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U 다음 병목은 ‘빛의 배선’…AI 데이터센터가 1.6T·실리콘 포토닉스로 향한다
현지시간 21일 스페인 말라가에서 본행사를 시작하는 ECOC 2026의 전면에는 1.6테라비트 이더넷, 실리콘 포토닉스, 공동패키징광학(CPO), 광스위칭이 섰다. 연산칩을 더 많이 넣는 경쟁이 이제는 ‘칩 사이에서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고 적은 전력으로 움직이느냐’의 경쟁으로 번지고 있다.
거대 AI 모델의 학습과 추론은 하나의 프로세서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수백·수천, 더 나아가 수만 개의 가속기가 메모리와 데이터를 나눠 쓰고, 계산 중간값을 반복해서 주고받는다. 한 칩의 연산능력이 아무리 빠르더라도 그 사이를 잇는 연결이 느리거나 전력을 많이 먹으면 전체 시스템은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난다. 그래서 최근 AI 인프라 업계에서는 ‘컴퓨트’ 못지않게 ‘인터커넥트’가 성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이 흐름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무대 중 하나가 9월 21일부터 23일까지 전시가 집중되는 유럽광통신회의·전시회 ECOC 2026이다. 공식 프로그램에는 AI용 스케일업·스케일아웃 인터커넥트, 1.6테라비트 이더넷, 실리콘 포토닉스, 광회로 스위칭, 6G 전송망을 묶는 세션이 전면에 배치됐다. 단순히 더 빠른 광트랜시버를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데이터센터의 구조 자체를 전기 중심에서 전기와 광이 혼합된 형태로 다시 설계하는 논의다.
왜 지금 ‘광 인터커넥트’인가
Bandwidth wallAI 데이터센터의 병목은 한 지점에만 생기지 않는다. GPU 또는 다른 XPU 안에서는 연산 코어와 HBM 사이의 대역폭이 중요하고, 한 서버 또는 한 랙 안에서는 여러 가속기가 짧은 거리에서 거대한 데이터를 교환해야 한다. 랙과 랙 사이, 데이터센터와 데이터센터 사이로 거리가 늘어나면 전송 손실과 지연, 전력, 케이블 밀도까지 동시에 문제가 된다. 업계가 흔히 ‘스케일업(scale-up)’, ‘스케일아웃(scale-out)’, ‘스케일어크로스(scale-across)’를 나눠 이야기하는 이유다.
구리 기반 전기 신호는 짧은 거리에서 비용과 편의성이 뛰어나다. 그러나 전송속도가 올라가고 거리가 길어질수록 신호 무결성을 유지하기 위해 더 복잡한 보정회로와 재타이밍,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해진다. 반대로 광섬유는 빛으로 데이터를 전달해 더 긴 거리에서 높은 대역폭을 유지하기 유리하다. 문제는 광신호를 전기신호로 바꾸고 다시 되돌리는 과정, 레이저와 변조기·검출기·패키징에 비용과 전력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지금의 기술 경쟁은 ‘모든 것을 광으로 바꾸자’가 아니라, 어느 거리와 계층에서 광을 넣어야 전체 시스템 효율이 가장 좋아지는지를 찾는 과정에 가깝다.
실리콘 포토닉스는 이 전환의 핵심 기술이다. 기존 반도체 제조 인프라와 유사한 방식으로 도파로, 변조기, 광검출기 같은 광소자를 실리콘 기반 칩에 집적해 대량생산성과 집적도를 끌어올리려는 접근이다. Intel은 자사 실리콘 포토닉스 플랫폼을 통해 데이터센터용 플러거블 모듈에 수백만 개 규모의 광집적회로를 출하해왔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광 I/O를 CPU·GPU 같은 연산칩 가까이 가져오는 방향으로 연구를 넓히고 있다.
ECOC 2026의 숫자 ‘1.6T’가 뜻하는 것
Terabit EthernetEthernet Alliance는 ECOC 2026에서 1.6Tb/s 이더넷을 포함한 멀티벤더 상호운용 시연을 진행한다고 예고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최고속도’보다 ‘상호운용’이다. 실험실에서 단일 링크가 높은 속도를 내는 것과, 여러 업체의 스위치·광모듈·테스트 장비·케이블이 같은 규격으로 안정적으로 맞물리는 것은 전혀 다른 단계다. 실제 데이터센터 도입은 표준, 커넥터, 오류 정정, 관리 소프트웨어, 생산수율까지 맞아떨어져야 가능하다.
1.6TbE 생태계의 토대 가운데 하나가 IEEE P802.3dj다. Ethernet Alliance는 이 프로젝트가 200Gb/s급 레인 신호를 바탕으로 200GbE·400GbE·800GbE·1.6TbE를 지원하는 규격을 다루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 포트의 전체 속도를 높이려면 레인 수를 늘리거나 레인 하나당 속도를 높여야 하는데, 레인당 200G가 상용 생태계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들어온 셈이다. 그만큼 PCB와 케이블, 광모듈, DSP, 패키지 모두에서 신호 품질과 전력 설계 난도가 올라간다.
‘1.6T’는 한 숫자가 아니라 시스템 전환 신호다
포트 속도가 테라비트대로 올라가면 광모듈만 교체해서 끝나지 않는다. 스위치 ASIC의 SerDes, 보드 배선, 커넥터, 광엔진, 냉각, 전원, 관리 소프트웨어와 표준 적합성까지 함께 바뀐다. 그래서 1.6T는 네트워크 부품 업계 전반의 동시 전환을 상징한다.
ECOC 공식 프로그램은 같은 날 ‘AI를 위한 승리하는 인터커넥트’라는 심포지엄에서 스케일업과 스케일아웃을 함께 다룬다. 프로그램에는 1pJ/bit 이하 연결을 겨냥한 이종집적 실리콘 포토닉스 연구, 광회로 스위치, AI 클러스터용 프로그래머블 포토닉스 등이 포함됐다. 다만 이런 수치는 발표 주제와 연구 목표 또는 특정 조건의 실험 결과를 의미할 수 있으므로, 곧바로 전체 데이터센터가 그 수준의 효율을 달성한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플러거블·LPO·NPO·CPO, 무엇이 다른가
Architecture map광 연결 기술을 이해할 때 가장 헷갈리는 부분은 비슷한 약어가 한꺼번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핵심 차이는 ‘광엔진을 스위치나 가속기 ASIC에서 얼마나 가깝게 두느냐’와 ‘고속 전기신호를 얼마나 멀리 끌고 가느냐’에 있다. 기존 플러거블 모듈은 스위치 전면 포트에 교체 가능한 광모듈을 꽂는다. 서비스가 쉽고 생태계가 성숙했지만, ASIC에서 전면 포트까지 고속 전기신호를 보드 위로 보내야 한다.
전면 포트에 광모듈을 꽂는다. 교체와 운영이 편하지만 고속 전기 경로가 길다.
DSP 일부를 줄여 전력을 낮추려는 접근. 채널 품질과 호스트 설계 조건이 중요하다.
광엔진을 ASIC 가까이에 둬 전기 경로를 줄이되, 서비스성과 열을 함께 고려한다.
광엔진과 스위치 ASIC을 같은 패키지 또는 매우 가까운 패키지에 결합한다.
스위치보다 더 안쪽, CPU·GPU·가속기 패키지 경계까지 광 연결을 끌어들이는 방향이다.
CPO는 고속 전기신호가 이동하는 거리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전력과 신호 무결성 측면에서 매력적이다. Broadcom은 51.2Tb/s급 CPO 스위치 플랫폼 ‘Bailly’를 공개하면서 자사 설계에서 광 인터커넥트 전력을 플러거블 방식보다 크게 낮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NVIDIA도 Spectrum-X와 Quantum-X 포토닉스 스위치를 내놓으며 CPO가 대규모 AI 팩토리의 네트워크 전력과 신뢰성 문제를 완화한다고 설명해왔다. 다만 업체별 비교 수치는 제품 세대와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숫자만 단순 대조하면 안 된다.
최근에는 CPO의 효율을 얻으면서도 고장이 났을 때 광엔진을 현장에서 교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서비스 가능성’이 중요한 설계 의제가 됐다. 2026년 3월 출범한 Open CPX MSA는 Ciena, Coherent, Marvell, Molex, Samtec, TeraHop 등이 참여해 CPO·NPO용 광엔진의 플러거블 소켓과 전기 연결을 표준화하려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는 업계가 CPO를 단순히 ‘납땜해 붙이는 더 빠른 모듈’로 보지 않고, 실제 데이터센터 운영과 유지보수까지 포함한 생태계 문제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전력 효율 경쟁, 숫자는 왜 조심해서 봐야 하나
Power per bit광 인터커넥트가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비트당 에너지’다. 데이터센터에서 이동하는 데이터가 폭증하면 연산 자체뿐 아니라 데이터를 이동시키는 데 쓰는 전력도 커진다. 특히 고속 스위치에서는 SerDes, DSP, 레이저, 드라이버, 수신기, 냉각이 모두 전력 예산에 들어온다. 링크 하나에서는 작은 차이처럼 보여도 수천·수만 포트로 확대하면 전력과 냉각 설비 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
Intel은 2024년 CPU와 공동패키징한 광 I/O 칩렛 시제품을 공개했다. 당시 100m급 광 링크와 낮은 pJ/bit 수준을 제시했다.
NVIDIA는 자사 포토닉스 스위치가 플러거블 대비 네트워크 전력 효율과 복원력을 높인다고 설명한다.
Broadcom은 Bailly 플랫폼에서 광엔진을 스위치 ASIC과 결합해 광 인터커넥트 전력을 낮췄다고 밝혔다.
학술 프로그램에는 이종집적 실리콘 포토닉스로 마지막 수 cm 연결의 에너지 비용을 낮추려는 연구가 포함됐다.
송수신기 코어만 잰 값인지, 레이저와 DSP를 포함하는지, 패키지와 호스트 SerDes까지 포함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업체가 공개한 전력 절감률 역시 비교 기준 세대와 포트 구성에 따라 달라지므로 ‘누가 몇 배 우수하다’는 식의 단순 순위화는 피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전력 절감이 ‘광으로 바꾸는 순간 자동으로’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CPO는 전기 경로를 줄이는 대신, 고열의 스위치 ASIC 근처에 민감한 광소자를 둬야 한다. 레이저를 패키지 안에 넣을지 밖에 둘지, 광섬유 어레이를 어떻게 연결할지, 열이 올라갔을 때 파장 안정성을 어떻게 보장할지에 따라 설계가 달라진다. 즉 광학은 전력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새로운 열·패키징 문제를 만든다.
빛에도 약점이 있다: 열·수리·레이저·표준
Engineering realityCPO의 난제는 실험실 성능이 아니라 ‘운영 가능한 제품’으로 만드는 데 있다. OIF의 공동패키징 관련 프레임워크는 광시스템 안에서 레이저, 신호처리 ASIC, 기타 광소자가 서로 다른 열 부하를 갖기 때문에 단일 온도센서만으로 시스템 상태를 충분히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스위치 ASIC은 매우 높은 열밀도를 갖는데, 광소자는 온도 변화가 파장과 특성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액체냉각, 히트스프레더, 외부 레이저, 온도 모니터링이 한 설계 문제로 묶인다.
CPO가 넘어야 할 네 가지 운영 장벽
- 열: 고열 ASIC과 온도 민감한 광소자를 한 패키지 주변에서 안정화해야 한다.
- 서비스: 광엔진 하나가 고장 나도 전체 스위치를 내려야 하는 구조는 운영비가 커질 수 있다.
- 레이저: 내부 통합과 외부 레이저는 각각 효율·수리성·광결합에서 장단점이 있다.
- 표준: 광엔진·커넥터·관리 규격이 업체마다 다르면 멀티벤더 생태계 확장이 느려진다.
이 때문에 플러거블 광모듈이 단기간에 사라질 가능성은 낮다. 기존 방식은 고장 난 모듈만 뽑아 바꾸는 운영 편의성이 뛰어나고, 공급업체가 다양하며 표준화 경험도 축적돼 있다. CPO와 NPO가 먼저 침투할 가능성이 큰 곳은 전력과 대역폭 밀도가 특히 중요한 초대형 AI 스위치, 또는 패키지 바깥 전기 신호가 더 이상 경제적으로 확장되지 않는 지점이다. 나머지 구간에서는 LPO, 기존 DSP 기반 플러거블, 액티브 전기 케이블, DAC 등 여러 기술이 공존할 수 있다.
결국 ‘광이냐 구리냐’가 아니라 ‘어디까지 구리로 가고, 어디서부터 광으로 바꿀 것이냐’가 설계의 핵심이다. AI 클러스터의 토폴로지, 랙 밀도, 케이블 길이, 장애 복구 정책, 전력 단가, 냉각 방식이 다르면 최적점도 달라진다.
네트워크는 ‘선’이 아니라 분산 컴퓨터가 된다
Scale-up / Scale-out / Scale-acrossAI 네트워크가 어려운 이유는 트래픽 패턴이 일반 웹서비스와 다르기 때문이다. 대규모 학습에서는 많은 가속기가 같은 단계에서 서로 계산 결과를 교환한다. 특정 링크에 순간적으로 트래픽이 몰리거나 한 노드가 늦어지면 전체 학습 스텝이 기다릴 수 있다. 그래서 단순한 포트 속도만 높이는 것보다 혼잡제어, 경로선택, 버퍼, 텔레메트리, 집단통신(collective communication) 최적화가 중요하다.
가속기를 하나의 큰 컴퓨터처럼 묶는 구간
GPU·메모리·스위치가 매우 짧은 지연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는다. 광 I/O가 칩 또는 패키지 경계까지 들어가려는 가장 공격적인 기술 경쟁이 이 구간에서 진행된다.
여러 서버·랙을 학습 클러스터로 엮는 구간
800G·1.6T 이더넷과 InfiniBand, CPO 스위치, 광트랜시버가 맞붙는 영역이다. 대역폭뿐 아니라 혼잡과 장애복원, 케이블 관리가 중요하다.
서로 떨어진 데이터센터 자원을 연결하는 구간
거리와 전송망 제약이 커져 광전송 기술의 역할이 더 커진다. 수십~수백 km를 묶어 하나의 AI 자원풀처럼 사용하는 구상이 등장하고 있다.
광회로 스위치(OCS)는 이 맥락에서 다시 주목받는다. 전기 패킷스위치가 모든 트래픽을 세밀하게 처리하는 대신, 오래 유지되는 대용량 흐름이나 특정 자원 연결을 광경로 자체로 바꾸는 방식이다. 잘 맞는 워크로드에서는 전기 변환 단계를 줄이고 전력과 지연을 낮출 수 있지만, 경로 전환 속도와 제어 소프트웨어, 장애처리, 유휴 자원 관리가 함께 설계돼야 한다. ‘광스위치가 빠르다’는 한 문장만으로는 실제 AI 클러스터의 성능을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한국도 ‘구리에서 빛으로’…ETRI의 AIDC 전략
Korea angle이번 흐름은 해외 빅테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ETRI는 8월 31일 공개한 국가임무 R&D 방향에서 AI 반도체와 광통신, 컴퓨팅 시스템 분야의 기술을 AI 데이터센터 핵심기술로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실리콘 포토닉스와 CPO 핵심 광소자, 테라비트급 광기술, 스케일업·스케일아웃·스케일어크로스 네트워크를 한 묶음으로 제시했다. 표현 그대로라면 목표는 ‘구리에서 빛으로, 거점에서 궤도까지’ 연결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다.
국내 기술의 관건은 ‘소자 한 개’보다 연결된 생태계
ETRI는 실리콘 기반 0.8Tbps 광송수신 칩 설계와 1.6Tbps급 광트랜시버 부품 기술을 축적하고 있다.
ETRI 기술창업기업 인옵틱스는 OFC 2026에서 AI 데이터센터용 전자·광 통합 유리기판 CPO 공정 플랫폼을 시연했다.
ETRI는 2025년 광스위치 기반 데이터센터 자원연결 기술을 공개하며 CPU·메모리·GPU 자원의 유연한 연결을 검증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국이 CPO 기술을 보유했느냐’라는 이분법적 질문보다 어느 층에서 상용 공급망을 만들 수 있느냐다. 광송수신 소자와 PIC 설계, 실리콘·유리 인터포저, 광섬유 어레이 정렬, 레이저, 고속 전자회로, 패키지 조립, 열 설계, 테스트 장비가 모두 필요하다. 한 부품의 성능이 좋아도 수율과 자동화, 다중업체 호환성이 떨어지면 글로벌 데이터센터 공급망에 들어가기 어렵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7월 말 ‘AI 데이터센터 얼라이언스’를 본격 가동하며 AI 데이터센터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앞으로 국내 정책과 산업 논의에서 GPU 도입 규모뿐 아니라 광인터커넥트, 고속 스위치, 냉각, 전력전자, 네트워크 소프트웨어처럼 GPU 바깥의 인프라 국산화와 공급망도 더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상용화 신호: ‘연구’에서 ‘양산·출하’로
Manufacturing signal포토닉스 전환이 이전과 다른 점은 여러 회사가 ‘가능성’이 아니라 ‘생산량과 고객’의 언어를 쓰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Tower Semiconductor는 ECOC 2026 참가를 앞두고 데이터센터·통신용 실리콘 포토닉스 플랫폼과 NPO·CPO, DWDM 레이저, 광회로 스위칭 등을 전시한다고 밝혔다. 이어 9월 17일에는 NewPhotonics와 함께 800G~1.6T급 AI 인터커넥트용 레이저 통합 광엔진을 대량 출하하기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이런 발표는 실리콘 포토닉스의 관심사가 ‘광소자가 작동하는가’에서 ‘파운드리에서 반복적으로 만들 수 있는가’, ‘레이저를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 ‘서비스 가능한 패키지로 조립할 수 있는가’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광통신은 광학 성능만 좋아서 되는 산업이 아니다. 수율, 패키징 자동화, 광섬유 부착 정밀도, 온도 드리프트, 장기 신뢰성, 제조 테스트 시간이 최종 원가를 좌우한다.
따라서 앞으로의 경쟁은 ‘실리콘 포토닉스 대 전자’ 같은 단순 구도가 아니라, 파운드리·레이저·광엔진·패키징·커넥터·스위치 ASIC·냉각·소프트웨어가 함께 움직이는 수직 통합과 생태계 경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 NVIDIA가 포토닉스 스위치를 발표하면서 TSMC, Coherent, Corning, Foxconn, Lumentum, SENKO 등 여러 공급망 업체와 협력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나의 회사가 모든 부품을 독자적으로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제성도 결국 부품 가격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 기존 플러거블 모듈은 개별 부품 단가가 높더라도 장애가 난 모듈만 현장에서 교체할 수 있고, 수요가 커지면 여러 공급업체 사이에서 조달을 분산하기 쉽다. 반대로 CPO는 전력과 밀도를 크게 개선할 여지가 있지만 패키지 수율이 낮거나 광엔진 수리가 어렵다면 고가 스위치 전체의 유지비가 커질 수 있다. 따라서 하이퍼스케일 사업자는 구매가격보다 장기간의 전력비, 냉각비, 예비부품, 장애복구 시간까지 합친 총소유비용으로 기술을 비교할 가능성이 높다.
또 하나의 변수는 공급망의 ‘검증 시간’이다. 데이터센터 네트워크는 수년간 24시간 동작해야 하므로 새로운 광엔진이 높은 전송률을 기록했다는 사실만으로 바로 대규모 발주가 이뤄지지 않는다. 온도 사이클, 레이저 수명, 커넥터 오염, 광섬유 굴곡, 진동, 펌웨어 호환성, 현장 교체 절차까지 검증해야 한다. 2026년의 잇단 양산·상호운용 발표가 중요한 이유는 기술의 중심이 논문 수치에서 운영 데이터와 제조 신뢰성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1.6T 포트가 생긴다고 AI가 바로 두 배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
From line rate to AI performance네트워크 사양표에서 1.6Tb/s는 매우 큰 숫자다. 단순 환산하면 초당 200GB에 해당하는 선로 속도다. 그러나 이 수치가 곧 애플리케이션이 초당 200GB의 유효 데이터를 항상 전송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더넷 프레임과 오류정정(FEC), 각종 프로토콜 오버헤드가 있고, 실제 트래픽은 여러 포트와 경로에 분산된다. 무엇보다 AI 학습은 계산과 통신이 번갈아 일어나기 때문에 네트워크만 빨라져도 가속기가 기다리는 다른 병목이 남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수천 개 GPU가 동시에 그래디언트를 합치는 집단통신에서는 어느 한 링크의 최고속도보다 전체 토폴로지와 혼잡 분산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일부 경로에 트래픽이 몰리는 ‘핫스폿’이 생기거나 특정 노드가 늦어지면, 다른 GPU가 빠른 링크를 갖고 있어도 동기화 지점에서 기다린다. 그래서 AI 네트워크 업체들이 적응형 라우팅, 텔레메트리, 혼잡제어, 패킷 스프레이, 집단통신 가속 같은 기능을 광학 하드웨어와 동시에 강조한다.
포트의 물리적 전송 능력
1.6Tb/s는 링크가 제공하는 최대 선로 용량을 가리킨다. 실제 유효 데이터량은 FEC와 프로토콜, 트래픽 패턴에 따라 줄어든다.
네트워크 전체가 감당하는 양
여러 스위치와 링크를 어떻게 연결했는지, 오버서브스크립션이 있는지, 혼잡을 어떻게 피하는지가 클러스터 처리량을 좌우한다.
최종적으로 학습·추론이 끝나는 시간
GPU 연산, HBM 대역폭, 통신, 체크포인트 저장, 소프트웨어 스케줄링이 함께 작동한 결과다. 네트워크 속도 한 항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이 구분은 CPO의 효과를 평가할 때도 중요하다. CPO가 스위치의 전력과 신호 손실을 낮추더라도, 애플리케이션 수준의 성능 향상은 클러스터가 기존에 어디에서 막혔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통신 비중이 큰 대규모 학습은 개선 폭이 클 수 있지만, 메모리 용량이나 연산 자체가 병목인 작업은 네트워크를 바꿔도 체감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 따라서 도입 판단에는 ‘포트당 와트’뿐 아니라 학습 완료시간, 토큰 처리량, 장애 시 재시작 비용, 랙당 전력과 같은 운영 지표가 함께 필요하다.
광 기술이 주목받는 진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링크 하나를 더 빠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력 때문에 더 이상 확장하기 어려웠던 네트워크 규모를 키우고, 더 많은 가속기를 하나의 작업에 묶을 수 있는 여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광 인터커넥트의 가치는 최고속도 그 자체보다 ‘확장 가능한 시스템 크기’를 넓히는 데서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12~24개월, 무엇을 보면 되나
Watch points광 인터커넥트는 이미 시작됐지만, 모든 기술이 같은 속도로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다. 2026년 하반기 이후 시장을 볼 때는 ‘신기술 발표 건수’보다 표준의 완성도와 상호운용, 실제 출하량, 장애율, TCO(총소유비용)를 봐야 한다. 특히 1.6TbE는 단순 최고속도 경쟁보다 멀티벤더 생태계가 얼마나 빨리 안정화되느냐가 중요하다.
200G/lane 기반 1.6TbE 규격이 최종 단계에 들어가면서 광·전기 인터페이스 제품의 호환성이 얼마나 빠르게 올라오는지 본다.
전력 절감률보다 현장에서 고장 난 광엔진을 얼마나 쉽게 찾고 교체할 수 있는지가 대규모 운영의 핵심이다.
스위치용 CPO를 넘어 CPU·GPU·가속기 패키지 경계에 광 I/O 칩렛이 들어가면 시스템 구조가 한 단계 더 크게 바뀐다.
국내 기술이 논문·시연에서 멈추지 않고 광엔진, 패키지, 장비, 테스트 분야에서 글로벌 고객의 양산 체인에 들어가는지가 관건이다.
AI 경쟁의 무대가 칩 안에서 칩 사이로 넓어지고 있다
GPU 성능 경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속기가 빨라질수록 주변 연결망의 요구 조건이 더 가혹해진다. HBM이 ‘메모리 벽’을 낮췄다면, 실리콘 포토닉스와 CPO는 ‘I/O 벽’을 낮추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1.6T 이더넷, 광회로 스위칭, 광 I/O 칩렛은 서로 다른 기술이지만 공통된 방향은 하나다. 계산할 데이터가 늘어나는 속도만큼, 데이터를 옮기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ECOC 2026의 의미는 새로운 광모듈 목록을 보는 데 있지 않다. AI 데이터센터가 전기 배선의 물리적 한계를 어디에서 만나고, 업계가 그 경계를 어느 지점에서 빛으로 넘으려 하는지를 확인하는 자리라는 데 있다. 향후 몇 년의 승부는 최고 속도 한 줄보다 전력, 열, 수율, 서비스성, 표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설계가 누가 먼저 대규모 운영에서 검증되느냐에 달려 있다.
핵심 질문
1.6TbE가 나오면 800G 장비는 바로 구형이 되나?
그렇지 않다. 데이터센터는 세대별 장비가 오랫동안 공존한다. 1.6T는 대역폭 밀도가 가장 중요한 구간부터 들어가고, 800G·400G는 비용과 거리 조건에 따라 계속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CPO는 기존 광모듈을 모두 대체하나?
단기간 전면 대체로 보기 어렵다. CPO는 전력·대역폭 밀도에서 강점이 있지만 열과 서비스성, 표준화 과제가 있다. 기존 플러거블, LPO, NPO, CPO가 구간별로 공존할 가능성이 크다.
실리콘 포토닉스가 ‘빛으로 계산하는 AI’와 같은 기술인가?
겹치는 부분은 있지만 이 기사에서 다룬 핵심은 광연산보다 광통신·광 I/O다. 즉 계산 자체를 빛으로 수행하기보다, 칩과 랙 사이에서 데이터를 더 효율적으로 이동시키는 기술이 중심이다.
한국이 주목해야 할 산업 분야는 무엇인가?
광송수신 칩, 레이저, CPO 패키징, 유리·실리콘 인터포저, 광섬유 어레이, 고속 스위치, 테스트 장비, 냉각, 네트워크 소프트웨어까지 넓다. 개별 원천기술뿐 아니라 양산 수율과 멀티벤더 호환성을 함께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요 확인 자료
- ECOC 2026 공식 사이트 및 특별 심포지엄·프로그램 — 2026년 9월 21~23일 전시 일정과 AI 인터커넥트, 실리콘 포토닉스, 광네트워크 세션 확인.
- Ethernet Alliance, 1.6T Ethernet ECOC 2026 demo — 1.6TbE 멀티벤더 상호운용 시연과 IEEE P802.3dj 진행 상황.
- NVIDIA Silicon Photonics — Spectrum-X·Quantum-X CPO 네트워크 제품의 구조와 업체 제시 효율 수치.
- Broadcom 51.2Tb/s CPO 발표 — Bailly 플랫폼의 구성과 CPO 전력·밀도 주장.
- Intel Optical I/O Chiplet — 4Tb/s 양방향 OCI 시제품, 실리콘 포토닉스 기반 광 I/O 데모.
- OIF Co-Packaging Framework — 공동패키징광학의 열·모니터링·시스템 설계 고려사항.
- Open CPX MSA — 2026년 출범한 CPO·NPO용 서비스 가능한 광엔진 인터페이스 표준화 활동.
- Tower Semiconductor·NewPhotonics 발표 — 800G~1.6T AI 인터커넥트용 레이저 통합 광엔진의 고용량 출하 발표.
- ETRI 2026년 8월 31일 보도자료 — AI 데이터센터 핵심기술, 실리콘 포토닉스·CPO·Scale-up/out/across 전략.
- ETRI·인옵틱스 2026년 6월 보도자료 — 유리기판 기반 CPO 패키징 플랫폼과 OFC 2026 시연 내용.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AI 데이터센터 얼라이언스 보도자료 — 국내 AI 데이터센터 산업 생태계 협력체 가동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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