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이길 수 없는 전쟁, 멈출 용기가 필요하다 [세상읽기]
수정2025-12-02 07:00등록2025-12-02 07:00
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element.0:00지난 30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한 마을에서 한 시민이 러시아군의 드론·미사일 폭격에 파괴된 주택 앞을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광고김정섭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광고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논의가 다시 속도가 붙고 있다. 미국이 주도해 마련한 ‘28개항 평화안’이 그 시발이다. 이 안은 돈바스 지역 포기,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배제 등 다분히 러시아 입장에 기운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자 우크라이나와 유럽은 즉각 반발하며 이를 완화한 수정안을 마련해 러시아에 공을 넘겼다. 이번엔 과연 종전 논의가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다른 어느 때보다 협상 진전에 기대가 모이고 있지만, 상황은 여전히 낙관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전선에서 주도권을 쥔 러시아가 기존의 전쟁 목표에서 물러설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번에도 2022년 이스탄불 회담이나 2025년 리야드 회담 당시와 비슷한 패턴(유럽의 강경 기조를 등에 업은 우크라이나의 버티기)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유럽과 우크라이나는 이제 출구를 모색해야 한다. 우크라이나군은 전선 전반에서 밀리고 있으며, 러시아 점령지는 확대되고 있다. 전황이 악화할수록 우크라이나가 맞닥뜨릴 종전 조건은 더욱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그럼에도 우크라이나가 항전을 고집하는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영토 포기, 비군사화, 나토 가입 배제 등 러시아가 내세우는 종전 조건이 너무 가혹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군사·외교적 주권의 심각한 훼손을 받아들인다는 건 정치적 자살행위에 가깝다. 그동안 항전을 외쳤던 우크라이나와 유럽 엘리트들로서는 국민을 설득할 최소한의 정당화 논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둘째, 설령 종전이 성사되더라도 이는 일시적 휴전일 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체를 러시아의 위성국가로 만들 거라는 의구심이 존재한다. 지금 싸우지 않으면 훗날 더 암울한 미래를 맞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서방의 유약한 대응은 러시아의 팽창 야망을 더욱 자극할 거라는 유럽의 우려도 비슷한 맥락이다. 셋째,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우크라이나는 언제든 반전의 계기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러시아 경제가 곧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는 전망이나, 미국이 토마호크 미사일 제공 등으로 전황을 뒤집을 수 있다는 희망이 그 예다.광고광고그러나 희망과 두려움은 전략이 될 수 없다. 현재 서방의 사고는 모순적이다. 러시아를 한편으론 과대평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과소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3년 반이 지나도록 우크라이나 영토 5분의 1 정도만 차지하며 고전하고 있는 러시아가 나토와 전쟁을 불사하며 유럽 지도를 다시 그릴 수 있다는 극단적 악몽은, 러시아의 역량과 의도를 과대평가하는 일이다. 과거 소련의 침공과 점령을 경험한 북·동유럽의 트라우마가 객관적 상황 평가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제재와 압박을 지속하면 러시아 경제가 버티지 못하고 결국 물러설 거라는 기대는 서방 중심적인 희망적 사고일 뿐이다.특히 유럽의 ‘대리전’(proxy war) 전략이 문제다. 표면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유럽의 재무장을 위한 시간 벌기 전략이 숨어 있다. 동시에 우크라이나를 앞세워 러시아의 힘을 소모시키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그러나 이런 전략은 유럽에도 큰 상처와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전쟁의 장기화는 유럽이 겪고 있는 정치적 불안정과 극우 세력의 부상, 경제적 침체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광고물론 러시아도 승자라고만 할 수는 없다. 유리한 조건으로 전쟁을 끝낸다 해도 러시아의 전략적 손실은 전술적 이점에 비할 바 아니다. 전쟁을 시작한 이유였던 안보적 우려는 오히려 심화하였고, 유럽과 단절된 채 유라시아 동단에서 활로를 모색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궁극적으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쪽은 우크라이나다. 전쟁의 고통이 굴욕적 타협을 강요할 수준에 이른다면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쪽은 약자 쪽이기 때문이다. 물론 러시아도 백기를 강요하며 전쟁을 장기화하는 건 전략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바람직하지 않다.좀더 근본적으로는 전쟁의 성격과 책임에 대한 시각 차이가 문제다. 서방은 러시아의 침공을 억제의 실패로 보는 반면, 러시아는 전쟁의 책임을 탈냉전 이후 범유럽 안보 질서 구축을 외면한 서방의 오만에서 찾고 있다. 단기적 휴전이 가능하다 해도, 이러한 역사 인식의 간극을 메우지 못한다면 유럽의 평화는 결코 안정적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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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한 마을에서 한 시민이 러시아군의 드론·미사일 폭격에 파괴된 주택 앞을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김정섭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논의가 다시 속도가 붙고 있다. 미국이 주도해 마련한 ‘28개항 평화안’이 그 시발이다. 이 안은 돈바스 지역 포기,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배제 등 다분히 러시아 입장에 기운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자 우크라이나와 유럽은 즉각 반발하며 이를 완화한 수정안을 마련해 러시아에 공을 넘겼다. 이번엔 과연 종전 논의가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다른 어느 때보다 협상 진전에 기대가 모이고 있지만, 상황은 여전히 낙관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전선에서 주도권을 쥔 러시아가 기존의 전쟁 목표에서 물러설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번에도 2022년 이스탄불 회담이나 2025년 리야드 회담 당시와 비슷한 패턴(유럽의 강경 기조를 등에 업은 우크라이나의 버티기)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유럽과 우크라이나는 이제 출구를 모색해야 한다. 우크라이나군은 전선 전반에서 밀리고 있으며, 러시아 점령지는 확대되고 있다. 전황이 악화할수록 우크라이나가 맞닥뜨릴 종전 조건은 더욱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가 항전을 고집하는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영토 포기, 비군사화, 나토 가입 배제 등 러시아가 내세우는 종전 조건이 너무 가혹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군사·외교적 주권의 심각한 훼손을 받아들인다는 건 정치적 자살행위에 가깝다. 그동안 항전을 외쳤던 우크라이나와 유럽 엘리트들로서는 국민을 설득할 최소한의 정당화 논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둘째, 설령 종전이 성사되더라도 이는 일시적 휴전일 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체를 러시아의 위성국가로 만들 거라는 의구심이 존재한다. 지금 싸우지 않으면 훗날 더 암울한 미래를 맞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서방의 유약한 대응은 러시아의 팽창 야망을 더욱 자극할 거라는 유럽의 우려도 비슷한 맥락이다. 셋째,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우크라이나는 언제든 반전의 계기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러시아 경제가 곧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는 전망이나, 미국이 토마호크 미사일 제공 등으로 전황을 뒤집을 수 있다는 희망이 그 예다.
그러나 희망과 두려움은 전략이 될 수 없다. 현재 서방의 사고는 모순적이다. 러시아를 한편으론 과대평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과소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3년 반이 지나도록 우크라이나 영토 5분의 1 정도만 차지하며 고전하고 있는 러시아가 나토와 전쟁을 불사하며 유럽 지도를 다시 그릴 수 있다는 극단적 악몽은, 러시아의 역량과 의도를 과대평가하는 일이다. 과거 소련의 침공과 점령을 경험한 북·동유럽의 트라우마가 객관적 상황 평가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제재와 압박을 지속하면 러시아 경제가 버티지 못하고 결국 물러설 거라는 기대는 서방 중심적인 희망적 사고일 뿐이다.
특히 유럽의 ‘대리전’(proxy war) 전략이 문제다. 표면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유럽의 재무장을 위한 시간 벌기 전략이 숨어 있다. 동시에 우크라이나를 앞세워 러시아의 힘을 소모시키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그러나 이런 전략은 유럽에도 큰 상처와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전쟁의 장기화는 유럽이 겪고 있는 정치적 불안정과 극우 세력의 부상, 경제적 침체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러시아도 승자라고만 할 수는 없다. 유리한 조건으로 전쟁을 끝낸다 해도 러시아의 전략적 손실은 전술적 이점에 비할 바 아니다. 전쟁을 시작한 이유였던 안보적 우려는 오히려 심화하였고, 유럽과 단절된 채 유라시아 동단에서 활로를 모색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궁극적으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쪽은 우크라이나다. 전쟁의 고통이 굴욕적 타협을 강요할 수준에 이른다면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쪽은 약자 쪽이기 때문이다. 물론 러시아도 백기를 강요하며 전쟁을 장기화하는 건 전략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바람직하지 않다.
좀더 근본적으로는 전쟁의 성격과 책임에 대한 시각 차이가 문제다. 서방은 러시아의 침공을 억제의 실패로 보는 반면, 러시아는 전쟁의 책임을 탈냉전 이후 범유럽 안보 질서 구축을 외면한 서방의 오만에서 찾고 있다. 단기적 휴전이 가능하다 해도, 이러한 역사 인식의 간극을 메우지 못한다면 유럽의 평화는 결코 안정적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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