐색하는 일 자체가 호사인 상황”이라고 했다. 이런 이유로 이주배경 학생은 체류자격을 지키기 위해 노동 전선에 일찍 뛰어들어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건강보험료처럼 삶의 기본이 되는 문제마저 이들의 체류자격을 위협한다. 외국인은 보험료가 밀려 비자 갱신을 하지 못하면 체류자격을 잃기 때문이다. 새날학교 교장인 이천영 목사는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 건강보험료 때문에 추방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는데 어떻게 안정적으로 정착이 가능하겠느냐”고 했다.광고영주권 획득도 벽이 높다. 한국에서 외국인이 영주권을 받기 위해서는 1억원 가까운 소득이 필요하다. 일반영주권 조건을 보면, 전년도 1인당 국민총소득(GNI) 2배 이상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2024년 1인당 국민총소득은 약 4999만원이다. 학사 학위 등을 소지한 경우에는 조건이 완화되지만, 이 경우에도 1인당 국민총소득만큼은 소득이 있어야 한다. 사실상 영주권 획득이 어려운 구조다.서울시 구로구 오류동에 있는 지구촌학교. 이준희 기자이런 불안정한 체류자격은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 한국에서 어떤 삶을 꾸려갈지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추방을 피하기 위한’ 고민에 천착해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어 공부에 집중한 경우에는 오히려 더 큰 어려움이 있다. 아이들 입장에선 이미 한국이 ‘모국’과 마찬가지인데, 체류자격을 잃을 경우 갑작스럽게 언어도 문화도 익숙하지 않은 나라로 떠나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이런 상황에서 현장의 분투는 벽에 부딪힌다. 새날학교는 한국어 수업 비중을 늘리고, 현장에서 바로 일할 수 있는 역량을 강조한다. 벌금 500원까지 매겨 교실에선 한국어만 쓰게 한다. 어떻게든 아이들이 한국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학교가 아무리 애써도, 법과 제도가 아이들을 다시 ‘이방인’으로 되돌린다면 교육은 절반에서 멈춘다.전문가들은 전향적인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박윤환 경기대 교수는 “이미 미국 사례를 통해 안정된 체류 신분 없이는 이민자의 사회경제적 지위 상승이 지극히 어렵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특히 이주민 후속세대의 체류자격은 안정적인 학업 수행과 노동시장 진입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정부가 이들의 교육과 노동 참여에 대한 분명한 방향성을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김용희 이준희 기자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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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교육 중 하나로 독후감을 쓰고 있는 새날학교 학생들. 새날학교 제공
지난달 8일 오후 방문한 새날학교는 광주와 전남 함평군 경계인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에 자리하며 한적한 분위기였다. 건물 입구에는 ‘세계를 품은 새날학교’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보였다. 건물은 2층짜리 1개 동으로, 올해 3월 기준 중학교 3학년 1개 반 1명, 고등학교 1학년 2개 반 15명, 2학년 2개 반 18명, 3학년 2개 반 23명 등 학생 57명이 다니고 있다.
한창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각 교실 입구에는 여느 한국 학교처럼 ‘다른 반 친구 출입금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반마다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한국어, 러시아어, 베트남어 문구가 공통으로 보였다. 새날학교에는 카자흐스탄 16명, 우즈베키스탄 13명, 러시아 7명, 우크라이나 5명, 키르기스스탄 2명 등 고려인 학생 43명과 베트남 10명, 중국 3명, 타이 1명 등 아시아권 학생 14명이 다니고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에 자리한 다문화 대안교육 위탁기관 ‘새날학교’.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새날학교는 광주고려인마을 등에 거주하는 외국인 자녀를 위해 2007년 설립된 대안 교육기관이다. 새날학교 설립 전 한국 학교에 다니던 고려인 청소년들은 방치되고 있었다. 한국말을 모르니 학교 적응을 못 했고 수업 중 엎드려 자거나 교실 밖으로 나가는 일이 잦았다. 학교에서도 이들을 돌볼 능력과 준비가 부족해 아무런 제지를 하지 못했다. 하남공단이나 평동공단에서 공장 일을 하는 부모들은 생계에 신경 쓰며 자녀 교육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현재 새날학교는 외국에서 살다 부모를 따라 한국에 온 고려인 청소년들이 한국 학교(원적 학교)에 다니다 언어 문제 등으로 적응하지 못하면 1년 단위로 위탁교육을 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매년 말 자체 평가를 통해 학생이 학습용 한국어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원적 학교로 복귀시키는 구조다. 하지만 원적 학교로 복귀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광주 새날학교 학생들이 진로 체험 수업을 받고 있다. 새날학교 제공
부모를 따라 초등학교 4학년 때인 2011년 입국해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덴 마리나(23)는 새날학교에서 학업을 마친 뒤 전남대 간호학과를 다니며 간호사를 꿈꾸고 있다. 재외동포 체류자격(F-4)을 지닌 그는 3년에 한번씩 비자를 갱신해야 하지만 계속 한국에서 살 계획이다. 마리나는 “다른 친구들은 한국어 교육이나 디자인 쪽을 선택했지만 난 간호사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새날학교는 한때 학생들에게 대학 위주 진학 지도를 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대학보다 취업에 도움이 되는 전공을 우선 권유하고 있다.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해도 취업을 보장할 수 없고 부모의 경제력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학생 10명의 전공을 보면 조리, 미용, 치위생, 자동차, 통번역 등 모두 취업 중심이었다. 김영경 새날학교 교감은 “졸업생들은 외국인 신분이기 때문에 공공기관 등에서 일하기 어렵다”고 했다.
지난 28일 방문한 서울 구로구 오류동 지구촌학교 학생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 학교에는 중국, 베트남,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모두 22개국 학생 250여명이 다니고 있다. 5층 건물에 자리 잡고 있지만 건물 자체가 좁아 아이들은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 서로 몸을 부대끼며 살아간다. 중학생과 고등학교 1~2학년생이 있는 4층에는 학생 200여명이 함께 생활한다. 입학 대기 학생이 40~50명에 이르는데도 공간 한계로 추가 학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구로구 오류동에 있는 지구촌학교 4층 복도. 학생 2명만 지나가도 꽉 찰 만큼 비좁은 복도에는 쉬는 시간을 맞은 아이들이 가득했다. 이준희 기자
이 학교에서 ‘고3’은 특별 대우를 받는다.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이들은 5층 교실에서 따로 공부하고 있다. 지구촌학교는 아이들 대학 진학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박지혜 지구촌학교 교감은 “아이들에게 기술적인 부분을 가르쳐야 할지, 좋은 대학을 보내는 데 집중할지 고민이 있었다”며 “저희는 아이들이 부모님이 하던 일을 계속 답습해야 한다는 생각을 좋게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어느 쪽이든 학생들에게 졸업 뒤 생활은 녹록하지 않다.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에서 교육을 받더라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이들을 ‘이방인’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당장 체류자격부터 문제다. 외국인은 한국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교육 과정을 밟았더라도, 공부나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 체류자격을 잃는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공존 대상이 아닌 감시와 통제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가진 꿈은 무시된다. 김진희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청년들이 자영업을 하고 싶은지, 체육인이 되고 싶은지, 연예인이 되고 싶은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정부는 이들이 당장 일터에 가 뿌리 산업에 배치되길 바라기 때문에 이주배경 청년은 자기 진로를 탐색하는 일 자체가 호사인 상황”이라고 했다. 이런 이유로 이주배경 학생은 체류자격을 지키기 위해 노동 전선에 일찍 뛰어들어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건강보험료처럼 삶의 기본이 되는 문제마저 이들의 체류자격을 위협한다. 외국인은 보험료가 밀려 비자 갱신을 하지 못하면 체류자격을 잃기 때문이다. 새날학교 교장인 이천영 목사는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 건강보험료 때문에 추방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는데 어떻게 안정적으로 정착이 가능하겠느냐”고 했다.
영주권 획득도 벽이 높다. 한국에서 외국인이 영주권을 받기 위해서는 1억원 가까운 소득이 필요하다. 일반영주권 조건을 보면, 전년도 1인당 국민총소득(GNI) 2배 이상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2024년 1인당 국민총소득은 약 4999만원이다. 학사 학위 등을 소지한 경우에는 조건이 완화되지만, 이 경우에도 1인당 국민총소득만큼은 소득이 있어야 한다. 사실상 영주권 획득이 어려운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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