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AI·삼성,
차세대 AI칩 협력의 문을 넓혔다
자체 추론칩을 만든 오픈AI가 삼성전자와 차세대 반도체의 공동 연구·생산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메모리와 데이터센터, 기업용 AI 도입으로 얽혀 있던 관계가 칩 설계와 생산의 더 깊은 층으로 이동하는 신호다. 다만 삼성 파운드리가 구체적인 양산 계약을 따냈다는 발표는 아직 없다.
9월 9일 서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오픈AI 코리아의 해리슨 김 총괄은 삼성전자와의 협력 가운데 가장 진전이 큰 분야로 오픈AI가 개발하는 차세대 칩의 공동 생산과 연구를 언급했다. 발언 자체는 짧았고, 어떤 공정에서 어떤 칩을 얼마나 생산할지, 삼성전자가 설계 지원·파운드리·메모리·첨단 패키징 가운데 어디까지 맡을지에 대한 세부사항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기대를 부풀리는 해석보다 이미 확인된 퍼즐을 맞춰 보는 일이다.
그 퍼즐의 첫 조각은 오픈AI가 더 이상 범용 가속기 구매자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픈AI는 6월 브로드컴과 함께 첫 자체 추론 가속기 ‘Jalapeño’를 공개했고, 이를 단발성 제품이 아니라 여러 세대로 이어지는 자체 컴퓨팅 플랫폼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조각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미 2025년부터 오픈AI의 글로벌 AI 인프라 구상에 필요한 고급 메모리 공급 확대와 한국 데이터센터 검토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 조각은 삼성전자가 올해 한국 전 임직원과 전 세계 DX 부문을 대상으로 오픈AI의 기업용 도구를 대규모 도입하며 단순 공급자와 고객의 경계를 동시에 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발언은 갑자기 등장한 새 동맹이라기보다, 메모리→데이터센터→사내 활용→차세대 칩 연구·생산으로 이어지는 협력의 수직적 확장으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AI 경쟁이 모델 성능만으로 결정되던 시기를 지나 전력, 메모리 대역폭, 패키징, 네트워크, 생산수율과 공급 안정성까지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이는 국면에 들어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9월 9일 발언에서 확정된 것과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
확정된 문장은 비교적 명료하다. 오픈AI는 삼성전자와 차세대 칩의 공동 연구와 생산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공개했다. 이 표현은 단순한 구매협상보다 깊다. ‘연구’는 설계·공정·패키징·메모리 인터페이스·시스템 최적화 같은 기술 협력 가능성을 열어 두고, ‘생산’은 실제 양산 체계와 공급망을 염두에 둔 협력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시사와 확정은 다르다. 실제로 삼성 파운드리가 특정 노드에서 오픈AI의 후속 칩을 위탁생산한다는 계약, 물량, 양산 시점, 패키징 방식, HBM 세대는 발표되지 않았다.
이 구분은 중요하다. 반도체 뉴스는 ‘개발 협력’과 ‘테이프아웃’, ‘샘플 생산’, ‘양산 수주’가 각각 다른 단계다. 설계 프로젝트가 진행돼도 최종 양산은 다른 파운드리로 갈 수 있고, 메모리와 패키징만 특정 업체가 맡을 수도 있으며, 복수 공급자 전략으로 세대별 물량을 나눌 수도 있다. 특히 AI 가속기는 연산 다이 하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고대역폭 메모리, 인터포저, 기판, 네트워크 칩, 전원 관리, 냉각과 랙 시스템까지 이어지는 복잡한 조달망이 성능과 비용을 좌우한다.
기사에서 선을 긋는 지점
확정: 오픈AI가 삼성과 차세대 칩 공동 연구·생산 협력의 진전을 공개했다. 확정 아님: 삼성 파운드리의 특정 공정 수주, 양산 물량, 후속칩 이름, 생산 개시일, 독점 공급 여부. 이 다섯 가지는 별도 발표가 나오기 전까지 추정으로 남겨야 한다.
Jalapeño가 보여 준 변화: AI 기업이 칩의 ‘사용자’에서 ‘설계자’로
오픈AI의 첫 자체 추론 가속기 Jalapeño는 이번 협력을 이해하는 기준점이다. 오픈AI는 이 칩을 범용 연산 장치를 가져다 쓰는 방식이 아니라 대규모 언어모델 추론에 맞춰 처음부터 설계한 전용 가속기로 소개했다. 핵심 목표는 단순한 최고 연산량이 아니라 실제 서비스에서 중요한 처리량과 지연시간, 전력효율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것이다. 사용자가 질문을 보내고 답을 받기까지의 체감 속도, 한 랙이 처리할 수 있는 토큰 양, 같은 전력으로 운영 가능한 요청 수가 결국 서비스 비용과 직결된다.
오픈AI에 따르면 Jalapeño는 설계 시작부터 제조 테이프아웃까지 9개월이 걸렸다. 회사는 자체 AI 도구를 칩 설계와 최적화 과정에도 활용했다고 밝혔다. 반도체 업계의 전통적인 긴 개발주기를 고려하면 매우 공격적인 속도다. 하지만 빠른 설계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후에는 검증, 수율, 패키지 열설계, 메모리 대역폭, 보드·랙 통합, 데이터센터에서의 실제 운용 안정성이 차례로 검증돼야 한다. 그래서 오픈AI가 브로드컴의 실리콘 구현 및 네트워킹 역량, 셀레스티카의 보드·랙 통합 역량과 함께 ‘다세대 플랫폼’을 강조한 대목이 중요하다.
모델에 맞춘 연산
실제 추론 패턴에 맞춰 연산과 데이터 이동을 함께 최적화하면 범용 가속기보다 높은 실사용 효율을 노릴 수 있다.
대역폭이 병목을 결정
연산 유닛이 빨라도 메모리에서 데이터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면 처리량은 떨어진다. HBM과 패키징이 핵심인 이유다.
랙 전체가 하나의 컴퓨터
네트워크, 전원, 냉각, 스케줄링까지 묶여야 대규모 서비스에서 칩의 장점을 실제 비용 절감으로 바꿀 수 있다.
여기서 삼성과의 협력이 갖는 의미가 커진다. 오픈AI가 후속 세대 칩을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확장하려면 설계 파트너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고급 메모리, 첨단 제조, 패키징, 대규모 생산 능력을 가진 파트너가 필요하다. 삼성전자는 이 여러 층을 동시에 갖춘 드문 기업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구체 계약이 공개되지 않은 현재에도 양사의 협력 범위가 넓어질 구조적 이유는 분명하다.
삼성이 연결되는 세 개의 층: 메모리, 제조, 실제 사용
첫 번째 층은 메모리다. 2025년 10월 오픈AI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글로벌 AI 인프라 프로젝트에 필요한 고급 메모리 공급 확대를 추진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당시 오픈AI는 양사가 생산능력을 빠르게 확대해 월 90만 장 수준의 DRAM 웨이퍼 투입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 숫자는 곧바로 오픈AI 전용 물량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AI 인프라가 요구하는 메모리 수요의 규모를 보여 준다. 모델이 커지고 동시에 더 많은 사용자가 추론을 요청할수록 메모리 용량과 대역폭, 전력효율의 중요성이 커진다.
두 번째 층은 제조와 연구다. 바로 이번 9월 9일 발언이 추가한 부분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뿐 아니라 첨단 로직 공정, 패키징, 시스템 반도체 개발 능력을 갖고 있다. 다만 어떤 역량이 오픈AI의 후속 칩에 실제로 투입되는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따라서 ‘삼성 파운드리가 오픈AI 칩을 생산한다’고 앞서가는 대신, ‘양사가 차세대 칩 생산과 연구 협력을 구체화하고 있으며 역할은 미공개’라고 표현하는 것이 현재 사실에 가장 가깝다.
세 번째 층은 실제 사용이다. 오픈AI는 6월 삼성전자 한국 임직원 전체와 전 세계 DX 부문 임직원에게 기업용 ChatGPT와 Codex를 제공하는 대규모 배치를 공개했다. 연구개발과 제조, 마케팅, 제품개발, 기업업무 등 폭넓은 영역에서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이 관계는 흥미롭다. 삼성은 오픈AI에 반도체와 인프라 역량을 제공하는 공급자이면서, 동시에 오픈AI의 소프트웨어를 대규모로 사용하는 고객이다. 기술 협력에서 이런 양방향 구조는 상대의 실제 워크로드와 생산 현장을 이해할 기회를 늘린다.
고대역폭 메모리 공급
AI 가속기가 실제 성능을 내도록 데이터를 빠르게 공급하는 층. 용량과 대역폭뿐 아니라 전력과 발열도 중요하다.
차세대 칩 연구·생산
공정, 설계지원, 패키징 가운데 구체 역할은 아직 미공개다. 확인된 것은 협력의 방향과 진전 자체다.
삼성 내부의 AI 활용
공급망 파트너이면서 대규모 기업용 AI 고객이라는 이중 관계가 기술 피드백의 접점을 넓힌다.
왜 HBM이 중요해졌나: 연산보다 데이터 이동이 더 비쌀 때
AI 가속기를 자동차 엔진에 비유하면 HBM은 단순한 연료탱크가 아니라 연료를 엔진에 얼마나 빠르게 전달하느냐를 좌우하는 공급계에 가깝다. 거대한 모델의 가중치와 중간 계산값을 연산 유닛이 필요할 때마다 제때 공급하지 못하면, 아무리 빠른 연산 코어를 많이 넣어도 일부는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난다. 이른바 ‘메모리 벽’은 AI 반도체에서 오랫동안 지적돼 온 병목이고, 생성형 AI의 추론량이 커질수록 문제는 더 선명해진다.
추론 서비스는 학습과 다른 요구를 가진다. 한 번에 거대한 배치를 처리하는 효율도 중요하지만, 사용자의 요청에 빠르게 첫 응답을 내고 이후 토큰을 일정한 속도로 생성해야 한다. 지연시간을 낮추면서 동시에 많은 사용자를 처리하려면 메모리 대역폭과 용량, 칩 간 연결, 서버 간 네트워크, 캐시 전략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Jalapeño가 데이터 이동 감소와 연산·메모리·네트워크의 균형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기업에는 이 변화가 기회이면서 압박이다. 메모리 강점만으로도 AI 인프라 수혜를 받을 수 있지만, 고객이 원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더 낮은 토큰당 비용과 더 높은 서비스 안정성이다. HBM의 세대 전환 속도, 첨단 패키징 생산능력, 인터페이스 표준, 고객 맞춤형 검증까지 통합 대응하지 못하면 메모리 공급만으로는 협상력이 제한될 수 있다. 반대로 설계 초기부터 고객의 가속기 아키텍처와 함께 최적화할 수 있다면 부품 공급자보다 더 깊은 시스템 파트너로 올라설 여지가 생긴다.
삼성 파운드리 수주인가? 지금은 ‘가능성’과 ‘사실’을 분리할 때
시장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은 단순하다. “그렇다면 오픈AI의 다음 자체 칩을 삼성 파운드리가 찍는 것인가?” 현재 공개된 정보만으로는 답을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오픈AI 코리아가 ‘공동 생산과 연구’를 언급했지만 어떤 생산 단계인지 특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운드리 업계에서는 고객이 설계하는 로직 다이의 제조뿐 아니라 공정 공동 최적화, 테스트 칩, 첨단 패키징, 메모리 결합, 공급망 검증까지 넓은 범위의 협력 언어가 사용된다.
오픈AI의 첫 자체 칩은 브로드컴과 함께 설계·산업화를 추진해 왔다. 오픈AI 공식 발표는 브로드컴이 실리콘 구현과 네트워킹에 참여하고 셀레스티카가 보드·랙 시스템 통합을 지원한다고 설명한다. 후속 세대에서는 이 구조가 그대로 유지될 수도 있고, 역할이 세분화되거나 공급자가 추가될 수도 있다. 대규모 AI 인프라 운영사는 특정 업체 한 곳의 생산 차질에 전체 서비스가 흔들리는 것을 피하려 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복수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유인은 충분하다. 하지만 그 일반적 유인이 곧 특정 수주 계약의 증거는 아니다.
차세대 칩 협력이 깊어졌다
오픈AI가 삼성과 공동 연구·생산의 진전을 직접 언급했다. 기존 메모리와 인프라 협력에 새 층이 더해졌다.
특정 공정의 양산 수주 확정
공정 노드, 웨이퍼 물량, 패키지 사양, 생산 시점, 독점 여부는 공개되지 않았다. 향후 양사 공식 발표가 필요하다.
오픈AI가 자체 칩을 서두르는 이유: 성능보다 ‘공급의 경제학’
프런티어 AI 기업이 자체 칩을 만드는 가장 큰 이유를 단순히 “기존 GPU보다 더 빠른 칩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설명하면 절반만 맞는다. 더 중요한 문제는 컴퓨팅 공급의 규모와 비용, 예측 가능성이다. AI 서비스 이용자가 급증하면 필요한 가속기 수량도 빠르게 늘지만, 첨단 가속기 공급은 웨이퍼 생산능력과 패키징, HBM, 네트워크 장비, 데이터센터 전력에 동시에 묶인다. 어느 한 곳이 막혀도 전체 증설 속도가 떨어진다.
자체 칩은 이런 구조에서 두 가지 협상력을 준다. 첫째, 자사 워크로드에 최적화해 동일한 전력과 랙 공간에서 더 많은 추론을 처리할 수 있다면 서비스 원가를 낮출 수 있다. 둘째, 외부 가속기 공급자만 바라보지 않고 자체 칩과 여러 상용 가속기를 혼합해 운영하면 공급 선택지가 늘어난다. 오픈AI는 Jalapeño를 기존 가속기를 완전히 대체하는 단일 해법으로 설명하지 않고, 여러 파트너와 함께 운영할 다세대 플랫폼으로 제시했다. 실제 데이터센터에서는 워크로드 특성에 따라 서로 다른 칩을 배치하는 이기종 구조가 자연스럽다.
실제 모델이 어떤 연산과 메모리 이동을 많이 쓰는지 서비스 데이터에서 파악한다.
필요한 기능에 실리콘 면적과 전력 예산을 집중해 실사용 효율을 높인다.
파운드리·메모리·패키징의 수율과 공급능력이 계획대로 따라와야 한다.
네트워크와 냉각, 소프트웨어까지 조정해 칩 성능을 실제 서비스 비용으로 전환한다.
이 때문에 삼성과의 관계가 메모리에서 차세대 칩 생산·연구로 넓어지는 흐름은 공급의 경제학 측면에서 설명력이 있다. 삼성은 하나의 부품만 제공하는 업체가 아니라 메모리, 로직 반도체 제조, 패키징, 데이터센터 관련 계열 역량까지 연결할 수 있다. 오픈AI 입장에서는 특정 세대의 칩 한 개를 조달하는 계약보다 장기적인 인프라 확장에 필요한 복수의 병목을 함께 줄일 수 있는 파트너가 가치가 크다.
삼성의 제조 로드맵과 만나는 지점: High-NA EUV와 다음 세대 DRAM
오픈AI 협력과 별개로 삼성전자는 9월 8일 ASML과 차세대 반도체 제조 협력을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향후 DRAM 제조에 High-NA EUV를 도입하는 계획과 차세대 12인치 포토마스크 플랫폼 관련 협력이 포함됐다. 이 발표를 오픈AI 칩과 직접 연결해서는 안 된다. 다만 삼성전자가 AI 시대의 고성능·고효율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메모리 공정 자체를 더 미세하고 정교하게 가져가고 있다는 산업 배경은 보여 준다.
High-NA EUV는 더 높은 개구수의 광학계를 이용해 보다 미세한 패턴을 구현하려는 차세대 노광 기술이다. 실제 양산 적용에는 장비 가격, 공정 복잡도, 마스크, 레지스트, 수율, 생산성 같은 변수가 따라온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과 경제적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은 다르다. 그럼에도 메모리 기업이 차세대 노광 기술을 일찍 검토하는 이유는 데이터센터용 메모리의 집적도와 전력효율, 대역폭 경쟁이 장기적으로 계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오픈AI와 삼성의 협력이 실제 제품으로 이어질 경우에도 이런 제조 기술의 축적은 간접적으로 중요하다. 추론 가속기에서 요구하는 것은 로직 다이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성능 메모리를 가까이 배치하고 패키지 내부에서 빠르게 연결하며 발열을 제어하려면 공정과 패키징의 동시 최적화가 필요하다. 삼성의 강점은 메모리와 로직, 패키징을 모두 다룰 수 있다는 데 있고, 약점은 각 영역의 경쟁력이 실제 고객 수주에서 동시에 증명돼야 한다는 데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에 생기는 기회: HBM 공급자에서 설계 초기 파트너로
한국 반도체 산업은 AI 붐에서 가장 먼저 메모리 수요의 수혜를 받았다. 하지만 다음 단계의 가치는 고객의 설계 초기에 얼마나 깊이 들어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가속기 아키텍처가 정해진 뒤 HBM 물량을 공급하는 것과, 설계 단계부터 메모리 인터페이스·전력·패키지·열 특성을 함께 맞추는 것은 협상력의 수준이 다르다. 후자는 고객의 후속 제품 로드맵을 더 일찍 이해하고 장기 공급계획을 세울 수 있는 대신 기술 책임과 투자 부담도 커진다.
오픈AI 같은 대형 AI 사업자는 막대한 컴퓨팅 자원을 장기간 확보해야 한다. 한 세대 제품의 성공보다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의 생산성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한국 기업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성과는 특정 칩의 일회성 수주보다 고객과 공동으로 규격을 정의하고 생산기술을 맞추며 여러 세대의 플랫폼에 반복 참여하는 것이다. 오픈AI가 Jalapeño를 처음부터 ‘multi-generation platform’으로 표현한 것도 파트너십을 단기 제품 단위로만 볼 수 없게 만든다.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업에도 파급효과가 있을 수 있다. 첨단 HBM과 로직 공정이 늘어나면 검사, 계측, 세정, 식각, 증착, 기판, 열관리와 같은 주변 공정의 요구 수준도 높아진다. 다만 ‘AI 투자 증가=국내 모든 반도체 기업 수혜’라는 단순 공식은 위험하다. 고객이 요구하는 사양을 맞추지 못하거나 특정 공정의 투자 타이밍을 놓치면 오히려 설비투자 부담만 커질 수 있다. 기술 경쟁력과 수요 가시성이 함께 있어야 한다.
남은 위험: 수율·전력·패키징·고객 집중도
AI 반도체 협력 뉴스는 성장 기대가 크기 때문에 공급 측의 현실적인 제약이 쉽게 가려진다. 첫 번째 위험은 수율이다. 최첨단 공정은 설계가 완성됐다고 곧바로 대규모 출하가 가능한 것이 아니다. 웨이퍼에서 정상 동작하는 칩의 비율이 충분히 올라와야 원가가 안정되고, 패키징 공정에서도 열과 전기적 특성이 목표를 만족해야 한다. 수율이 계획에 못 미치면 동일한 물량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웨이퍼와 시간이 필요하다.
두 번째 위험은 패키징 병목이다. 고성능 AI 가속기는 로직 다이와 여러 개의 HBM을 매우 가까이 배치하는 복잡한 구조를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인터포저, 기판, 범프, 열전달 소재, 검사 장비의 생산능력이 함께 필요하다. 웨이퍼 생산능력이 충분해도 패키징이 막히면 완제품 출하량은 늘지 않는다. 세 번째는 전력이다. 칩의 전력효율이 개선돼도 AI 사용량이 더 빠르게 늘면 데이터센터 전체 전력 수요는 계속 커질 수 있다. 결국 칩 공급망과 전력망 투자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첨단 공정과 복잡한 패키지에서 불량률을 얼마나 빠르게 낮추느냐가 실제 원가와 출하량을 결정한다.
HBM과 로직 다이를 한 패키지에서 안정적으로 연결하는 생산능력과 열관리 기술이 병목이 될 수 있다.
칩 효율이 좋아져도 총 연산 수요가 폭증하면 데이터센터의 전력·냉각·송전 인프라가 확장 속도를 제한한다.
대형 AI 고객의 투자주기가 바뀌면 공급업체의 매출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장기계약과 고객 다변화가 중요하다.
네 번째는 고객 집중도다. 초대형 AI 기업은 공급사에 장기간 큰 수요를 제공할 수 있지만, 동시에 제품 로드맵과 투자속도 변화가 공급업체 실적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는 대형 고객과 깊게 협력하되 한 고객의 특정 프로젝트에 설비투자가 과도하게 종속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야 한다. 특히 아직 구체 수주가 공개되지 않은 단계에서는 기대감 자체가 사업성과로 선반영되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확인해야 할 여섯 가지 신호
이번 협력의 실체는 향후 발표에서 하나씩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무엇을 만든다’는 역할 분담이다. 오픈AI의 후속칩 설계가 브로드컴 중심으로 이어지는지, 삼성전자가 로직 생산에 참여하는지, HBM과 첨단 패키징까지 하나의 공급 묶음으로 제공하는지에 따라 산업적 의미가 크게 달라진다. 생산 시점과 규모도 중요하다. 연구협력이 실제 매출로 연결되려면 샘플과 검증을 넘어 양산 일정과 물량이 제시돼야 한다.
후속 발표에서 볼 체크포인트
- 삼성의 역할: 메모리·파운드리·패키징·설계지원 가운데 어디까지 맡는가.
- 후속칩 일정: 샘플, 테이프아웃, 양산 준비, 데이터센터 배치가 언제 시작되는가.
- 공급 구조: 단일 공급인지 복수 파운드리·복수 메모리 업체를 병행하는지.
- HBM 세대: 어떤 대역폭·용량·전력 목표를 가진 메모리 조합이 선택되는지.
- 패키징: 로직과 HBM을 결합하는 첨단 패키지 생산능력을 누가 확보하는지.
- 실제 효율: 연구실 성능이 대규모 추론 서비스에서 비용·지연시간 개선으로 이어지는지.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실제 서비스에 투입된 뒤의 운영 데이터다. 자체 칩은 벤치마크에서 높은 성능을 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24시간 대규모로 돌릴 때의 고장률, 전력 사용량, 냉각비, 네트워크 혼잡, 소프트웨어 최적화 비용이 모두 포함돼야 한다. 오픈AI가 공개한 초기 성능 결과가 실제 데이터센터에서 반복 검증되고, 상용 가속기와 혼합 운영했을 때 총소유비용이 얼마나 낮아지는지가 장기 경쟁력의 기준이 될 것이다.
‘AI칩 동맹’이라는 말보다 중요한 것: 설계와 제조의 피드백 속도
AI 반도체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서로 멀리 떨어져 개발될수록 최적화에 시간이 걸린다. 모델을 운영하는 기업은 어떤 연산이 실제로 병목인지 알고 있고, 반도체 제조사는 어떤 구조가 수율과 전력, 패키징 측면에서 현실적인지 안다. 두 정보가 설계 초기에 만나면 필요 없는 기능을 줄이고 중요한 데이터 경로에 자원을 집중할 수 있다. 오픈AI가 자체 칩 설계에 자사 모델과 서비스 워크로드의 지식을 활용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삼성전자도 이런 피드백 루프에 들어갈 경우 장점이 있다. 메모리 사업은 고객의 차세대 가속기 요구를 더 이른 시점에 반영할 수 있고, 파운드리나 패키징 부문은 실제 대규모 AI 서비스가 요구하는 전력·열·대역폭 조건을 제품 로드맵에 반영할 수 있다. 반대로 오픈AI는 제조 현장에서 가능한 공정 옵션과 공급 능력의 현실을 설계 단계에서 고려할 수 있다. 설계가 완성된 뒤 제조사에 넘기는 전통적 방식보다 공동 최적화의 여지가 커지는 셈이다.
다만 협력이 깊어질수록 기술 의존과 정보보호 문제도 커진다. 양사가 어느 수준까지 설계 정보를 공유하는지, 고객의 핵심 워크로드 특성과 제조 공정 노하우를 어떻게 보호하는지, 경쟁사와의 거래를 어떤 경계에서 분리하는지가 중요하다. 기업용 AI 도입까지 폭넓게 연결된 관계에서는 소프트웨어 사용 데이터와 반도체 설계 정보가 서로 다른 보안 체계에서 엄격히 관리돼야 한다. 기술적 시너지가 클수록 거버넌스의 정교함도 함께 요구된다.
이번 발표를 가장 정확하게 읽는 한 문장
오픈AI와 삼성의 관계가 단순한 메모리 공급과 소프트웨어 도입을 넘어 차세대 AI칩의 공동 연구·생산이라는 더 깊은 제조 협력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 파운드리의 특정 양산 수주가 확정됐다는 근거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기대와 사실을 이 두 문장 사이에서 분리해야 한다.
그럼에도 산업적 무게는 작지 않다. 오픈AI는 이미 자체 추론칩을 여러 세대로 확장하겠다고 선언했고, 삼성은 AI 인프라에서 가장 부족해질 가능성이 큰 고성능 메모리와 첨단 제조 역량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 향후 구체 계약이 확인되면 한국 반도체 산업은 HBM 호황을 넘어 프런티어 AI 기업의 설계·제조 초기 단계에 더 깊게 들어갈 수 있다. 반대로 구체 생산 역할이 제한적이라면 이번 협력의 경제적 효과는 메모리와 기존 인프라 영역에 더 집중될 것이다.
핵심 질문
삼성이 오픈AI의 다음 AI칩을 직접 생산하기로 확정했나?
아직 그렇게 단정할 수 없다. 오픈AI 코리아는 차세대 칩의 공동 생산과 연구 협력이 진전됐다고 밝혔지만, 삼성 파운드리의 특정 공정 수주나 양산 물량·시점은 공개하지 않았다.
Jalapeño는 어떤 칩인가?
오픈AI가 브로드컴과 함께 공개한 첫 자체 추론 가속기다. 대규모 언어모델 추론의 처리량과 지연시간, 전력효율을 함께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여러 세대로 이어지는 자체 컴퓨팅 플랫폼의 첫 제품으로 소개됐다.
삼성전자와 오픈AI는 이전부터 협력했나?
그렇다. 2025년에는 고급 메모리 공급 확대와 한국 내 AI 데이터센터 검토를 포함한 인프라 협력이 공식화됐고, 2026년에는 삼성전자 한국 임직원과 글로벌 DX 조직에 기업용 AI 도구를 대규모로 배치하는 협력이 공개됐다.
왜 메모리 업체가 AI칩 경쟁에서 그렇게 중요한가?
대규모 모델 추론에서는 연산 유닛이 필요한 데이터를 빠르게 공급받지 못하면 성능이 떨어진다. HBM의 대역폭과 용량, 전력효율, 패키징 방식이 실제 처리량과 비용을 크게 좌우한다.
앞으로 어떤 발표가 나오면 협력의 실체를 알 수 있나?
삼성의 구체 역할, 공정과 패키징 방식, HBM 세대, 샘플과 양산 일정, 공급 물량, 데이터센터 실제 배치 계획이 핵심이다. 특히 파운드리 참여 여부는 양사 공식 발표로 확인해야 한다.
주요 근거 자료
- Reuters, OpenAI says working with Samsung on next-generation chips, 2026-09-09
- OpenAI, OpenAI and Broadcom unveil LLM-optimized inference chip, 2026-06-24
- OpenAI, Samsung and SK join Stargate initiative, 2025-10-01
- OpenAI, Samsung Electronics enterprise deployment, 2026-06-21
- Samsung Global Newsroom, Samsung Electronics and ASML expand strategic collaboration, 2026-09-08
그때 오픈AI의 자체칩 전략과 한국 반도체 공급망의 연결 강도가 숫자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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