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지진 10년26초에서 5~10초로
2016년 9월 12일 밤 규모 5.8의 흔들림은 한국 사회가 지진을 ‘남의 나라 재난’으로 볼 수 없게 만든 사건이었다. 10년 뒤 관측망과 경보는 빨라졌고 공공시설 내진성능도 높아졌다. 그러나 진앙 가까운 곳의 경보 사각지대, 오래된 민간건축물, 아직 다 읽지 못한 단층은 다음 10년의 숙제로 남아 있다.
10주년을 이틀 앞둔 2026년 9월 10일, 경주에서는 행정안전부와 기상청이 공동 개최한 국제 지진워크숍의 둘째 날 논의가 이어진다. 회고의 출발점은 2016년의 공포지만, 질문은 현재형이다. 우리는 더 빨리 알아차리게 됐는가, 건물은 더 잘 버티게 됐는가,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다시 올 수 있는 지진’을 생활 속 위험으로 다룰 준비가 됐는가.
이번 워크숍에는 국내 지진정책과 연구 성과뿐 아니라 대만·칠레 등 지진을 자주 경험한 국가의 대응기술, 한반도 지하 단층과 속도구조를 결합한 모델, 단층구조선 조사·평가기술이 논의 대상에 올랐다. 정부가 10년 성과를 정리하는 시점과 해남에서 소규모 연속지진이 이어진 시점이 겹친 것도 의미가 있다. 지진방재는 기념일에만 되새기는 정책이 아니라, 작은 흔들림이 이어질 때 불안을 사실과 행동으로 바꾸는 체계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날 밤 무엇이 바뀌었나
2016년 9월 12일 오후 7시 44분 32초, 경북 경주시 남남서쪽 약 9km에서 규모 5.1의 지진이 먼저 발생했다. 48분가량 뒤인 오후 8시 32분 54초에는 그 인근에서 규모 5.8 본진이 발생했다. 기상청의 당시 발표에 따르면 본진 진원 깊이는 약 15km였고 최대진도는 경주와 대구에서 Ⅵ, 부산·울산·창원에서 Ⅴ였다.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대부분에서 흔들림이 느껴졌고, 당시 기상청 계기지진관측 이래 가장 큰 규모였다.
중요한 것은 규모 하나만이 아니다. 전진과 본진이 짧은 간격으로 이어지고 전국적인 체감이 발생하면서 통신, 재난문자, 대피, 건축물 안전, 문화재 보호, 원전 안전, 학교 대응까지 여러 시스템의 약한 고리가 동시에 드러났다. 본진 지진조기경보는 최초 관측 뒤 약 26초에 발표됐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길지만, 당시에는 국내 지진조기경보 체계가 막 실전에 들어간 초기 단계였다.
피해 통계는 자료의 집계 기준에 따라 숫자가 조금 다르다. 기상청의 2016년 연보는 부상자 23명, 건물 균열과 문화재 피해 등을 포함한 9천여 건의 크고 작은 피해, 110억원을 넘는 피해액으로 정리했다. 반면 10주년을 맞아 정부 백서를 인용한 연합뉴스 르포는 재산 피해를 5,368건으로 전한다. ‘신고·피해 항목 전체’와 ‘재산피해 집계’처럼 기준이 다를 수 있으므로 서로 다른 숫자를 억지로 하나로 맞추기보다 어떤 집계인지 구분해서 읽는 편이 정확하다.
주민의 기억은 통계보다 오래간다. 진앙 인근 마을은 무너진 담과 창고를 다시 세우고 평온한 일상을 되찾았지만, 10년 뒤에도 일부 주민은 높은 곳의 물건부터 바닥에 내려놓는 습관이 남았다고 말한다. 재난의 회복은 벽을 고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위험을 예측하고, 정보를 믿고, 대피 행동을 몸에 익히고, 오래된 집을 실제로 보강할 수 있어야 비로소 다음 충격에 대한 회복력이 생긴다.
26초가 5~10초가 되기까지
지진경보는 지진을 미리 예언하는 기술이 아니다. 지진이 이미 시작된 뒤, 상대적으로 빠른 P파를 관측해 더 큰 피해를 만드는 S파가 도달하기 전에 정보를 계산하고 전파하는 기술이다. 그래서 ‘몇 초 빠른가’가 생명과 시스템의 대응 여지를 가른다. 엘리베이터를 가까운 층에 세우거나, 공장 설비를 안전모드로 바꾸거나, 수술실과 철도·전력시설이 비상절차를 시작하는 데 몇 초는 작지 않은 시간이다.
우리나라의 지진조기경보는 2015년 서비스 초기에는 관측 후 50초 이내가 목표였다. 2016년 경주 본진에서는 약 26초, 2017년 포항지진에서는 19초 수준으로 줄었다. 기상청은 관측망 확충과 분석기술 개선을 거쳐 2021년 8월부터 규모 5.0 이상 지진의 조기경보를 최초 관측 뒤 5~10초 수준으로 운영하고 있다. 경보 체계만 놓고 보면 10년 사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다.
하지만 여기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 진앙 바로 옆에서는 강한 S파가 조기경보가 만들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다. 여러 관측소 신호를 모아 지진의 위치와 규모를 안정적으로 계산하는 네트워크 방식의 특성 때문이다. 기상청이 ‘지진경보 사각지대’라고 부르는 영역이다. 즉 전국 평균 경보시간이 빨라졌다고 해서 진앙 인근 주민에게 언제나 몇 초의 대피 여유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 한계를 줄이기 위해 기상청은 국가 주요시설과 핵심기반 시설을 대상으로 2022년 8월부터 ‘지진현장정보’를 시범 운영해 왔다. 이 방식은 최소 두 개 관측자료를 이용해 최초 관측 후 3~5초 수준으로 특정 수요자에게 빠른 정보를 주는 구조다. 2026년에는 기존 조기경보와 현장경보를 결합하는 방안을 마련해 진앙 인근의 공백을 줄이는 방향을 제시했다. 속도를 올릴수록 오탐과 불확실성을 관리해야 하므로, ‘더 빠르게’와 ‘충분히 신뢰할 수 있게’를 동시에 맞추는 것이 기술의 핵심이다.
여러 관측소로 정확도를 확보
규모 5.0 이상 지진은 최초 관측 뒤 5~10초 수준으로 조기경보를 제공한다. 넓은 지역에 안정적인 정보를 주는 데 초점이 있다.
진앙 가까운 시설에 더 빠르게
적은 관측자료로 3~5초 수준의 빠른 신호를 제공하는 시범체계다. 주요시설의 자동 안전조치를 앞당기는 데 의미가 있다.
195곳에서 550곳으로, ‘많이 느낀다’의 함정
경보가 빨라진 배경에는 촘촘해진 관측망이 있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지진조기경보 서비스를 시작한 2015년 1월 국가지진관측망 관측소는 195곳이었다. 2026년 1월에는 550곳으로 늘었고, 관측망의 평균 조밀도는 22.6km에서 13.5km로 좁아졌다. 기상청은 이 고밀도 관측망을 통해 지진 발생 뒤 약 3초 이내에 첫 관측이 가능한 체계를 갖췄다고 설명한다.
이 변화는 지진 통계를 읽을 때도 중요하다. 연합뉴스가 기상청 지진연보를 분석한 결과, 한반도에서 규모 2.0 이상 지진은 2006~2015년 연평균 53.4건에서 2016~2025년 연평균 116.5건으로 늘었다. 2016년과 2017년의 많은 여진 영향을 제외해도 2018~2025년 연평균은 86.25건이었다. 숫자만 보면 ‘한반도 지진이 두 배 넘게 위험해졌다’고 단정하고 싶어질 수 있다.
그러나 관측망 자체가 195곳에서 550곳으로 세 배 가까이 촘촘해졌다는 사실을 함께 봐야 한다. 더 촘촘한 관측망은 과거라면 놓쳤을 작은 지진을 더 잘 잡아낼 수 있다. 실제 지각 활동의 변화와 탐지능력 향상 효과가 한 통계 안에 섞여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발생 건수의 단순 비교만으로 ‘위험도가 몇 배 증가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위험은 규모, 깊이, 진앙 위치, 단층 특성, 인구·건축물 밀집도, 내진성능을 함께 봐야 한다.
그럼에도 관측망 확대가 주는 사회적 이익은 분명하다. 첫째, 더 작은 신호를 더 빨리 잡는다. 둘째, 서로 다른 관측소에서 들어오는 자료가 늘어 위치와 규모 추정이 안정된다. 셋째, 지진이 잦지 않았던 지역에서 작은 연속지진이 생겼을 때 패턴을 세밀하게 추적할 수 있다. 최근 해남 연속지진에 대해 여러 기관과 전문가가 자료를 공유하며 발생 깊이와 가능성을 평가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관측 기반과 무관하지 않다.
건물이 버티는 힘은 얼마나 늘었나
경보는 몇 초를 벌어주지만, 실제 피해 규모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구조물이 얼마나 버티느냐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5년 말 전국 기존 공공시설물 내진율은 82.7%다. 도로·철도·전력시설, 병원, 학교 등 31종 공공시설물을 대상으로 한 수치다. 행안부는 2026~2030년 제4단계 기존 공공시설물 내진보강 기본계획을 통해 2030년까지 90% 이상, 2035년에는 100% 내진성능 확보를 목표로 두고 있다.
82.7%는 분명 큰 진전이지만 ‘국내 건축물 10개 중 8개가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첫째, 이 수치는 내진보강 대상인 기존 공공시설물에 관한 통계다. 둘째, 지역별·시설별 격차가 크다. 셋째, 민간건축물은 다른 문제다. 특히 오래된 저층 주택, 상가, 소규모 공장처럼 내진설계 의무가 강화되기 전에 지어진 건물은 비용과 소유관계 때문에 보강 속도를 내기 어렵다.
10주년 현장을 취재한 연합뉴스는 경북의 공공시설물 내진율이 2016년 36.8%에서 2025년 말 66.8%로 높아졌지만, 같은 시점 경북 민간건축물 내진율은 전체의 11.0%, 내진설계 대상 건축물 기준으로도 13.54%에 그쳤다고 보도했다. 전국 공공시설물 통계와 경북 민간건축물 통계는 모집단이 달라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정책의 속도가 공공과 민간에서 크게 다르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다.
민간건축물의 어려움은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실행비용과 인센티브의 문제에 가깝다. 내진진단을 받아도 보강공사비를 감당하기 어렵고, 임대건물은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오래된 건물은 내진보강만 따로 하기보다 리모델링·에너지개선·소방안전 개선과 묶어야 경제성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 다음 10년의 내진정책은 ‘기준을 강화했다’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 소유자가 공사까지 갈 수 있는 금융·세제·보조·인증 설계를 정교하게 만드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공공 82.7% 뒤에 남은 질문
학교·병원·도로 같은 공공시설의 내진율이 올라가는 동안, 오래된 민간건축물의 보강은 상대적으로 더디다. 지진은 ‘평균 내진율’이 아니라 가장 취약한 건물과 생활권에서 큰 피해를 만든다. 다음 단계의 정책은 취약 건축물을 찾아내고 실제 공사까지 연결하는 능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해남의 작은 지진이 던진 현재형 질문
경주지진 10주년 논의가 과거에 머물 수 없는 이유는 최근 해남에서 소규모 지진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가 8월 24일 전문가회의 결과를 공개하면서 밝힌 집계를 보면, 해남에서는 8월 14일부터 23일까지 규모 2.0 이상 7회를 포함해 총 72회의 소규모 지진이 이어졌다. 8월 23일 오전 6시 43분에는 규모 3.1 지진이 발생했고 최대진도 Ⅳ가 관측됐다.
전문가들은 당시 자료를 바탕으로 지진이 약 20km 깊이의 하부 지각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2020년 같은 지역의 연속지진 사례와 비교할 때 대규모 지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피해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반복성을 고려해 위기경보 ‘주의’를 유지하며 감시를 강화했다. 이 판단은 ‘안심해도 된다’는 선언과 다르다. 현재 관측된 패턴에서 대형 지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는 과학적 평가와, 추가 지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재난관리 판단을 동시에 둔 것이다.
연속지진이 발생하면 온라인에서는 작은 지진의 횟수를 근거로 ‘더 큰 지진의 전조’라는 말이 빠르게 퍼질 수 있다. 그러나 특정한 연속지진이 곧 대형지진으로 이어진다고 예측할 수 있는 검증된 공식은 없다. 지진의 발생 시각·장소·규모를 단기적으로 정확히 예측하는 기술도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작은 지진이 반복될 때 필요한 것은 공포를 키우는 단정이 아니라 관측자료를 공개하고, 전문가 평가의 조건과 불확실성을 설명하며, 주민이 해야 할 행동을 반복적으로 안내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10주년 워크숍이 지하 단층·속도구조 통합모델과 단층구조선 조사·평가기술을 논의하는 것은 중요하다. 한반도의 지하구조를 더 잘 알수록 발생 가능한 지진의 특성과 지반 흔들림을 지역별로 정교하게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단층지도는 ‘다음 지진 날짜를 알려주는 지도’가 아니다. 장기적인 위험도 평가와 건축·시설 기준, 비상대응 우선순위를 더 과학적으로 만드는 기반에 가깝다.
10년 정책의 궤적, ‘반응’에서 ‘상시 대비’로
경주지진 직후 정책의 첫 과제는 정보 전달의 혼선을 줄이는 것이었다. 당시 긴급재난문자 발송 지연 문제가 불거진 뒤 행정안전부와 기상청으로 나뉘어 있던 지진 재난문자 송출체계는 2016년 11월 기상청 중심으로 일원화됐다. 2017년 정부는 옥외대피소와 실내구호소를 구분해 지정하고 지도서비스에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으며, 건축물대장에 내진설계 여부를 표시하는 등 시민이 위험정보를 더 쉽게 확인하도록 제도를 손봤다.
두 번째 축은 시설과 단층이었다. 정부는 공공시설물 내진보강 완료 목표를 앞당기고 민간시설 내진성능 인증과 지원제도를 확대했다. 동시에 전국 단층조사를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계획을 세웠다. 2018년 포항지진 이후 개선대책에서는 전국 단층연구 완료 목표를 2041년에서 2036년으로 5년 앞당겼고, 내진보강과 지진대피 훈련, 이재민 임시주거, 트라우마 지원까지 범위를 넓혔다.
세 번째 축은 ‘평소 작동하는 체계’다. 관측소는 계속 늘고 조기경보는 빨라졌으며, 지진 행동요령은 재난문자와 교육·훈련에 반복적으로 반영됐다. 주요시설에는 사람의 판단을 기다리지 않고 설비가 자동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더 빠른 현장정보를 주는 방향이 시험되고 있다. 지진방재가 재난 직후 복구비를 지급하는 행정에서, 관측·경보·건축·훈련·시설 자동제어가 연결된 상시 시스템으로 이동한 것이다.
규모 5.8 본진과 전국적 체감. 재난문자 송출체계를 정비하고 지진을 국가적 상시위험으로 재인식했다.
대피소 정비, 단층조사 착수, 매뉴얼 개정, 내진보강 확대가 본격화됐다.
조기경보 단축, 내진보강 목표 앞당김, 민간 인증, 구호·트라우마 지원까지 정책 범위를 넓혔다.
규모 5.0 이상 조기경보가 5~10초 수준으로 단축되고, 주요시설 대상 3~5초 현장정보가 시범운영됐다.
550개 관측소, 공공시설 내진율 82.7%라는 성과 위에서 경보 사각지대와 민간 취약건축물, 단층연구가 다음 과제로 떠올랐다.
경보가 울리면 무엇을 해야 하나
기술이 빨라져도 마지막 몇 초의 행동이 엉키면 효과가 줄어든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조건 밖으로 뛰어나가는 것이 아니다. 강한 흔들림 중에는 유리, 간판, 외벽 마감재, 책장, 조명기구처럼 낙하하거나 넘어지는 물체가 더 직접적인 위험이 될 수 있다. 행정안전부 행동요령의 핵심은 흔들림이 지속되는 동안 튼튼한 탁자 아래로 들어가 몸을 보호하고, 방석이나 가방 등으로 머리를 가린 뒤 흔들림이 멈출 때까지 버티는 것이다.
흔들림이 멈춘 뒤에는 출구를 확보하고 주변 상황을 확인한 다음, 안내에 따라 운동장이나 공원처럼 넓은 곳으로 이동한다. 엘리베이터보다는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 기본이며, 해안에서 강한 지진을 느꼈거나 지진해일 경보가 나온 경우에는 높은 곳이나 견고한 고층건물의 높은 층으로 신속하게 이동해야 한다. 가족끼리 ‘어디로 모일지’를 평소 정해두면 통신이 혼잡한 상황에서 불필요한 이동을 줄일 수 있다.
집 안에서는 고정되지 않은 가구가 위험하다. 특히 침대와 소파 옆의 높은 장식장, 냉장고 위 무거운 물건, 통로 쪽으로 넘어질 수 있는 책장은 작은 비용으로도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출입문이 막히지 않도록 가구 배치를 살피고, 손전등·보조배터리·생수·상비약·마스크·간단한 비상식량을 한곳에 보관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중요한 것은 거대한 ‘생존가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전과 통신 혼잡 속에서 몇 시간에서 하루 정도 버틸 수 있는 현실적인 준비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다.
학교와 사업장은 조금 다르다. 학교는 학생이 동시에 출입구로 몰리지 않도록 수업 중 보호 자세, 흔들림 종료 후 대피 순서를 반복 훈련해야 한다. 공장과 연구시설은 가스·화학물질·고온장비·회전체처럼 자동 차단이 필요한 설비를 미리 식별해야 한다. 병원과 철도·전력시설은 몇 초 빠른 현장정보가 실제 절차에 연결되는지가 중요하다. 지진경보의 가치는 휴대전화 알림음 자체가 아니라 ‘알림이 오면 자동으로 무엇이 움직이는가’에서 완성된다.
흔들릴 때 탁자 아래에서 머리를 보호하고, 멈춘 뒤 출구를 확보한다. 넘어질 가구와 낙하물부터 평소 고정한다.
한꺼번에 계단으로 몰리지 않도록 보호→확인→대피 순서를 훈련한다. 비상연락과 집결지를 사전에 공유한다.
가스·전기·고온설비·정밀장비의 자동 또는 수동 안전정지 절차를 경보와 연결한다.
다음 10년, 성과보다 ‘빈틈의 크기’를 줄여야 한다
앞으로의 지진방재를 평가하는 기준은 평균 수치의 상승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관측소 550곳, 경보 5~10초, 공공시설 내진율 82.7%는 모두 중요한 성과다. 그러나 재난은 평균보다 빈틈을 파고든다. 진앙 가까운 지역의 몇 초 공백, 내진보강이 되지 않은 오래된 건물 한 동, 가구가 고정되지 않은 교실 하나, 자동정지 절차가 없는 공장 한 곳이 실제 피해를 크게 만들 수 있다.
첫째, 진앙 인근의 ‘무경보 시간’을 줄여야 한다
조기경보는 물리법칙을 이길 수 없다. 따라서 진앙 인근에서는 전국 단위 경보가 오기 전에 시설 자체 센서나 현장정보로 자동 안전조치를 시작하는 다층 구조가 필요하다. 철도, 원전, 석유·가스, 반도체·화학, 대형병원 같은 핵심시설부터 현장정보를 실제 제어시스템과 안정적으로 연결하고, 오탐이 생겼을 때의 운영기준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둘째, 민간 노후건축물에 돈이 흐르게 해야 한다
공공시설은 계획과 예산을 통해 내진보강을 밀어붙일 수 있지만 민간은 다르다. 소유자는 보강효과를 눈으로 보기 어렵고 공사비를 즉시 부담해야 한다. 세액공제와 저리융자, 보험료 연계, 리모델링 통합지원, 지진안전 인증의 시장가치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취약지역의 오래된 주택과 다중이용시설을 우선순위로 골라 제한된 예산을 집중하는 방식도 필요하다.
셋째, 단층연구 결과가 건축과 도시계획으로 연결돼야 한다
단층을 조사하는 것 자체가 최종 목적은 아니다. 단층 위치와 지반특성, 예상 흔들림을 바탕으로 지역별 지진위험도를 정교화하고, 그 결과가 내진설계 기준과 공공시설 투자 우선순위, 응급대응 계획에 반영돼야 한다. 연구성과가 학술보고서에 머물면 시민의 안전으로 번역되지 않는다.
넷째, 통계는 더 잘 설명돼야 한다
관측망이 촘촘해지면 작은 지진의 탐지 건수가 늘어날 수 있다. 반대로 지진 횟수가 줄었다고 위험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몇 회 발생’만 전달하기보다 규모 분포, 깊이, 진도, 단층 맥락, 관측망 변화까지 함께 설명해야 한다. 이런 설명이 쌓여야 연속지진이 발생했을 때 과장된 전조설과 근거 없는 안심론 사이에서 시민이 사실을 판단할 수 있다.
다섯째, 훈련은 ‘알고 있다’를 ‘몸이 움직인다’로 바꿔야 한다
지진 행동요령을 한 번 읽는 것과 갑작스러운 흔들림 속에서 제대로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 학교, 어린이집, 요양시설, 장애인시설, 병원처럼 이동에 시간이 필요한 곳은 일반적인 대피구호보다 더 세밀한 절차가 필요하다. 정기 훈련에서 실제 출구가 막혔을 때의 우회로, 야간 상황, 보호자 연락두절, 정전 상황까지 연습해야 대응력이 생긴다.
숫자를 읽는 법이 곧 안전의 일부다
지진 기사에서 가장 자주 오해되는 숫자는 ‘규모’와 ‘진도’다. 규모는 지진 자체가 방출한 에너지의 크기를 나타내는 하나의 값에 가깝다. 반면 진도는 특정 장소에서 실제로 얼마나 강하게 흔들렸는지를 나타낸다. 같은 규모의 지진이라도 진원 깊이, 거리, 지반조건, 건물 특성에 따라 지역별 진도와 피해는 달라진다. 그래서 “규모가 작으니 안전하다”거나 “규모가 같으니 피해도 같다”는 식의 판단은 맞지 않는다.
경주 본진은 규모 5.8이었고 경주·대구에서 최대진도 Ⅵ가 관측됐다. 해남의 8월 23일 지진은 규모 3.1이었지만 가까운 지역에서는 최대진도 Ⅳ가 관측됐다. 규모가 훨씬 작아도 가까운 주민은 뚜렷한 흔들림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먼 지역에서는 규모가 큰 지진이어도 약하게 느낄 수 있다. 재난문자가 지진 규모와 함께 예상 또는 계기진도 정보를 전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하나는 ‘경보시간’이다. “5~10초 경보”는 지진이 나기 5~10초 전에 예측해 알려준다는 뜻이 아니다. 최초 관측 이후 분석과 통보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실제로 내가 있는 곳에서 강한 흔들림이 오기까지 확보되는 시간은 진앙과의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 진앙에서 멀수록 상대적으로 여유가 생길 수 있고, 진앙 바로 근처는 경보보다 흔들림이 먼저 올 수 있다.
마지막은 ‘내진율’이다. 전국 기존 공공시설물 내진율 82.7%를 모든 주택과 상가의 안전비율로 읽으면 안 된다. 공공시설물이라는 특정 모집단의 성능 확보율이고, 민간건축물은 별도 통계와 정책을 봐야 한다. 지진방재 성과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숫자의 분모와 기준을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지진 발생 횟수도 같은 원칙으로 읽어야 한다. 2016년 이전 10년과 이후 10년의 규모 2.0 이상 지진 횟수를 단순 비교하면 최근이 더 많다. 하지만 같은 기간 국가지진관측망은 195곳에서 550곳으로 촘촘해졌고, 작은 지진을 포착하는 능력도 좋아졌다. 실제 지하에서 일어난 현상과 사람이 기록해 낸 현상은 구분해야 한다. 관측 건수가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한반도의 지진위험이 같은 비율로 커졌다고 결론 내릴 수 없는 이유다. 반대로 “관측망이 좋아져서 많이 잡힌 것뿐”이라며 위험을 축소하는 것도 성급하다. 장기 추세는 관측환경 변화와 지질학적 자료를 함께 놓고 전문가가 해석해야 한다.
이 원칙은 지역 통계를 볼 때 더 중요하다. 전국 평균 내진율이 높아져도 특정 지역의 노후 주거지, 학교 주변의 오래된 비구조재, 좁은 골목과 낙하물 위험까지 자동으로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지진방재는 전국 평균을 올리는 정책과 함께 동네 단위의 취약성을 찾아 줄이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 시민에게 필요한 정보도 “우리나라 평균”만이 아니라 내가 자주 머무는 집·학교·직장·병원의 내진 여부, 가까운 옥외대피장소, 이동 경로처럼 행동으로 연결되는 정보다. 좋은 재난통계는 불안을 키우는 숫자도, 안심을 강요하는 숫자도 아니다. 무엇을 더 준비해야 하는지 우선순위를 보여주는 숫자여야 한다.
작은 지진이 여러 번 나면 큰 지진이 곧 온다는 뜻인가?
그렇게 단정할 수 없다. 해남 연속지진에 대해 정부 전문가들은 당시 관측자료상 대규모 지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했다. 다만 추가 발생 가능성에 대비해 감시와 대응태세는 유지했다.
조기경보 5~10초면 누구나 5~10초 먼저 피할 수 있나?
아니다. 5~10초는 최초 관측 뒤 경보 발표까지의 시간이다. 진앙 가까운 곳은 강한 흔들림이 경보보다 먼저 도착할 수 있어 현장경보와 자동 안전조치가 중요하다.
공공시설 내진율 82.7%면 우리 집도 대체로 안전한가?
그 수치는 기존 공공시설물에 대한 통계다. 민간건축물과 직접 같은 분모로 볼 수 없다. 특히 오래된 주택이나 상가는 준공연도와 내진설계 적용 여부, 구조 상태를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지진이 나면 바로 밖으로 뛰어나가야 하나?
강하게 흔들리는 동안에는 낙하물과 유리 파손이 위험하다. 먼저 탁자 아래 등에서 머리와 몸을 보호하고, 흔들림이 멈춘 뒤 상황을 확인해 넓은 장소로 대피하는 것이 기본이다.
경주의 기억을 ‘시스템의 습관’으로 바꿀 때
2016년 경주지진은 한국 사회의 지진방재를 빠르게 움직인 사건이었다. 재난문자 전달체계가 정비됐고 관측소가 늘었으며 조기경보 시간은 크게 줄었다. 공공시설 내진보강과 전국 단층조사가 장기계획으로 자리 잡았고, 지진 행동요령과 대피훈련도 일상적인 재난교육의 일부가 됐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분명 다른 나라 수준의 체계를 갖춰가고 있다고 평가할 근거가 있다.
그렇다고 10주년을 ‘이제 준비가 끝났다’는 기념으로 만들 수는 없다. 관측망과 경보는 자연현상을 없애지 못한다. 내진율 평균은 오래된 한 채의 취약함을 대신해 주지 못한다. 단층조사는 정확한 발생 시각을 예언하지 못한다. 정부의 역할은 이런 한계를 숨기지 않고, 위험을 더 잘 측정하고, 더 빨리 전달하고, 취약한 곳에 예산을 우선 배분하며, 시민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안내하는 것이다.
시민의 역할도 ‘지진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다. 집의 높은 가구를 고정하고, 대피장소를 한 번 확인하고, 가족과 집결지를 정하고, 흔들릴 때의 첫 행동을 기억하는 일처럼 작은 준비를 생활의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다. 지진은 드물기 때문에 준비가 잊히고, 드문 만큼 한 번 발생했을 때 낯선 공포가 커진다. 그래서 방재는 빈도가 낮은 위험을 꾸준히 기억하게 만드는 사회적 장치가 필요하다.
2026년 경주의 국제 워크숍이 ‘지난 10년’과 함께 ‘미래 10년’을 제목에 올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음 10년의 성공은 관측소가 몇 개 더 늘었는지보다, 진앙 인근의 사각지대가 얼마나 줄었는지, 노후 민간건축물의 실제 보강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단층 연구가 지역별 안전투자와 연결됐는지, 반복되는 작은 지진 앞에서 시민이 과장된 소문보다 공식정보를 먼저 찾는지로 판단해야 한다.
10년 전의 26초는 오늘의 기준이 아니다
경주지진이 남긴 가장 큰 변화는 ‘한국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확인한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 확인을 관측소 550곳, 5~10초 조기경보, 82.7% 공공시설 내진율 같은 구체적인 시스템으로 바꿨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제 다음 단계는 평균을 올리는 정책에서 가장 취약한 지점의 위험을 줄이는 정책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지진방재의 성숙도는 큰 지진이 오지 않는 동안에도 그 준비가 계속 작동하는지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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