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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러웨이 따라, 더 나은 세계를 짓는 실뜨기 [.txt]

해러웨이 따라, 더 나은 세계를 짓는 실뜨기 [.txt]

조일준기자수정2025-07-25 05:02등록2025-07-25 05:02

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element.0:00여성학자 원미혜의 표지 그림 ‘hospitality, after Haraway(환대, 해러웨이 이후)’. 15세기 보티첼리의 명화 ‘비너스의 탄생’을 변형한 작품으로, 중심인물인 ‘카밀 비너스’는 곤충과 결합한 혼종 육체로 그려졌다. 나비의 눈과 곤충의 더듬이는 인간-비인간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감각과 존재 양식을 암시한다. 봄날의박씨 제공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크루즈 캠퍼스의 의식사(意識史)학과 및 페미니스트학과 명예 교수인 도나 해러웨이(81)의 학문과 사유를 몇 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대학 학부(동물학·문학·철학)를 마치고 1972년 예일대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은 4년 뒤 첫 단행본 저서로 출판됐다. ‘크리스탈, 직물, 그리고 장(場): 20세기 발생생물학에서의 유기체론 은유들’이다. 하와이대와 존스홉킨스대에서 과학사와 여성학을 강의했고, 산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에서는 미국 최초로 여성주의 이론으로 종신교수가 됐다.이력이 말해주듯, 해러웨이의 관심과 연구 분야는 생물학·기술과학·철학·페미니즘·생태주의까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경계 없이 넘나든다. 수많은 저술과 강연을 관통하는 사유를 요약하자면,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 인간과 비인간(동물·기계·자연)이 서로 얽혀 공존하는 세계를 상상하고 실천하자는 것이다. 그의 저작 중‘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1991), ‘겸손한_목격자@제2의_천년. 여성인간ⓒ_앙코마우스TM를_만나다’(1997),‘종과 종이 만날 때’(2007), ‘트러블과 함께하기’(2016),‘해러웨이 선언문’(2016) 등 7종이 국내에도 번역돼 나왔다.그러나 한국 연구자가 번역서나 논문이 아닌 대중 교양서로 해러웨이의 저작 전반을 해설한 책은 드물다. 최근 저작으로는 2020년 최유미씨가 ‘함께(sym)’와 ‘생산·제작(poiesis)’의 그리스어 합성어 ‘심포이에시스’(sympoiesis)를 열쇳말 삼아 정리한‘해러웨이, ‘공-산’의 사유’(2020, 도서출판b)가 눈에 띈다.광고애프터 해러웨이 l 김애령 지음, 봄날의박씨, 2만1500원김애령 이화여대 인문과학원 교수의 신간 ‘애프터 해러웨이’는 “해러웨이 이후, 해러웨이를 따라,(…) 지금까지 이 세상을 지배해온 이야기들보다 더 나은 이야기를 만들고 더 나은 세계를 지어가는 실천적 놀이에 참여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쓴 책이다. 지은이는 해러웨이의 개념들을 단순히 요약하거나 해설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러웨이적 사유를 읽고, 쓰고, 엮는 방식으로 창발적 대화의 장을 열어젖힌다. 책의 전개가 그런 글쓰기 전략으로 짜였다.‘읽기’(1부)에서는 해러웨이 텍스트 읽기가 오늘날 어떤 철학적 시사점을 갖는지 분석한다. 해러웨이의 언어가 단지 이론의 수단이 아니라 윤리적·정치적 상상력의 인큐베이터이자 실천의 감각이라는 점을 드러내 보이려는 것이다. 그 시작이 “나는 여신보다 사이보그가 되겠다”는 문장으로 유명한‘사이보그 선언’(1985)이다. 해러웨이에게 사이보그는 “기계와 유기체의 잡종으로, 픽션의 존재일 뿐 아니라 사회 현실 속 존재”였다. 지은이는 사이보그 선언에서 “경계 위반을 표시할 혼종적 괴물 계보에 속하는 사이보그는 경계 짓기를 통해 강화돼 온 지배적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적 위계를 교란하는 ‘여성’”, 말하자면 전통적인 이원론을 해체하는 사이보그 페미니즘을 읽어낸다.광고광고도나 해러웨이. 위키미디어 코먼스기술과학과 페미니즘의 결합은 ‘겸손한_목격자@제2의_천년. 여성인간ⓒ_앙코마우스TM를_만나다’(1997)라는, 이메일 주소를 본뜬 복잡하고 파격적인 제목의 책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위 첨자 ⓒ는 저작권 기호, TM은 트레이드 마크(상표)의 약어다. 이메일 수신자인 ‘겸손한 목격자’는 서구 근대과학이 객관적 실험으로 형성된 지식이며, 그 주체는 용맹이 아닌 겸손을 새로운 미덕으로 삼은 남성 과학자의 은유이다.해러웨이는 여성인간ⓒ을 자신의 대리인, 자매이자 새천년의 겸손한 목격자로 채택해 생명이 상품의 형태를 띠게 된 이후를 보여준다. 하여, 책은 전체적으로 기술과학 권력의 남성 가부장제와 생체정보를 상품화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통렬한 풍자이자, 사이보그와 함께 복잡하고 혼종적인 가족을 구성할 자매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힌다.광고‘더듬이를 쓰라’. 원미혜 그림, 봄날의박씨 제공2부 ‘쓰기’는 글쓰기일 뿐 아니라, 개념을 사용하기, 관점을 분석에 적용하기를 포함한다. 지은이는 앞서 소개한 ‘겸손한 과학자’에서 도나 해러웨이가 타자기(typewriter)를 중요한 ‘글쓰기 기계'로 소개한 것에 주목한다. 해러웨이는 독일의 미디어 이론가 프리드리히 키틀러를 인용해, 타자기가 사무직 여성 노동자의 전형적 상징물로 ‘젠더화’한 배경을 설명했다.더 나아가, 타자기는 글쓴이 고유의 필적을 지우고 “어떤 개인도 저장하지 않음”(키틀러)으로써 “종이와 몸, 글쓰기와 영혼 사이의 내밀한 관계를 붕괴”(지은이)시켰다. 해러웨이식으로 보면 이는 두 타이프라이터(영어로 typewriter는 ‘타자기’와 ‘타자수’, 두 가지 뜻이 있다)가 구별되지 않는 기계와 인간의 결합체, 곧 사이보그에 다름아니다.남성적 영역으로 여겨졌던 과학기술과 모험 판타지가 결합한 에스에프(SF·공상과학) 소설이 1970년대 미국 페미니스트 문학 이론에서 실험적이고 대안적인 페미니스트 장르로 떠오른 것도 특기할 만하다. “페미니스트 에스에프는 해러웨이에게 하이테크놀로지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페미니스트 정치학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파브리지오 테라노바 감독이 해러웨이를 인터뷰해서 만든 다큐멘터리 ‘도나 해러웨이: 지구 생존 가이드’(2016)의 한 장면. https://earthlysurvival.org 누리집 갈무리지은이가 서울 청계천 복개 사례에서 자연과 문화의 관계를 분석한 ‘청계천, 도시의 ‘자연TM’’은 ‘해러웨이식 읽기’를 시도한 도드라진 사례 중 하나다. 2005년 10월부터 다시 물이 흐른 청계천은 더는 ‘자연 하천’이 아니다. 2급수로 정수한 물을 하루 12만톤씩 전기와 모터로 흘려보낸다. 그런데 다종의 물고기와 식물이 서식하고 왜가리와 백로가 깃든다. 빌딩 숲 사이로 복원된 자연, 인간의 기계공학으로 유지되는 자연은 자연인가 아닌가? 생태 복원을 둘러싼 찬반 논쟁은 자연 대 인위, 자연 대 문화라는 이분법적 체계에 갇혀 있다. 지은이는 해러웨이를 차용한 ‘자연TM’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얽혀 만들어가는 실천과 새로운 가능성”을 묻는다.광고‘거미처럼 생각하라’. 원미혜 그림, 봄날의박씨 제공‘읽기’와 ‘쓰기’는 자연스럽게 3부 ‘엮기’로 이어진다. 해러웨이는 페미니스트 다문화주의의 대안적 기술과학 연구를 ‘실뜨기 놀이’에 비유했다. 실뜨기는 여러 참여자가 실을 건네고 받으면서 다양한 패턴을 만들어감으로써 “집단적 작업의 감각”을 불러낸다. 실뜨기 놀이는 승패가 없고, 끝이 열려 있으며, 서로에게 응답하는 책임의 연대를 형상화한다.지은이의 눈길이 이번에는 서울 마포구 난지도 하늘공원에 가닿는다. 쓰레기 매립으로 죽음의 땅이 됐다가 인간의 기술 개입으로 생태공원이 된 인공산. 그 회복과 재생의 서사가 빠뜨린 것들은 무엇일까? 도시의 쓰레기 처리는 “신속하고 비가시적인 순환”이 목적이다. 난지도 공원은 그렇게 버려지고 썩어가는 것들을 중심으로, 인간과 여러 비인간 행위자들이 얽혀 분해(해체)와 재생(구성)이 진행되는 ‘포스트 휴먼 생태’를 구성한다. 해러웨이의 ‘공-산(심포이에시스·sympoiesis)적 사유’의 한 사례이자 인간과 자연의 ‘실뜨기 놀이’일 테다. 그렇게 보면, 책의 3부가 전체 360쪽 중 50여쪽으로 아주 적은 분량에 그친 것도 ‘애프터 해러웨이’라는 실뜨기 놀이의 참여자를 위해 비워둔 초대장으로 읽힌다.조일준 선임기자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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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원미혜의 표지 그림 ‘hospitality, after Haraway(환대, 해러웨이 이후)’. 15세기 보티첼리의 명화 ‘비너스의 탄생’을 변형한 작품으로, 중심인물인 ‘카밀 비너스’는 곤충과 결합한 혼종 육체로 그려졌다. 나비의 눈과 곤충의 더듬이는 인간-비인간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감각과 존재 양식을 암시한다. 봄날의박씨 제공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크루즈 캠퍼스의 의식사(意識史)학과 및 페미니스트학과 명예 교수인 도나 해러웨이(81)의 학문과 사유를 몇 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대학 학부(동물학·문학·철학)를 마치고 1972년 예일대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은 4년 뒤 첫 단행본 저서로 출판됐다. ‘크리스탈, 직물, 그리고 장(場): 20세기 발생생물학에서의 유기체론 은유들’이다. 하와이대와 존스홉킨스대에서 과학사와 여성학을 강의했고, 산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에서는 미국 최초로 여성주의 이론으로 종신교수가 됐다.

이력이 말해주듯, 해러웨이의 관심과 연구 분야는 생물학·기술과학·철학·페미니즘·생태주의까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경계 없이 넘나든다. 수많은 저술과 강연을 관통하는 사유를 요약하자면,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 인간과 비인간(동물·기계·자연)이 서로 얽혀 공존하는 세계를 상상하고 실천하자는 것이다. 그의 저작 중‘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1991), ‘겸손한_목격자@제2의_천년. 여성인간ⓒ_앙코마우스TM를_만나다’(1997),‘종과 종이 만날 때’(2007), ‘트러블과 함께하기’(2016),‘해러웨이 선언문’(2016) 등 7종이 국내에도 번역돼 나왔다.

그러나 한국 연구자가 번역서나 논문이 아닌 대중 교양서로 해러웨이의 저작 전반을 해설한 책은 드물다. 최근 저작으로는 2020년 최유미씨가 ‘함께(sym)’와 ‘생산·제작(poiesis)’의 그리스어 합성어 ‘심포이에시스’(sympoiesis)를 열쇳말 삼아 정리한‘해러웨이, ‘공-산’의 사유’(2020, 도서출판b)가 눈에 띈다.

애프터 해러웨이 l 김애령 지음, 봄날의박씨, 2만1500원

김애령 이화여대 인문과학원 교수의 신간 ‘애프터 해러웨이’는 “해러웨이 이후, 해러웨이를 따라,(…) 지금까지 이 세상을 지배해온 이야기들보다 더 나은 이야기를 만들고 더 나은 세계를 지어가는 실천적 놀이에 참여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쓴 책이다. 지은이는 해러웨이의 개념들을 단순히 요약하거나 해설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러웨이적 사유를 읽고, 쓰고, 엮는 방식으로 창발적 대화의 장을 열어젖힌다. 책의 전개가 그런 글쓰기 전략으로 짜였다.

‘읽기’(1부)에서는 해러웨이 텍스트 읽기가 오늘날 어떤 철학적 시사점을 갖는지 분석한다. 해러웨이의 언어가 단지 이론의 수단이 아니라 윤리적·정치적 상상력의 인큐베이터이자 실천의 감각이라는 점을 드러내 보이려는 것이다. 그 시작이 “나는 여신보다 사이보그가 되겠다”는 문장으로 유명한‘사이보그 선언’(1985)이다. 해러웨이에게 사이보그는 “기계와 유기체의 잡종으로, 픽션의 존재일 뿐 아니라 사회 현실 속 존재”였다. 지은이는 사이보그 선언에서 “경계 위반을 표시할 혼종적 괴물 계보에 속하는 사이보그는 경계 짓기를 통해 강화돼 온 지배적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적 위계를 교란하는 ‘여성’”, 말하자면 전통적인 이원론을 해체하는 사이보그 페미니즘을 읽어낸다.

도나 해러웨이. 위키미디어 코먼스

기술과학과 페미니즘의 결합은 ‘겸손한_목격자@제2의_천년. 여성인간ⓒ_앙코마우스TM를_만나다’(1997)라는, 이메일 주소를 본뜬 복잡하고 파격적인 제목의 책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위 첨자 ⓒ는 저작권 기호, TM은 트레이드 마크(상표)의 약어다. 이메일 수신자인 ‘겸손한 목격자’는 서구 근대과학이 객관적 실험으로 형성된 지식이며, 그 주체는 용맹이 아닌 겸손을 새로운 미덕으로 삼은 남성 과학자의 은유이다.

해러웨이는 여성인간ⓒ을 자신의 대리인, 자매이자 새천년의 겸손한 목격자로 채택해 생명이 상품의 형태를 띠게 된 이후를 보여준다. 하여, 책은 전체적으로 기술과학 권력의 남성 가부장제와 생체정보를 상품화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통렬한 풍자이자, 사이보그와 함께 복잡하고 혼종적인 가족을 구성할 자매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힌다.

‘더듬이를 쓰라’. 원미혜 그림, 봄날의박씨 제공

2부 ‘쓰기’는 글쓰기일 뿐 아니라, 개념을 사용하기, 관점을 분석에 적용하기를 포함한다. 지은이는 앞서 소개한 ‘겸손한 과학자’에서 도나 해러웨이가 타자기(typewriter)를 중요한 ‘글쓰기 기계'로 소개한 것에 주목한다. 해러웨이는 독일의 미디어 이론가 프리드리히 키틀러를 인용해, 타자기가 사무직 여성 노동자의 전형적 상징물로 ‘젠더화’한 배경을 설명했다.

더 나아가, 타자기는 글쓴이 고유의 필적을 지우고 “어떤 개인도 저장하지 않음”(키틀러)으로써 “종이와 몸, 글쓰기와 영혼 사이의 내밀한 관계를 붕괴”(지은이)시켰다. 해러웨이식으로 보면 이는 두 타이프라이터(영어로 typewriter는 ‘타자기’와 ‘타자수’, 두 가지 뜻이 있다)가 구별되지 않는 기계와 인간의 결합체, 곧 사이보그에 다름아니다.

남성적 영역으로 여겨졌던 과학기술과 모험 판타지가 결합한 에스에프(SF·공상과학) 소설이 1970년대 미국 페미니스트 문학 이론에서 실험적이고 대안적인 페미니스트 장르로 떠오른 것도 특기할 만하다. “페미니스트 에스에프는 해러웨이에게 하이테크놀로지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페미니스트 정치학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파브리지오 테라노바 감독이 해러웨이를 인터뷰해서 만든 다큐멘터리 ‘도나 해러웨이: 지구 생존 가이드’(2016)의 한 장면. https://earthlysurvival.org 누리집 갈무리

지은이가 서울 청계천 복개 사례에서 자연과 문화의 관계를 분석한 ‘청계천, 도시의 ‘자연TM’’은 ‘해러웨이식 읽기’를 시도한 도드라진 사례 중 하나다. 2005년 10월부터 다시 물이 흐른 청계천은 더는 ‘자연 하천’이 아니다. 2급수로 정수한 물을 하루 12만톤씩 전기와 모터로 흘려보낸다. 그런데 다종의 물고기와 식물이 서식하고 왜가리와 백로가 깃든다. 빌딩 숲 사이로 복원된 자연, 인간의 기계공학으로 유지되는 자연은 자연인가 아닌가? 생태 복원을 둘러싼 찬반 논쟁은 자연 대 인위, 자연 대 문화라는 이분법적 체계에 갇혀 있다. 지은이는 해러웨이를 차용한 ‘자연TM’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얽혀 만들어가는 실천과 새로운 가능성”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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