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에부’라고 하면 어떠냐고요? [뉴스룸에서]
최원형기자수정2026-03-02 05:00등록2026-03-02 05:00
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element.0:00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7일 전북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새만금 로봇·수소·에이아이(AI) 시티 투자협약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광고최원형 | 지구환경부 기자광고“‘기후부’라고 하면 에너지 관련된 분들이 (싫어할 수도 있으니)…, ‘기에부’(라고 합시다).”지난 24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보고에 나선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자신을 “기후부 장관”이라고 소개하자, 이재명 대통령은 잠시 보고를 끊으며 이렇게 제안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기후대응을 강조하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산업부 소관이던 에너지 관련 업무 등을 옮겨오는 등 기존 환경부를 확대 개편해 만든 부처다. 기후, 에너지, 환경 세 영역을 하나로 합친 셈인데, 정부조직 약칭에 대한 규칙은 이렇게 만들어진 새 부처의 약칭을 ‘기후부’로 규정하고 있다. 이 중 ‘에너지’ 영역을 굳이 배려한 대통령의 이번 제안으로 앞으로 약칭이 기에부로 바뀔는지는 미지수다. 다만 의문이 자연스레 뒤따른다. ‘환경’ 영역에 대한 배려는 왜 없는 걸까?광고광고기후에너지환경부가 출범하기 10개월 전, 한겨레는 뉴스룸에 ‘지구환경부’라는 부서를 새로 만들었다. 한겨레는 2020년 국내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기후변화를 전담하는 ‘기후변화팀’을 만든 바 있는데, 여기에 미래·과학·동물 등의 영역들까지 붙여 이를 아예 부 차원으로까지 확대 개편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언론사가 정부의 조직 체계를 참고해 자신의 조직 체계를 만든다는 점을 고려하면, 마치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출범을 먼저 내다본 듯한 조처였달까. 당시 ‘도전적인 새 부서 출범’이라며 쏟아진 축하와 격려들 속에, 어떤 분이 보내온 응원 겸 지적 한마디가 뇌리에 강하게 꽂혔다. “부서 이름에 여전히 ‘환경’이란 말을 쓰고 있는 건 조금 아쉽네요.”환경(environment)은 ‘둘러싸고 있다’는 말에서 온 것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에서도 이 뜻을 살린 한자어로 정착됐다. 다만 최근 들어선 이 말이 지닌 한계에 대한 지적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인간이 자기 스스로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따로 떼어놓고 보는 관점이 결국 지구 전체를 자원으로 삼고 착취하는 인간중심주의적 행태를 정당화해오지 않았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국가들은 아예 ‘환경’이란 말이 들어 있지 않은 새로운 정부 부처 이름을 내놓기도 했다. 예컨대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생태전환부’(Ministry of Ecological Transition)란 이름을 쓰고 있다. 집, 서식처 등을 뜻하는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에서 비롯한 ‘생태’(ecology)라는 말이 그 주된 대체재로 여겨진다. 환경이란 말과 달리, 인간 역시 이 집의 한 구성원으로서 서로 동등한 상호작용에 참여하고 있다는 뜻을 담을 수 있어서다.광고이재명 정부는 기후위기의 절실함을 인식하고 대응하는 첫 ‘기후정부’가 될 거란 기대를 받고 출범했다. 그 기대를 실현하기 위해 출범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탄소문명을 종식시키고, 재생에너지 중심의 탈탄소 녹색문명으로 대전환”하는 것을 부처 출범의 가장 중요한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당연히 칭찬하고 또 환영할 일이지만, 한편에선 중요한 무언가가 뒤로 밀리거나 아예 빠져버린 것 아닌가 하는 불안함 역시 점점 커지고 있다. 예컨대 인구가 적은 지역에 재생에너지 설비를 대대적으로 구축하고 이를 통해 전기를 필요로 하는 반도체 공장을 끌어들이는 것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지역균형 발전이란 두마리 새를 함께 잡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우리 지구의 생태적 부담을 증가시키지 않고, 지역의 삶(인간이든 비인간이든)을 희생시켜선 안 되며, 그 결과물도 전체(역시 인간이든 비인간이든)의 이익으로 돌아와야 하고, 어떤 한계선을 넘어서선 결코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우리는 오랫동안 공장이 아닌 땅 그 자체에 기대어 살아왔고, 숲은 단지 ‘탄소를 흡수해줄 저장고’가 아니며, 바다는 해상풍력 천혜의 입지이기 이전에 수많은 생물의 삶터다. 우리가 이 하나뿐인 지구에서 오래도록 공존하기 위해 추구해야 할 ‘문명전환’은, 에너지, 산업, 탈탄소, ‘성장과 발전’ 같은 말들보다 한층 더 높은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언젠가 대통령이 공식 회의에서 이렇게 말하는 날이 오길 기대해보면 안 될까. “‘기후에너지환경부’라고 하면 너무 협소한 가치만 대변하는 것 같으니, 앞으론 ‘생태전환부’라고 하는 게 어때요?”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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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7일 전북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새만금 로봇·수소·에이아이(AI) 시티 투자협약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원형 | 지구환경부 기자
“‘기후부’라고 하면 에너지 관련된 분들이 (싫어할 수도 있으니)…, ‘기에부’(라고 합시다).”
지난 24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보고에 나선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자신을 “기후부 장관”이라고 소개하자, 이재명 대통령은 잠시 보고를 끊으며 이렇게 제안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기후대응을 강조하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산업부 소관이던 에너지 관련 업무 등을 옮겨오는 등 기존 환경부를 확대 개편해 만든 부처다. 기후, 에너지, 환경 세 영역을 하나로 합친 셈인데, 정부조직 약칭에 대한 규칙은 이렇게 만들어진 새 부처의 약칭을 ‘기후부’로 규정하고 있다. 이 중 ‘에너지’ 영역을 굳이 배려한 대통령의 이번 제안으로 앞으로 약칭이 기에부로 바뀔는지는 미지수다. 다만 의문이 자연스레 뒤따른다. ‘환경’ 영역에 대한 배려는 왜 없는 걸까?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출범하기 10개월 전, 한겨레는 뉴스룸에 ‘지구환경부’라는 부서를 새로 만들었다. 한겨레는 2020년 국내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기후변화를 전담하는 ‘기후변화팀’을 만든 바 있는데, 여기에 미래·과학·동물 등의 영역들까지 붙여 이를 아예 부 차원으로까지 확대 개편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언론사가 정부의 조직 체계를 참고해 자신의 조직 체계를 만든다는 점을 고려하면, 마치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출범을 먼저 내다본 듯한 조처였달까. 당시 ‘도전적인 새 부서 출범’이라며 쏟아진 축하와 격려들 속에, 어떤 분이 보내온 응원 겸 지적 한마디가 뇌리에 강하게 꽂혔다. “부서 이름에 여전히 ‘환경’이란 말을 쓰고 있는 건 조금 아쉽네요.”
환경(environment)은 ‘둘러싸고 있다’는 말에서 온 것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에서도 이 뜻을 살린 한자어로 정착됐다. 다만 최근 들어선 이 말이 지닌 한계에 대한 지적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인간이 자기 스스로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따로 떼어놓고 보는 관점이 결국 지구 전체를 자원으로 삼고 착취하는 인간중심주의적 행태를 정당화해오지 않았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국가들은 아예 ‘환경’이란 말이 들어 있지 않은 새로운 정부 부처 이름을 내놓기도 했다. 예컨대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생태전환부’(Ministry of Ecological Transition)란 이름을 쓰고 있다. 집, 서식처 등을 뜻하는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에서 비롯한 ‘생태’(ecology)라는 말이 그 주된 대체재로 여겨진다. 환경이란 말과 달리, 인간 역시 이 집의 한 구성원으로서 서로 동등한 상호작용에 참여하고 있다는 뜻을 담을 수 있어서다.
이재명 정부는 기후위기의 절실함을 인식하고 대응하는 첫 ‘기후정부’가 될 거란 기대를 받고 출범했다. 그 기대를 실현하기 위해 출범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탄소문명을 종식시키고, 재생에너지 중심의 탈탄소 녹색문명으로 대전환”하는 것을 부처 출범의 가장 중요한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당연히 칭찬하고 또 환영할 일이지만, 한편에선 중요한 무언가가 뒤로 밀리거나 아예 빠져버린 것 아닌가 하는 불안함 역시 점점 커지고 있다. 예컨대 인구가 적은 지역에 재생에너지 설비를 대대적으로 구축하고 이를 통해 전기를 필요로 하는 반도체 공장을 끌어들이는 것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지역균형 발전이란 두마리 새를 함께 잡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우리 지구의 생태적 부담을 증가시키지 않고, 지역의 삶(인간이든 비인간이든)을 희생시켜선 안 되며, 그 결과물도 전체(역시 인간이든 비인간이든)의 이익으로 돌아와야 하고, 어떤 한계선을 넘어서선 결코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오랫동안 공장이 아닌 땅 그 자체에 기대어 살아왔고, 숲은 단지 ‘탄소를 흡수해줄 저장고’가 아니며, 바다는 해상풍력 천혜의 입지이기 이전에 수많은 생물의 삶터다. 우리가 이 하나뿐인 지구에서 오래도록 공존하기 위해 추구해야 할 ‘문명전환’은, 에너지, 산업, 탈탄소, ‘성장과 발전’ 같은 말들보다 한층 더 높은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언젠가 대통령이 공식 회의에서 이렇게 말하는 날이 오길 기대해보면 안 될까. “‘기후에너지환경부’라고 하면 너무 협소한 가치만 대변하는 것 같으니, 앞으론 ‘생태전환부’라고 하는 게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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