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현실 버거워도 스무살 넘어서 부모 탓하는 건 멋없죠”
최예린기자수정2026-03-04 19:02등록2026-03-04 18:56
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element.0:00지난겨울 대전 탄방역 앞에서 붕어빵을 팔았던 이호연(25)씨. 배우지망생인 이씨는 삼수 끝에 올해 서울예술대 공연학부 연기전공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최예린 기자광고꿈을 품는다는 건 무엇일까? 한겨울 동네 붕어빵집에서 한 청년의 꿈을 만났다. 그는 구멍 난 얇은 패딩을 입고서 빵틀을 뒤집었고, 자꾸 “감사하다” 웃으며 ‘서비스’(덤) 붕어빵을 남발했고, 짬이 나면 구겨진 대본을 읽고 또 읽었다. 스물다섯, 그는 배우지망생이다.제대 뒤 ‘대입 4년 도전’ 배수진 치고낮에는 붕어빵 팔고, 밤엔 연기 연습“재수 실패했을 땐 마음 무너졌지만연기는 목표이자 날 버티게 하는 힘”지난겨울 대전 탄방역 5번 출구 앞에서 붕어빵을 팔았던 이호연(25)씨는 올해 서울예술대 공연학부 연기전공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3수 끝에 96대 1 수시 경쟁률을 뚫었다. 처음 그를 본 건 아이 손을 잡고 붕어빵을 사러 가서였다. 한쪽에 손때 묻은 A4 용지 뭉치가 놓여 있길래 “뭘 그렇게 공부하시는 거예요?”라고 물었더니 “연기 공부”란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연극 ‘밑바닥에서’의 대본이었다. 그 옆엔 배우 ‘우타 하겐’이 쓴 연기 이론서 ‘산연기’도 놓여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입학 전 학비 벌이로 하는 붕어빵 장사”라며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이 자꾸 아른거렸다.광고며칠 뒤 붕어빵집을 다시 찾아가 대뜸 인터뷰를 부탁했다. 호연씨는 “딱 4년만 대학 입시를 도전해보고 실패하면, 연기자의 꿈을 접을 각오였다”고 했다. 배수의 진부터 칠 만큼 절박했다는 뜻이었다. 처음 ‘연기를 하고 싶다’ 생각한 건 고교 2학년 때였다.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를 보면서 들었던 ‘나라면…’이란 생각은 ‘나도 누군가 삶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그토록 원하던 대학 합격 소식을 접했을 때 그는 “온몸을 떨면서 엉엉 울었다”고 했다. 지난 시간이 폭포수처럼 마음 밖으로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학원비만 80만원이었는데, 형·동생도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께 저만 투자해달라고 할 순 없었어요. 고민을 미룬 채 군대에 갔는데 운명처럼 부대에서 연기 전공인 선임들을 만났고 용기를 내는 계기가 됐어요. 제대하자마자 군에서 모은 돈으로 연기학원에 등록하고 대학입시 준비를 시작했어요.”광고광고연기학원에서 대본을 읽는 이호연씨 모습. 이호연씨 제공대전 토박이인 그는 연기 연습과 입시 준비를 서울 아닌 대전에서 했다. 부모님댁도 대전이었지만 “혼자 살아보고 싶다”는 핑계로 집에서 나와 월세방을 구해 살았다. 애초 ‘4년 도전’을 생각했기에 목표를 위한 경제적, 심적 부담을 오롯이 홀로 감당할 각오였다. 3년 동안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곧장 학원에 가 밤 12∼1시까지 연기 연습을 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그는 “연기하는 순간이 즐거워 힘들진 않았다”고 담담히 말했다“재수에 실패했을 땐 멘탈이 흔들리기도 했어요. 첫해와 달리 재수 땐 ‘나 정도면 합격하겠지’ 자만했거든요. 재수 실패 뒤 부모님이 밥 챙겨 먹으라며 주신 용돈을 거절 못하고 받는데 그땐 정말 슬펐어요. 사실 알바와 연기 연습하는 것 말고 다른 일상은 전혀 없었어요. 괜한 죄책감 때문에 친구도 안 만났거든요. 힘든 것도 연기할 땐 잊었어요.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었지만, 그만둘 생각은 한번도 하지 않았어요. 연기는 제 목표이자 절 버티게 하는 힘이에요.”광고“그래도 버거운 현실이 원망스럽진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호연씨는 “에이, 그건 멋없잖아요”라고 했다. 그는 “솔직히 다른 또래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사랑하는 부모님을 욕하는 거라 생각해 꾹 눌렀다. 이런 성격과 자질은 모두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것이고, 난 그게 참 좋고 감사하다. 스무살 넘어 부모 탓 선생님 탓을 하는 건 멋없다”며 씨익 웃었다.3수 끝에 서울예대 연기전공 입학배우 도전에 다시 ‘10년’ 기회 부여“10년간 마음껏 도전하겠다는 각오”미래의 자신에게도 그는 ‘10년의 시간’을 줬다. 스스로 대학 합격까지 네번 실패할 기회를 줬던 것처럼, 앞으로 10년 동안은 ‘한눈 팔지 않고’ 배우로서 마음껏 도전해도 얼마든지 좋다는 마음가짐이다. 당장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연극을 대학에서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단 상상만으로도 “정말 설렌다”고 했다.“개인적으로 서른다섯쯤이 연기가 깊어질 때라 생각해요. 제 연기도 그때에는 꽃 피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거죠. 그러니 지금부터 10년은 어떤 시련이 오고 힘들어도 좌절하지 않고 계속 연기하겠다는 각오이기도 하고요. 사실 겁이 나서일지도 모르겠어요. 좋은 연기를 하려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누군가 알아봐 주겠죠. 그런 꿈을 꾸면서 나아가보려고요.”최예린 기자floye@hani.co.kr
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element.0:00
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element.
지난겨울 대전 탄방역 앞에서 붕어빵을 팔았던 이호연(25)씨. 배우지망생인 이씨는 삼수 끝에 올해 서울예술대 공연학부 연기전공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최예린 기자
꿈을 품는다는 건 무엇일까? 한겨울 동네 붕어빵집에서 한 청년의 꿈을 만났다. 그는 구멍 난 얇은 패딩을 입고서 빵틀을 뒤집었고, 자꾸 “감사하다” 웃으며 ‘서비스’(덤) 붕어빵을 남발했고, 짬이 나면 구겨진 대본을 읽고 또 읽었다. 스물다섯, 그는 배우지망생이다.
제대 뒤 ‘대입 4년 도전’ 배수진 치고낮에는 붕어빵 팔고, 밤엔 연기 연습“재수 실패했을 땐 마음 무너졌지만연기는 목표이자 날 버티게 하는 힘”
지난겨울 대전 탄방역 5번 출구 앞에서 붕어빵을 팔았던 이호연(25)씨는 올해 서울예술대 공연학부 연기전공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3수 끝에 96대 1 수시 경쟁률을 뚫었다. 처음 그를 본 건 아이 손을 잡고 붕어빵을 사러 가서였다. 한쪽에 손때 묻은 A4 용지 뭉치가 놓여 있길래 “뭘 그렇게 공부하시는 거예요?”라고 물었더니 “연기 공부”란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연극 ‘밑바닥에서’의 대본이었다. 그 옆엔 배우 ‘우타 하겐’이 쓴 연기 이론서 ‘산연기’도 놓여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입학 전 학비 벌이로 하는 붕어빵 장사”라며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이 자꾸 아른거렸다.
며칠 뒤 붕어빵집을 다시 찾아가 대뜸 인터뷰를 부탁했다. 호연씨는 “딱 4년만 대학 입시를 도전해보고 실패하면, 연기자의 꿈을 접을 각오였다”고 했다. 배수의 진부터 칠 만큼 절박했다는 뜻이었다. 처음 ‘연기를 하고 싶다’ 생각한 건 고교 2학년 때였다.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를 보면서 들었던 ‘나라면…’이란 생각은 ‘나도 누군가 삶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그토록 원하던 대학 합격 소식을 접했을 때 그는 “온몸을 떨면서 엉엉 울었다”고 했다. 지난 시간이 폭포수처럼 마음 밖으로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학원비만 80만원이었는데, 형·동생도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께 저만 투자해달라고 할 순 없었어요. 고민을 미룬 채 군대에 갔는데 운명처럼 부대에서 연기 전공인 선임들을 만났고 용기를 내는 계기가 됐어요. 제대하자마자 군에서 모은 돈으로 연기학원에 등록하고 대학입시 준비를 시작했어요.”
연기학원에서 대본을 읽는 이호연씨 모습. 이호연씨 제공
대전 토박이인 그는 연기 연습과 입시 준비를 서울 아닌 대전에서 했다. 부모님댁도 대전이었지만 “혼자 살아보고 싶다”는 핑계로 집에서 나와 월세방을 구해 살았다. 애초 ‘4년 도전’을 생각했기에 목표를 위한 경제적, 심적 부담을 오롯이 홀로 감당할 각오였다. 3년 동안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곧장 학원에 가 밤 12∼1시까지 연기 연습을 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그는 “연기하는 순간이 즐거워 힘들진 않았다”고 담담히 말했다
“재수에 실패했을 땐 멘탈이 흔들리기도 했어요. 첫해와 달리 재수 땐 ‘나 정도면 합격하겠지’ 자만했거든요. 재수 실패 뒤 부모님이 밥 챙겨 먹으라며 주신 용돈을 거절 못하고 받는데 그땐 정말 슬펐어요. 사실 알바와 연기 연습하는 것 말고 다른 일상은 전혀 없었어요. 괜한 죄책감 때문에 친구도 안 만났거든요. 힘든 것도 연기할 땐 잊었어요.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었지만, 그만둘 생각은 한번도 하지 않았어요. 연기는 제 목표이자 절 버티게 하는 힘이에요.”
“그래도 버거운 현실이 원망스럽진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호연씨는 “에이, 그건 멋없잖아요”라고 했다. 그는 “솔직히 다른 또래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사랑하는 부모님을 욕하는 거라 생각해 꾹 눌렀다. 이런 성격과 자질은 모두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것이고, 난 그게 참 좋고 감사하다. 스무살 넘어 부모 탓 선생님 탓을 하는 건 멋없다”며 씨익 웃었다.
3수 끝에 서울예대 연기전공 입학배우 도전에 다시 ‘10년’ 기회 부여“10년간 마음껏 도전하겠다는 각오”
미래의 자신에게도 그는 ‘10년의 시간’을 줬다. 스스로 대학 합격까지 네번 실패할 기회를 줬던 것처럼, 앞으로 10년 동안은 ‘한눈 팔지 않고’ 배우로서 마음껏 도전해도 얼마든지 좋다는 마음가짐이다. 당장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연극을 대학에서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단 상상만으로도 “정말 설렌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서른다섯쯤이 연기가 깊어질 때라 생각해요. 제 연기도 그때에는 꽃 피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거죠. 그러니 지금부터 10년은 어떤 시련이 오고 힘들어도 좌절하지 않고 계속 연기하겠다는 각오이기도 하고요. 사실 겁이 나서일지도 모르겠어요. 좋은 연기를 하려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누군가 알아봐 주겠죠. 그런 꿈을 꾸면서 나아가보려고요.”
최예린 기자floye@hani.co.kr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