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문제와 작은 질문들 [김민형의 여담]
수정2025-07-23 20:09등록2025-07-23 20:07
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element.0:00클립아트코리아김민형 | 영국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장영국 소설가 조지 엘리엇의 소설 ‘미들마치’는 19세기 잉글랜드 중부 도시 주변 사회상을 예리하게 포착해 그 안의 인간 드라마를 섬세하고도 풍자적으로 묘사한다. 영웅적인 주인공 도러시아 브룩의 남편은 에드워드 커서본이라는 학자인데 그는 인생 과업으로 ‘모든 신화의 비밀’이라는 대작을 집필하는 프로젝트에 몰입해 있다. 당시 고전학자나 문헌학자가 집착하던 그리스와 로마 신화를 비롯해 세계 모든 신화를 관통하는 이론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여러 성격적 결함을 겸비한 인물인 그는 결국 작품을 끝내지 못하고 별세한다. 학자들 가운데는 큼직한 목표를 세운 뒤 수년간 그와 관련된 문헌만 끊임없이 읽고 연구하며 언젠가 대작을 쓰겠다는 계획으로 사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중에는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처럼 상당히 성공적인 경우도 있지만 실패가 훨씬 많은 게 현실이다.‘큰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조언은 젊은 학자에게 치명적인 어려움을 안길 가능성이 크다. 학문이 직업인 사람이라면 지속해서 괜찮은 연구 결과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큰 결과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수반하는 전략이다. 과학 중에 수학은 비교적 적은 수의 논문을 요구하는데도 나와 비슷한 세대 수학자라면 일년에 논문 한편 정도 내지 않고는 직장을 유지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요새는 수학계도 내가 젊을 때와 견줘 생산성이 대체로 올라가서 박사학위 받기 전에 이미 연구 논문을 몇편 내는 게 비교적 흔한 현상이다.광고그런데 중요한 질문은 커리어나 실용성과 관계없이 큰 문제에 매달리는 것이 학문 그 자체를 위해서 얼마나 좋은가이다. 이는 젊은 학자가 아니고 종신 교수직을 가진 사람에게도 똑같이 물을 수 있다. 1965년 프랑스의 노벨 생리학상 수상자 프랑수아 자코브의 말을 잠깐 인용할 만하다. ‘현대 과학은 “우주는 어떻게 창조되었는가? 물질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생명의 본질은 무엇인가?”와 같은 일반적 질문이 “돌은 어떻게 떨어지는가? 물은 관 속에서 어떻게 흐르는가? 혈액은 혈관 속에서 어떻게 순환하는가?”와 같은 제한된 질문들로 대체되면서 시작됐다. 이 전환은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어마어마한 질문들에 대해서는 한정된 답만 가능했지만, 제한된 질문들은 점점 일반적인 답으로 이어졌다.’ 즉, 자코브는 작은 질문들에 대한 답의 축적으로 전체 사상 체계가 구축되는 것이 과학의 본질이라고 얘기한 셈이다. 이는 과학의 발전이 수많은 사람의 협업으로 이루어진다는 당연한 현실과도 연결된다. 나 자신은 자코브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영웅적인 과학 서사는 길고 골똘한 생각 끝에 굉장한 결론을 내리는 모험담으로 나타나지만, 현실에서 과학자가 우주의 근원 같은 문제를 생각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학자는 자기 마음 깊은 곳의 질문과 실제 해결 가능한 문제들 사이에 적당한 균형을 찾으며 연구한다. 이 평형을 얼마만큼 잘 유지하느냐가 그 사람의 학문적 역량을 결정하는 것도 같다. 또한, 긴 시간 어려운 문제를 생각하는 연구자도 중간 결과를 논문으로 정리하지 않으면 사고의 진전에 비효율적이 되기 쉽다.광고광고최근 필즈상을 받은 수학자 넷의 생산성을 조사해보니 논문이 적기로 소문난 마리나 뱌조우스카는 일년에 한편, 제임스 메이나드와 허준이는 일년에 평균 두편쯤, 위고 뒤미닐코팽은 일년에 거의 7편을 평균적으로 쓰고 있다.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같으면 일생 논문을 일년에 평균 여섯편쯤 냈지만, 그 대부분은 전혀 읽히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제는 비교적 잘 알려진 듯하다. 칸트는 50대 후반에 쓴 인생 대작 ‘순수이성비판’이 가장 유명하지만, 그전에도 우주론, 지진론, 물체의 운동에 관한 논문 등 일년에 하나꼴로 발행물이 계속 나왔다.(‘순수이성비판’ 이후로는 생산성이 더 커졌다.)물론 그렇다고 젊은 학자에게 깊은 질문을 포기하라고 조언할 수는 없다. 다만, 세상의 다양성처럼 우리 마음속 세계에도 쉽고 어려운 문제, 코앞의 질문과 세상 근본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그사이에 복잡하게 펼쳐지는 탐구 네트워크의 풍성한 생태계가 유지되는 것이 적당하다는 느낌이다.광고
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element.0:00
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element.
김민형 | 영국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장
영국 소설가 조지 엘리엇의 소설 ‘미들마치’는 19세기 잉글랜드 중부 도시 주변 사회상을 예리하게 포착해 그 안의 인간 드라마를 섬세하고도 풍자적으로 묘사한다. 영웅적인 주인공 도러시아 브룩의 남편은 에드워드 커서본이라는 학자인데 그는 인생 과업으로 ‘모든 신화의 비밀’이라는 대작을 집필하는 프로젝트에 몰입해 있다. 당시 고전학자나 문헌학자가 집착하던 그리스와 로마 신화를 비롯해 세계 모든 신화를 관통하는 이론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여러 성격적 결함을 겸비한 인물인 그는 결국 작품을 끝내지 못하고 별세한다. 학자들 가운데는 큼직한 목표를 세운 뒤 수년간 그와 관련된 문헌만 끊임없이 읽고 연구하며 언젠가 대작을 쓰겠다는 계획으로 사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중에는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처럼 상당히 성공적인 경우도 있지만 실패가 훨씬 많은 게 현실이다.
‘큰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조언은 젊은 학자에게 치명적인 어려움을 안길 가능성이 크다. 학문이 직업인 사람이라면 지속해서 괜찮은 연구 결과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큰 결과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수반하는 전략이다. 과학 중에 수학은 비교적 적은 수의 논문을 요구하는데도 나와 비슷한 세대 수학자라면 일년에 논문 한편 정도 내지 않고는 직장을 유지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요새는 수학계도 내가 젊을 때와 견줘 생산성이 대체로 올라가서 박사학위 받기 전에 이미 연구 논문을 몇편 내는 게 비교적 흔한 현상이다.
그런데 중요한 질문은 커리어나 실용성과 관계없이 큰 문제에 매달리는 것이 학문 그 자체를 위해서 얼마나 좋은가이다. 이는 젊은 학자가 아니고 종신 교수직을 가진 사람에게도 똑같이 물을 수 있다. 1965년 프랑스의 노벨 생리학상 수상자 프랑수아 자코브의 말을 잠깐 인용할 만하다. ‘현대 과학은 “우주는 어떻게 창조되었는가? 물질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생명의 본질은 무엇인가?”와 같은 일반적 질문이 “돌은 어떻게 떨어지는가? 물은 관 속에서 어떻게 흐르는가? 혈액은 혈관 속에서 어떻게 순환하는가?”와 같은 제한된 질문들로 대체되면서 시작됐다. 이 전환은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어마어마한 질문들에 대해서는 한정된 답만 가능했지만, 제한된 질문들은 점점 일반적인 답으로 이어졌다.’ 즉, 자코브는 작은 질문들에 대한 답의 축적으로 전체 사상 체계가 구축되는 것이 과학의 본질이라고 얘기한 셈이다. 이는 과학의 발전이 수많은 사람의 협업으로 이루어진다는 당연한 현실과도 연결된다. 나 자신은 자코브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영웅적인 과학 서사는 길고 골똘한 생각 끝에 굉장한 결론을 내리는 모험담으로 나타나지만, 현실에서 과학자가 우주의 근원 같은 문제를 생각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학자는 자기 마음 깊은 곳의 질문과 실제 해결 가능한 문제들 사이에 적당한 균형을 찾으며 연구한다. 이 평형을 얼마만큼 잘 유지하느냐가 그 사람의 학문적 역량을 결정하는 것도 같다. 또한, 긴 시간 어려운 문제를 생각하는 연구자도 중간 결과를 논문으로 정리하지 않으면 사고의 진전에 비효율적이 되기 쉽다.
최근 필즈상을 받은 수학자 넷의 생산성을 조사해보니 논문이 적기로 소문난 마리나 뱌조우스카는 일년에 한편, 제임스 메이나드와 허준이는 일년에 평균 두편쯤, 위고 뒤미닐코팽은 일년에 거의 7편을 평균적으로 쓰고 있다.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같으면 일생 논문을 일년에 평균 여섯편쯤 냈지만, 그 대부분은 전혀 읽히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제는 비교적 잘 알려진 듯하다. 칸트는 50대 후반에 쓴 인생 대작 ‘순수이성비판’이 가장 유명하지만, 그전에도 우주론, 지진론, 물체의 운동에 관한 논문 등 일년에 하나꼴로 발행물이 계속 나왔다.(‘순수이성비판’ 이후로는 생산성이 더 커졌다.)
물론 그렇다고 젊은 학자에게 깊은 질문을 포기하라고 조언할 수는 없다. 다만, 세상의 다양성처럼 우리 마음속 세계에도 쉽고 어려운 문제, 코앞의 질문과 세상 근본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그사이에 복잡하게 펼쳐지는 탐구 네트워크의 풍성한 생태계가 유지되는 것이 적당하다는 느낌이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