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천 두더지들, 게임·영상·사진으로 읽는 기술 속 자아
화면 아래로
파고드는 관람
김희천의 《두더지들》은 게임을 보는 전시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게임 같은 기술 환경 안에서 어떻게 보고 기억하고 ‘나’를 만들고 있는지 되묻는 전시다.
2026년 8월 20일 문을 연 이 전시는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의 ‘미디어 작가전’ 첫 번째 순서이자 김희천의 첫 대규모 개인전이다. 2023년 이후 근작과 미술관 제작 지원으로 완성한 게임·영상·사진 신작을 한 자리에서 소개한다. 낯선 기술 용어에 겁먹을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화면 속 사건을 완벽히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그 화면이 내 시간 감각과 시선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차리는 일이다.
두더지는 땅 위의 질서를 정면으로 따라가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통로를 만들고, 서로 떨어져 보이는 장소 사이를 아래에서 연결한다. 공식 전시 설명에서 두더지는 서로 다른 게임 세계를 오가는 이중첩자이자, 기술에 포획된 환경에서 빠져나오려는 염원과 단일하게 고정된 자아를 흔드는 존재로 제시된다. 전시 제목은 귀여운 동물을 앞세운 은유가 아니라 관객에게 건네는 이동 방식의 제안에 가깝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개의 계정을 오간다. 업무용 프로필과 가족 채팅방의 말투가 다르고, 지도 앱이 보여 주는 도시와 발로 걷는 도시가 다르다. 사진 앱의 자동 분류는 추억을 대신 정리하고, 추천 알고리즘은 ‘내가 좋아할 것’을 나보다 먼저 말한다. 이때 자아는 하나의 단단한 중심이라기보다 여러 시스템 사이를 건너는 임시 접속점처럼 보인다.
두더지의 굴은 직선 도로가 아니다. 막히면 돌아가고, 지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경로를 남긴다. 이 이미지를 마음에 두면 자동 재생 게임의 우연한 장면 전환이나 네 개 화면이 동시에 흐르는 영상도 ‘정답 찾기’가 아니라 ‘경로 감지’로 볼 수 있다. 어느 장면에서 시선이 붙잡혔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다시 보고 싶은데 작품은 왜 기다려 주지 않는지를 기록해 보자.
나는 화면을 조종하고 있는가, 아니면 화면이 나의 시선을 조종하고 있는가?
게임인데
플레이어가 없다
자동 재생 게임은 관객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는다.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세계가 진행된다. 익숙한 인터페이스에서 통제권만 비워 냈을 때, 우리는 게임을 ‘하는 사람’에서 시스템의 결정을 목격하는 사람으로 이동한다.
세 개의 입구
GAME · VIDEO · PHOTO〈레몬〉 — 세계 사이를 파고드는 버터
2026년 신작 〈레몬〉은 게임 엔진 유니티로 제작된 자동 재생 게임이다. 앞선 작품 〈커터3〉와 〈더블포져〉에 숨어 있던 두더지가 두 게임 세계 사이를 땅굴로 오갔다는 상상에서 출발하고, 두더지 ‘버터’를 주인공으로 한 가상의 비디오게임 ‘버터3’의 플레이를 따라간다. 관객이 직접 조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결핍이 아니라 작품의 핵심 조건이다.
게임 화면을 볼 때 우리는 보통 목표, 점수, 실패 여부를 찾는다. 여기서는 그 습관을 잠시 내려놓고 이동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살펴보는 편이 좋다. 캐릭터의 방향은 선택처럼 보이는가, 알고리즘의 결과처럼 보이는가. 반복되는 장면은 오류인가 기억인가.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굴은 탈출구인가 또 하나의 시스템인가. 이 질문들이 서사의 빈칸을 채운다.
〈말린〉 — 네 화면이 만드는 불안정한 시점
〈말린〉은 2026년 제작된 4채널 비디오와 5.1채널 오디오 작업으로 상영 시간은 35분이다. 생성형 AI를 활용해 가까운 미래의 이미지 환경이 인간의 인식과 시점에 어떤 변화를 만들지 탐색한다. 네 화면을 한꺼번에 ‘다 보려는’ 욕심은 곧 실패한다. 바로 그 실패가 작품을 읽는 첫 단서다.
한 화면에 집중하면 다른 화면의 변화가 주변시에서 사라지고, 소리는 고개를 돌리기 전에 사건을 예고하거나 이미 지나간 장면을 붙든다. 중앙의 가장 좋은 자리를 찾기보다 처음 5분은 전체를, 다음 10분은 한 화면을, 마지막에는 소리의 방향을 따라 보기를 권한다. 같은 작품이 세 번 다른 구조로 나타날 것이다.
〈.dng〉 — 휴대전화 사진이 기억의 군집이 될 때
〈.dng〉는 작가가 2023년부터 휴대전화로 촬영한 5,841장의 사진 가운데 전시를 위해 선별한 120여 점으로 구성된 C-프린트 가변 설치다. 휴대전화 사진은 대개 개별 이미지보다 축적 방식으로 삶에 들어온다. 찍을 때는 중요했지만 다시 열어 보지 않은 장면, 클라우드가 날짜와 장소로 묶은 장면, 비슷한 구도 때문에 자동으로 대표 사진 하나만 남는 장면이 그렇다.
120여 점을 하나하나 해독하려 하지 말고 먼저 거리별로 보자. 멀리서는 사진의 밀도와 리듬을 보고, 중간 거리에서는 반복되는 색이나 물체를 찾고, 가까이에서는 유독 머무르게 하는 한 장을 고른다. 그 한 장이 왜 눈에 들어왔는지 설명해 보면 작품의 아카이브와 관객의 개인 기억이 만나는 지점이 드러난다.
회화 앞에서는 관객이 체류 시간을 정하지만 시간 기반 작품 앞에서는 작품이 관객의 시간을 요구한다. 중간에 들어가면 시작을 놓친 것 같고, 끝까지 보면 다음 작품을 볼 체력이 줄어든다. 그래서 미디어 전시는 지식보다 시간 배분이 중요하다. 모든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것이 성실한 관람이라는 생각부터 내려놓자.
첫 순환에서는 전체 공간의 규모와 소리의 겹침을 확인한다. 두 번째 순환에서는 오늘 가장 궁금한 매체 하나를 고른다. 게임의 비결정성, 네 화면의 충돌, 사진 아카이브의 밀도 가운데 하나면 충분하다. 세 번째 순환은 되돌아보기다. 처음 지나친 작품으로 돌아갔을 때 생기는 차이가 이 전시의 핵심 경험이 된다.
기술 용어도 장벽처럼 느껴질 수 있다. 유니티는 실시간 3차원 환경과 게임을 만드는 엔진이고, 자동 재생 게임은 사용자의 조작 없이 정해진 규칙과 변수에 따라 진행되는 형식이다. 4채널은 서로 다른 네 개 영상 신호가 네 화면에 배치된다는 뜻이며, 5.1채널은 공간 여러 방향에서 소리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용어를 안다고 작품의 의미가 자동으로 풀리지는 않지만, 작품이 어떤 조건으로 시간을 설계하는지는 더 또렷해진다.
작품에서 우연처럼 보인 장면은 정말 우연인가, 시스템이 설계한 우연인가?
90분 관람 동선
‘지하 굴 파기’
지형 읽기
전시실 1·2와 다목적홀을 빠르게 훑는다. 작품 설명은 제목과 매체만 확인하고, 소리가 어디서 겹치는지 표시한다.
한 매체 깊게
게임·영상·사진 중 하나를 중심축으로 삼는다. 〈말린〉을 고르면 35분 전체 상영과 전후 이동 시간을 확보한다.
역주행
가장 빨리 지나친 작품으로 돌아간다. 첫인상과 두 번째 인상이 왜 달라졌는지 휴대전화 메모에 한 문장만 남긴다.
현장에서 써먹는 7가지 메모
시작을 놓쳤다면 그대로 본다
시간 기반 작품에 중간 입장했다고 출구에서 다음 회차만 기다릴 필요는 없다. 중간에서 시작해 끝을 본 뒤 처음으로 이어 붙이면 선형 서사와 다른 구조가 보인다. 단, 현장 안내가 별도 입장 시간을 정했다면 그 운영 규칙을 따른다.
화면보다 몸의 방향을 기록한다
고개가 어느 소리에 먼저 돌아갔는지, 어느 화면 앞에서 뒤로 물러섰는지, 사진 군집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었는지 적어 보자. 미디어 작품에서 관객의 몸은 수동적인 받침대가 아니라 편집 장치다.
‘AI가 만들었다’에서 멈추지 않는다
생성형 AI 사용 여부는 출발 정보이지 감상의 결론이 아니다. 어떤 이미지가 불가능하게 매끈한지, 시점이 왜 불안정한지, 인간의 기억과 기계의 확률적 조합이 어디에서 충돌하는지를 살펴야 기술 비평이 구체화된다.
조작할 수 없다는 감각을 관찰한다
게임처럼 보이는 화면 앞에서 손이 움직이거나 컨트롤러를 찾게 된다면 그 반응 자체를 붙잡는다. 선택권이 사라진 순간 답답한지 편안한지에 따라 관객이 디지털 환경에 기대하는 통제의 크기가 드러난다.
사진 한 장보다 배열을 본다
〈.dng〉에서 이미지 하나의 정보만 캐기보다 간격, 높이, 색의 반복, 비어 있는 부분을 본다. 대량의 개인 이미지가 전시장 벽에서 공적 장면으로 바뀌는 순간, 사적인 기억의 소유권과 편집권을 함께 생각할 수 있다.
해설은 정답지가 아니라 두 번째 입구다
공식 안내상 작품 해설은 매일 오후 2시에 제공된다. 먼저 혼자 본 뒤 해설을 듣거나, 해설 뒤 같은 작품으로 돌아가 자신의 첫인상과 비교해 보자. 일정은 변동될 수 있으므로 방문 당일 미술관 공지를 재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감상 기록은 세 문장이면 충분하다
‘가장 오래 본 장면’, ‘가장 불편했던 장면’, ‘집에 가서 다시 묻고 싶은 질문’을 한 문장씩 쓴다. 작품 줄거리를 복원하는 장문의 후기보다 자신의 시선이 움직인 궤적을 남기는 편이 이 전시와 잘 맞는다.
이 전시에서 기술은 반짝이는 미래의 소품이 아니다. 게임 엔진은 화면을 그리는 도구인 동시에 시간과 사건의 규칙을 생산하고, 생성형 AI는 이미지를 만드는 도구인 동시에 무엇이 그럴듯한 시각으로 선택되는지 결정한다. 휴대전화 카메라는 기록 도구인 동시에 촬영 날짜, 위치, 자동 보정, 분류 방식까지 기억의 틀을 만든다.
그래서 작품을 ‘기술을 사용한 예술’이라고만 부르면 중요한 층위가 빠진다. 우리는 기술 밖에 서서 기술을 구경하지 않는다. 이미 알림, 피드, 지도, 카메라, 게임, 업무 플랫폼을 거치며 시간을 체험한다. 작품은 이 익숙한 환경을 조금 비틀어 우리가 평소 보지 못한 규칙을 드러낸다.
예컨대 자동 재생 게임은 플레이어의 자유를 제거한 대신 시스템의 시간성을 앞에 내놓는다. 4채널 영상은 한 사람이 모든 정보를 동시에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공간으로 바꾼다. 수천 장 중 선별된 사진은 ‘기억하는 나’와 ‘분류하는 기기’ 사이에 편집자가 누구인지 묻는다. 세 매체는 서로 달라 보이지만, 고정된 하나의 시점을 의심한다는 점에서 연결된다.
이 연결을 발견하면 전시 제목의 복수형도 중요해진다. 두더지는 한 마리가 아니라 ‘두더지들’이다. 하나의 주인공이 세계를 정복하는 대신 여러 존재가 서로 다른 굴을 판다. 관객 역시 각자 다른 순서로 작품을 만나고 다른 장면을 놓치며 서로 다른 전시를 완성한다.
방문 전에 딱 이것만
화–금 10:00~20:00. 토·일·공휴일은 3~10월 10:00~19:00. 매주 월요일 휴관이며 월요일이 공휴일이면 정상 개관한다.
관람 종료 30분 전까지 입장할 수 있다. 시간 기반 작품을 충분히 보려면 마감 직전보다 종료 90분 전 도착이 낫다.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 B1 제1·2전시실과 다목적홀. 주소는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79길 65이며 대표번호는 02-2124-5800이다.
공식 안내 기준 관람료는 무료이고 예약 없이 관람할 수 있다. 단체 방문이나 연계 프로그램은 별도 조건이 있을 수 있다.
어두운 공간, 빠르게 변하는 영상, 다방향 음향에 민감하다면 입구에서 직원에게 작품 환경과 우회 동선을 문의한다. 불편하면 즉시 밝은 공간에서 쉰다.
작품별 촬영 가능 여부와 플래시·삼각대 제한은 현장 표식을 따른다. 화면을 기록하느라 상영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첫 순환은 눈으로 보는 편이 좋다.
누구와 가도 관람법은 달라진다
혼자 간다면 〈말린〉 35분을 포함해 90~120분을 잡고, 한 작품을 다시 보는 역주행을 넣는다. 이어폰은 빼고 전시실 밖의 잔향까지 들어 보자.
친구와 간다면 작품 설명을 먼저 토론하지 말고 서로 가장 오래 본 장면 하나만 말한다. 같은 공간에서 전혀 다른 화면을 기억했다는 사실이 작품의 다중 시점을 체감하게 한다.
청소년과 간다면 게임의 줄거리보다 ‘조작할 수 없는 게임도 게임인가’, ‘AI가 만든 장면의 감독은 누구인가’를 질문한다. 정답을 유도하지 않고 10분마다 감상 위치를 바꾸면 집중을 돕는다.
미디어 환경에 민감한 관객이라면 사전에 미술관 대표번호로 밝기·음량·좌석·휴식 가능 여부를 확인한다. 공식 전시는 ‘다언어 전시 읽기’ 등 접근성 확대 장치와 연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안내한다. 구체 제공 방식은 방문일 기준 정보를 확인해야 한다.
관람은 출구에서 끝나지 않는다. 미술관을 나와 지도 앱을 켜는 순간 내 위치는 파란 점으로 축약되고, 귀가 경로는 몇 개의 추천 선으로 정리된다. 카메라를 열면 야간 모드가 빛을 보정하고, 사진 앱은 비슷한 장면을 묶는다. 전시에서 만난 게임 엔진, 다중 시점, 사진 아카이브의 질문이 일상 도구 안에서 다시 작동한다.
귀가하는 동안 세 가지 실험을 해 볼 수 있다. 첫째, 지도 추천 경로와 실제 눈앞의 골목이 어떻게 다른지 본다. 둘째, 사진을 찍기 전 카메라가 무엇을 자동으로 보정하려 하는지 관찰한다. 셋째, 오늘의 사진을 자동 분류에 맡기지 않고 직접 세 장만 고른다. 기술을 거부하는 실험이 아니라 기술이 결정하는 부분을 구별하는 연습이다.
며칠 뒤에는 세 장 가운데 한 장을 다시 열어 보자. 전시장 장면보다 이동 중의 빛이나 대화가 더 생생할 수도 있다. 기억은 작품 목록처럼 저장되지 않고 우연한 감각을 따라 굴을 판다. 《두더지들》의 가장 오래가는 효과는 미래 기술에 관한 놀라움보다, 지금 내가 세계를 보는 장치가 중립적이지 않다는 자각일 것이다.
오늘 내가 본 전시는 작품이 만든 것인가, 내가 놓친 것들이 만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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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KEYWORDS자동 재생 — 선택이 없는 세계에도 사건은 생긴다
일반적인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방향을 고르고 버튼을 누르며 결과에 책임을 느낀다. 자동 재생 형식은 그 익숙한 원인과 결과의 고리를 느슨하게 만든다. 화면 속 존재는 움직이지만 관객의 손은 개입할 수 없다. 이때 생기는 답답함은 단순히 재미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인터페이스를 보면 곧바로 통제권을 기대하도록 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품은 바로 그 기대를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장면이 우연히 이어지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코드가 정한 규칙, 확률, 충돌 조건 안에서 벌어진다. 이는 현실의 추천 피드와도 닮았다. 사용자는 자유롭게 넘긴다고 느끼지만 다음에 나타날 후보는 이미 시스템이 좁혀 놓는다. 자동 재생 게임 앞에서 느낀 무력감은 일상 플랫폼에서 보이지 않던 선택의 경계를 감지하게 한다.
게임 엔진 — 그림을 만드는 도구이자 시간을 만드는 규칙
게임 엔진을 단지 3차원 이미지를 그리는 프로그램으로 이해하면 절반만 본 셈이다. 엔진은 빛과 중력, 물체의 충돌, 카메라 이동, 사건 발생 조건을 동시에 계산한다. 즉 화면의 외형뿐 아니라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만든다. 영화 카메라가 이미 일어난 장면을 기록한다면 실시간 엔진은 관객이 보는 순간에도 규칙에 따라 다음 상태를 계산할 수 있다.
그래서 같은 작품을 다시 보았을 때 세부 장면이 달라질 가능성, 인물이 아니라 시스템이 서사를 끌고 가는 감각, 끝과 시작이 명확하지 않은 시간성이 중요해진다. 관객은 완성된 이야기의 소비자가 아니라 작동 중인 세계의 관찰자가 된다.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는가’와 함께 ‘어떤 규칙이 이야기를 발생시키는가’를 물으면 작품이 훨씬 입체적으로 열린다.
다중 채널 — 동시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볼 수 없는 것
네 개 화면은 정보량을 늘리기 위한 장식이 아니다. 한 관객의 눈이 모든 방향을 같은 선명도로 볼 수 없다는 한계를 공간 속에 설치한다. 중앙에서 전체를 볼 때는 세부가 사라지고, 한 화면에 가까이 갈 때는 나머지 화면이 주변으로 밀려난다. 어느 위치도 완전한 관람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는 실패가 아니라 작품이 관객에게 요구하는 선택이다.
소리까지 여러 방향에서 들리면 시선의 결정은 더 복잡해진다. 화면 밖 소리가 고개를 돌리게 하고, 돌아본 순간 방금 보던 영상은 진행되어 버린다. 결국 관객마다 기억한 편집본이 달라진다. 동행인과 관람 후 가장 선명한 장면을 비교하면 서로 같은 작품을 보고도 얼마나 다른 시간을 가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생성 이미지 — 진짜와 가짜보다 시점의 생산 방식을 묻기
생성형 AI가 등장하는 작품을 보면 ‘실제 촬영인가’부터 확인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진위를 가르는 일만으로 감상이 끝나면 이미지가 어떤 관점을 만들었는지 놓친다. 학습 데이터에서 반복된 구도, 확률적으로 매끈하게 연결된 표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익숙하게 느껴지는 카메라 움직임을 살펴보자. 생성 이미지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축적된 시각문화의 패턴을 다시 조합한다.
따라서 질문은 ‘AI가 예술을 대신했는가’보다 구체적이어야 한다. 누가 입력 조건을 정했는가, 어떤 결과를 골랐는가, 오류를 남겼는가 지웠는가, 관객은 왜 특정 장면을 현실처럼 받아들이는가. 이런 질문은 기술 찬반 논쟁을 넘어 이미지가 신뢰를 만드는 과정을 보게 한다.
사진 아카이브 — 많이 찍을수록 더 잘 기억하는가
휴대전화는 촬영 비용을 거의 없앴다. 우리는 선택하기 전에 찍고, 나중에 고르겠다고 생각하며 수천 장을 쌓는다. 하지만 검색과 자동 분류를 기기에 맡길수록 어떤 사진이 다시 떠오를지도 소프트웨어의 기준에 영향을 받는다. 날짜, 장소, 얼굴, 비슷한 장면 묶기 같은 기능은 편리하지만 기억을 배열하는 편집 행위이기도 하다.
5,841장에서 120여 점을 고르는 과정은 양을 줄이는 일이면서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일이다. 서로 다른 날의 장면이 색이나 형태 때문에 이웃할 수 있고, 개인적 사연이 없는 관객에게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읽힐 수 있다. 사진의 의미가 촬영 순간에 고정되지 않고 선택과 배열, 전시 공간에서 다시 생긴다는 점을 기억하면 벽면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문장처럼 보인다.
고정되지 않은 자아 — 계정 사이를 이동하는 ‘나’
온라인 환경에서 한 사람은 하나의 모습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게임의 아바타, 업무 플랫폼의 프로필, 가족 단체방의 말투, 사진 앱의 자동 앨범은 서로 다른 나를 구성한다. 어느 하나가 거짓이고 하나만 진짜라고 잘라 말하기 어렵다. 각 환경이 요구하는 규칙에 반응하며 잠정적인 자아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두더지가 여러 게임 세계 사이를 오간다는 설정은 이 분산된 자아를 생각하게 한다. 이동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각 세계의 물리 법칙과 서사 규칙을 벗어날 수 없다. 관객은 자신이 플랫폼을 옮길 때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유지하는지 떠올릴 수 있다. 이름, 사진, 말투, 관심사 가운데 시스템이 가장 강하게 고정하는 것은 무엇인지 묻는 순간 작품의 은유가 개인 경험과 연결된다.
두더지의 윤리 — 탈출과 침투 사이
굴은 바깥으로 도망치는 통로일 수도 있고 다른 세계 안으로 몰래 들어가는 통로일 수도 있다. 두더지가 이중첩자로 설명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술 환경에서 완전히 벗어나겠다는 선언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대신 시스템 사이의 틈을 발견하고, 한 플랫폼의 규칙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며, 자동화된 선택을 잠시 멈추는 작은 이동이 가능하다.
전시 관람 역시 같은 태도를 연습한다. 작품의 줄거리를 빠르게 요약해 소유하려 하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장면 곁에 머문다. 공식 해설을 듣되 자신의 첫 반응을 지우지 않는다. 사진을 찍되 화면을 전부 기록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린다. 이 작은 선택들은 기술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기술에 완전히 포획되지 않는 관람자의 굴이 된다.
사실 확인과 더 읽기
본문의 전시 일정, 장소, 관람료, 운영 시간, 작품 매체와 제작연도는 2026년 8월 22일 확인한 서울시립미술관 및 서울문화포털 공식 안내를 우선 기준으로 작성했다. 일정과 현장 운영은 바뀔 수 있으므로 방문 직전 공식 페이지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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