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갸날 100년,
한글은 다시 광장으로 왔다
훈민정음 반포 580돌이자 한글날 제정 100주년인 2026년. 6일 문을 연 ‘2026 한글주간’부터 광화문 한글한마당, 특별전 ‘일구이륙 무한이륙’, 훈맹정음 100주년 전시까지—올해 한글날을 단순한 공휴일이 아니라 한 세기의 문화사로 읽는 법을 정리했다.
2026년 한글날은 숫자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다.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580년이 되는 해이면서, 오늘날 한글날의 출발점이 된 ‘가갸날’이 처음 마련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같은 1926년에는 시각장애인이 우리말을 점자로 읽고 쓸 수 있도록 만든 ‘훈맹정음’도 세상에 나왔다. 문자 자체의 탄생, 기념일의 탄생, 점자의 탄생이 서로 다른 시간층으로 겹치는 해인 셈이다.
그래서 올해 한글날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광화문광장에서 공연 몇 편을 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낮에는 글자를 몸으로 만지고, 밤에는 스물네 자모가 빛으로 변하는 장면을 보고, 박물관에서는 1926년의 ‘가갸날’ 자료와 조선말 큰사전 원고를 따라가며, 인천에서는 점으로 이어진 또 하나의 한글 100년을 만날 수 있다. 같은 ‘한글’이 축제·디자인·역사·접근성·기술이라는 서로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날짜를 구분해 둘 필요가 있다. ‘2026 한글주간’ 전체는 10월 6일부터 17일까지지만, 광화문광장의 대표 행사 ‘한글한마당-광화문’은 6일부터 8일까지다. 한글날 당일인 9일에 광화문을 찾는다면 낮 체험행사는 이미 끝난 뒤다. 대신 8일부터 11일까지 밤에는 광화문 외벽영상이 이어지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의 특별전은 훨씬 긴 기간 열린다. 한글날을 하루짜리 행사로 생각하면 오히려 올해의 핵심을 놓치기 쉽다.
100년 전에는 ‘한글날’이 아니라 ‘가갸날’이었다
가갸날에서 10월 9일까지한글날의 첫 이름은 ‘가갸날’이었다. 1926년 11월 4일, 조선어연구회가 중심이 되어 훈민정음 반포 480돌을 기념하는 자리를 열었다. 당시에는 한글을 배울 때 자음과 모음을 결합해 ‘가갸거겨…’처럼 익히는 방식이 널리 쓰였고, 그 익숙한 첫 두 음절에서 ‘가갸날’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지금 눈으로 보면 다소 정겨운 이름이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시대를 생각하면 그 의미는 가볍지 않다.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기념하는 행위 자체가 문화적 자존과 공동체 의식을 지키는 실천이었다.
첫 기념일의 날짜도 지금과 달랐다. 당시 조선어연구회는 《세종실록》에 훈민정음이 1446년 음력 9월에 완성됐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음력 9월의 마지막 날을 기준으로 삼았다. 1926년 그 날짜를 양력으로 환산하면 11월 4일이었다. 이후 ‘한글’이라는 명칭이 널리 퍼지면서 1928년부터 ‘가갸날’은 ‘한글날’로 이름을 바꿨다. 매년 달라지는 음력 날짜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1931년에는 양력 10월 29일로, 다시 환산법을 바로잡아 1934년에는 10월 28일로 조정됐다.
결정적인 전환은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찾아왔다. 정인지 서문에 간행 시점을 1446년 9월 ‘상한’이라고 적은 기록이 확인되자, 상순의 마지막 날인 음력 9월 10일을 기준으로 양력 10월 9일이 한글날 날짜로 자리 잡았다. 오늘 우리가 달력에서 만나는 10월 9일은 처음부터 고정되어 있던 날짜가 아니라, 새로운 사료가 발견되고 해석되면서 만들어진 역사적 결론인 셈이다.
첫 ‘가갸날’
11월 4일, 훈민정음 반포 480돌을 기념해 가갸날을 마련했다.
‘한글날’로 이름을 바꾸다
‘한글’이라는 명칭이 확산되면서 기념일 이름도 오늘날의 한글날로 바뀌었다.
양력 날짜를 정비하다
고정된 양력 기념일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10월 29일, 이후 10월 28일로 조정됐다.
훈민정음 해례본과 10월 9일
해례본의 ‘9월 상한’ 기록을 토대로 오늘날의 10월 9일이 기준이 됐다.
법정 공휴일
광복 이후 한글날의 제도적 위상도 커졌다. 1949년에는 법정 공휴일이 됐다.
공휴일 제외, 국경일 지정, 다시 공휴일
1991년부터 공휴일에서 빠졌다가 2006년 국경일로 시행되고, 2013년부터 다시 공휴일이 됐다.
6일부터 8일까지, 광화문은 글자가 아니라 ‘놀이의 장’이 된다
2026 한글한마당 · 광화문2026년 한글주간의 대표 무대는 서울 광화문광장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마련한 ‘2026 한글한마당-광화문’은 10월 6일부터 8일까지 이어진다. 올해 전체 한글주간의 주제는 ‘내 곁에 한글’. 기념식이나 학술행사에 머무르지 않고, 글자를 공연·놀이·디자인·문화상품으로 다시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무대에는 한글과 세종을 소재로 한 뮤지컬 ‘내 곁에, 도포를 입은 그대’와 ‘갓-글’, 시·노래·이야기를 엮은 콘서트 ‘읽고 걷고 노래하고’, 인디밴드 공연 등이 배치됐다. 공연 제목만 보면 역사극과 현대 음악이 한자리에 섞인 듯하지만, 올해 기획의 방향은 오히려 그 이질적인 조합에 있다. 문자 기념일을 엄숙한 의례에 가두지 않고 동시대 시민이 즐기는 문화 형식으로 번역하려는 것이다.
가족 단위 방문자라면 무대보다 체험 공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수 있다. 어린이 한글놀이터, 멋글씨 전시와 체험, 한글 정원, 국립한글박물관의 참여형 프로그램 등 약 20종의 공간이 마련된다. 아이에게 ‘한글은 과학적이다’라는 설명을 반복하는 것보다 자모를 쌓고, 손으로 만들고, 모양을 바꾸며 노는 경험이 문자 구조를 더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한글이 음절을 네모난 덩어리로 조합하는 문자라는 점은 놀이와 디자인에 특히 잘 연결된다.
광화문 한글한마당 · 공연 · 체험 · 한글문화산업전
한글날 전야제 · 100개 조명 · 축하공연 · 낭독
광화문 외벽영상 ‘스물넷, 우주’ · 20:00~23:00 예정
밤이 되면 스물네 자모는 별자리와 단청이 된다
외벽영상 · 빛으로 만나는 글자올해 광화문 프로그램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밤에 등장한다. 8일 전야제의 마지막 순서로 공개되는 외벽영상 ‘스물넷, 우주’는 한글의 스물네 자모를 빛과 움직임으로 풀어낸 미디어 파사드다. 자음과 모음이 어둠 속에서 태어나 별자리처럼 연결되고, 산과 물 같은 자연의 형상으로 확장된 뒤 광화문의 단청과 하나의 이미지로 만나는 구성을 예고하고 있다.
이 장면은 한글을 ‘읽는 기호’에서 ‘보는 문화’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올해 전체 기획을 압축한다. 한글은 소리를 적는 체계이지만, 동시에 ㄱ·ㄴ·ㅁ·ㅇ과 ㅏ·ㅓ·ㅗ·ㅜ처럼 선과 점, 방향과 빈 공간으로도 인식되는 강한 시각 구조를 갖는다. 거리의 간판, 그래픽 디자인, 공연 포스터, 게임 인터페이스, 패션, 제품 패키지에서 한글이 반복해서 시각 소재로 쓰이는 이유다. 광화문이라는 역사적 건축의 표면 위에 자모를 빛으로 투사하는 연출은 그 오래된 구조와 새로운 매체를 한 프레임에 넣는다.
낮 체험이 끝나도, 한글날 밤은 이어진다
광화문 한글한마당은 8일에 끝나지만 외벽영상은 11일까지 예정돼 있다. 9일 한글날에 광화문을 찾는다면 낮 프로그램보다 저녁 동선을 중심으로 잡는 편이 정확하다.
글자가 상품이 되고, 노랫말이 미디어아트가 되는 자리
한글문화산업같은 기간 광화문광장에서는 국립한글박물관이 주최하는 ‘2026 한글문화산업전’도 열린다. 여기서 한글은 역사 자료가 아니라 디자인과 콘텐츠 산업의 재료다. 가구와 생활용품, 문구류 같은 한글문화상품을 전시·판매하고, 참여 기업과 국내외 구매자를 연결하는 비즈니스 공간도 운영한다. ‘문화재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와는 다른 질문, 즉 ‘문자를 어떻게 오늘의 물건과 경험으로 바꿀 것인가’를 던지는 자리다.
특히 우리 노랫말의 원류 가운데 하나인 《청구영언》을 동시대적으로 해석한 미디어아트와 케이팝 음원·영상 콘텐츠가 예고됐다. 옛 노랫말과 최신 대중음악을 같은 공간에 놓는 방식은 한글의 시간을 선형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고전과 현대, 기록과 산업, 읽기와 듣기가 한꺼번에 겹친다. 한글의 ‘세계화’를 단순히 외국인이 한글을 배우는 장면으로 축소하지 않고, 글자와 언어가 디자인·음악·영상·상품을 통해 이동하는 문화적 경로까지 넓혀 볼 수 있다.
이 흐름은 12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릴 예정인 ‘한글날 100년의 이정표—한글, 경계를 넘어 한국어의 미래를 열다’ 학술대회와도 이어진다. 케이컬처가 넓게 퍼지고 인공지능이 언어를 다루는 방식까지 바꾸는 시기, 한글과 한국어의 미래를 문자 보급률 같은 단일 지표로만 볼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다. 사람이 읽고 쓰는 글자, 기계가 처리하는 언어 데이터, 세계인이 접하는 문화 콘텐츠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는 시대가 됐다.
‘일구이륙 무한이륙’—한글날 100년을 121점의 자료로 걷다
기획특별전 · 1926년에서 다음 100년으로축제의 소음에서 한 걸음 물러나 한글날의 시간을 천천히 보고 싶다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주제관이 좋은 출발점이다. 국립한글박물관·대한민국역사박물관·한글학회·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함께 마련한 기획특별전 ‘일구이륙 무한이륙’은 10월 2일부터 2027년 2월 9일까지 열린다. 관람료는 무료다. 월·화·목·금·일요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수요일과 토요일은 오후 9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전시는 이름부터 시간의 방향을 드러낸다. ‘일구이륙’은 1926년을 가리키고, ‘무한이륙’은 그 이후의 확장을 뜻한다. 첫 부분은 ‘가갸날’의 탄생과 날짜의 변화, 법적 지위의 변천을 좇는다. 다음으로는 ‘가갸’라는 말이 어떻게 한글 학습과 연결됐는지, 자음과 모음을 결합한 음절표가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문자를 가르쳤는지를 보여준다. 마지막에는 지난 100년 동안 한글이 정체성을 지키는 끈에서 개인의 표현 도구와 세계인이 함께 누리는 문화로 확장된 모습을 다룬다.
전시에는 한글날과 관련된 한글문화 자료 116건, 세부 수량 121점이 소개된다. 눈여겨볼 자료 중 하나는 국어학자 외솔 최현배가 젊은 시절 조선어강습원에서 받은 수업 증서다.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확보된 자료로 소개됐다. 프랑스국립도서관이 소장한 한글 음절표, 조선어학회 기관지 《한글》 창간호, ‘말모이’ 원고 복제본, 광복 직후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된 ‘조선말 큰사전’ 원고 등도 한글이 단순히 ‘잘 만든 문자’라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연구하고 가르치고 기록한 사람들의 노동을 통해 이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한글날의 의미를 추상적인 ‘자부심’에서 구체적인 작업의 역사로 끌어내린다. 사전은 단어를 모으고 뜻을 정리하고 표기를 다듬는 긴 집단 작업이다. 한글날이 100년 동안 이어졌다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기념일을 한 번 정했다고 해서 저절로 유지된 것이 아니라, 날짜를 고치고 제도를 바꾸고 자료를 남기고 교육을 이어 간 수많은 사람의 선택이 축적된 결과다.
또 하나의 100년, 점으로 읽는 한글 ‘훈맹정음’
한글 점자 · 훈맹정음 100년2026년이 특별한 이유는 ‘가갸날 100년’과 ‘훈맹정음 100년’이 같은 해에 겹치기 때문이다. 송암 박두성은 시각장애인이 일본어 점자에 의존해야 했던 현실을 바꾸기 위해 우리말을 적을 수 있는 한글 점자 체계를 연구했고, 1926년 ‘훈맹정음’을 세상에 내놓았다. 국립한글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이 역시 1926년 11월 4일과 연결된다. 문자 기념일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문자 체계가 같은 시간대에 태어난 것이다.
이를 조명하는 특별전 ‘점에서 세상으로: 훈맹정음 100주년’은 10월 7일부터 2027년 2월 14일까지 인천 국립세계문자박물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열린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국립한글박물관·송암점자도서관이 공동으로 마련한다.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오후 6시에 관람할 수 있고,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전시의 출발점은 관람객에게 익숙하지 않은 기호와 모형만 가득한 공간을 상상하게 하는 데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시각 정보에 크게 의존하는 현실에서, 시각장애인이 촉각과 청각으로 주변을 파악하는 방식을 되돌아보게 한다. 한글날을 ‘누구나 쉽게 배우는 문자’라는 이야기로만 기념해 왔다면, 올해는 그 ‘누구나’의 범위를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지 생각해 볼 때다.
한글의 미래는 ‘보존’과 ‘변형’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디자인 · 디지털 · 인공지능한글날 100주년을 돌아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역설을 만나게 된다. 한글은 오래된 문화유산이지만, 살아 있는 문자이기 때문에 계속 바뀌는 환경에 들어가야 한다. 인쇄술에서 디지털 글꼴로, 키보드에서 모바일 자판으로, 검색과 번역에서 인공지능 언어 모델로 매체가 바뀔 때마다 한글은 새로운 기술적 조건을 만났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느냐, 새롭게 바꾸느냐’의 양자택일이 아니다. 원리를 이해하고 기록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사용 환경을 넓혀 가는 일이다.
글꼴은 그 변화를 가장 쉽게 체감할 수 있는 분야다. 같은 문장도 어떤 글꼴을 쓰느냐에 따라 뉴스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린이 책처럼 보이기도 하며, 럭셔리 브랜드나 게임의 세계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글은 초성·중성·종성이 한 음절 블록 안에서 조합되기 때문에 글꼴 설계자가 다뤄야 할 조합과 균형이 복잡하다. 그만큼 디자인의 가능성도 넓다. 2026년 문체부가 한글발전유공 포상을 알리며 ‘천여 종의 글꼴 개발’을 대표적인 공로로 제시한 것도 한글의 현대적 생명력이 단순한 언어 보급을 넘어 시각문화의 축적과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글꼴은 문자의 표정을 만든다
읽기 편한 본문체부터 실험적 전시 글꼴까지, 한글은 사용 맥락에 맞춰 계속 새로운 얼굴을 얻는다.
노랫말과 영상이 이동시킨다
케이팝·드라마·게임·웹툰 속 한글은 세계인이 문자를 처음 만나는 입구가 되기도 한다.
기계도 언어를 다루는 시대
검색·번역·음성인식·생성형 기술이 확대될수록 풍부하고 정확한 한국어 데이터의 중요성도 커진다.
다만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좋은 언어문화가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맞춤법과 표준어만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 실제 언어의 다양성을 지워서도 안 되고, 반대로 빠른 소통을 이유로 표현의 정확성과 책임을 가볍게 여겨서도 곤란하다. 한글날이 유효한 이유는 ‘우리 문자가 최고’라는 결론을 반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말과 글을 어떤 품질과 태도로 이어 갈지 묻는 공적 계기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1926년 사람들이 ‘가갸날’을 만든 것도 결국 한글을 박물관 안에 보존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배우고 쓰고 연구하며 다음 세대로 넘기기 위해서였다. 100년 뒤의 과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오늘의 ‘다음 세대’는 종이책 독자만이 아니라 영상과 게임을 즐기는 사람, 한국어를 제2언어로 배우는 사람, 점자로 읽는 사람, 음성으로 기기를 조작하는 사람, 기계번역과 인공지능을 통해 한국어에 접근하는 사람까지 훨씬 넓어졌다.
하루만 있다면 이렇게—관심사별 한글날 동선 세 가지
관람 동선 가이드올해 프로그램은 한곳에 모여 있지 않고 날짜도 서로 다르다. 따라서 ‘한글날이니까 광화문에 가면 뭔가 있겠지’라는 방식보다 관심사와 날짜를 먼저 정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특히 10월 6일 현재는 광화문 한글한마당이 막 시작된 날이지만, 용산공원 장교숙소 5단지의 ‘우리 곁에 한글날’ 체험은 이날 휴관한다. 같은 한글주간 행사라도 운영일이 다르다는 뜻이다.
용산공원 장교숙소 5단지의 체험행사는 10월 2일부터 11일까지 오전 10시~오후 5시 30분에 열리며, 10월 6일은 휴관이다. 사전 예약 없이 현장에서 참여할 수 있고 참가비는 무료다. 한글 엽서와 한글 갓 등불 만들기, 세종대왕을 주제로 한 체험 등이 마련된다. 별도 주차 공간은 제공되지 않아 대중교통 이용이 권장된다.
가족 체험형
10월 6~8일 낮 광화문 한글한마당의 어린이·공예 체험을 중심으로 본다. 7일 이후라면 용산공원 체험을 다른 날 묶어도 좋다. 아이에게 역사를 길게 설명하기보다 ‘만들기→보기→짧은 이야기’ 순으로 접근하면 부담이 적다.
역사 집중형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일구이륙 무한이륙’에 시간을 넉넉히 배정한다. 1926년 가갸날, 날짜 변화, 사전 원고, 음절표를 차례로 본 뒤 광화문광장을 걸으면 축제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100년 역사 위에 놓였다는 감각이 생긴다.
접근성과 문자문화형
10월 7일 이후 인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의 훈맹정음 100주년 전시를 중심에 둔다. 한글을 ‘보는 글자’가 아니라 촉각과 접근성까지 포함한 문자 체계로 바라볼 수 있어, 올해의 두 100주년을 가장 입체적으로 연결할 수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면 굳이 모든 행사를 다 채우려 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하나의 전시를 깊이 보고 광화문이나 세종로를 걸으며 일상 속 한글을 관찰하는 편이 올해 주제 ‘내 곁에 한글’에 잘 맞는다. 휴대전화의 키보드 배열, 지하철의 안내 글꼴, 카페 메뉴판의 자간, 어린이 책의 글자 크기처럼 평소 무심코 지나치던 요소를 의식하는 순간 한글날은 박물관 밖으로 나온다.
왜 지금 다시 한글날인가—기념일이 살아남는 방식
기념일이 오늘에도 필요한 이유한글은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뜨면 휴대전화 알림에서 만나고, 지하철 노선도에서 읽고, 회사 메신저와 검색창과 영상 자막에서 수백 번 마주치지만 글자 자체를 의식하는 순간은 드물다. 한글날은 바로 그 익숙함에 잠시 균열을 내는 날이다. 평소에는 정보의 투명한 통로처럼 지나가던 글자를 하나의 문화적 발명품, 역사적 선택, 사회적 인프라로 다시 보게 한다.
100년의 역사를 따라가면 기념일의 의미도 달라 보인다. 1926년의 사람들에게는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가꾸는 일이 절박한 문화운동이었다. 광복 이후에는 공휴일과 국경일이라는 제도적 지위를 둘러싼 변화가 있었다. 오늘날에는 접근성, 디지털 기술, 문화산업, 세계의 한국어 학습자가 새로운 문제로 떠올랐다. 시대마다 질문은 달랐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한글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필요를 느끼고 계속 사용하며 가치를 새롭게 부여할 때 살아 있는 문자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올해 광화문에 설치되는 체험 부스와 문화상품, 박물관의 오래된 원고, 인천의 점자 전시, 12일의 학술대회는 서로 분리된 이벤트가 아니다. 하나는 글자를 즐기게 하고, 하나는 기억하게 하며, 하나는 더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게 하고, 하나는 다음 기술 환경을 준비한다. 100주년이라는 숫자가 이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드문 계기를 만들었다.
한글날을 ‘우리 글자가 우수하니 자랑스럽다’는 문장 하나로 끝내면 이런 복잡한 층위가 사라진다. 자부심은 출발점일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용과 책임이다. 정확하고 쉬운 공공언어를 쓰는 일, 장애가 있는 사람도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만드는 일, 어린이가 읽기 좋은 글꼴과 편집을 고민하는 일, 새로운 기술이 한국어를 충분히 다루도록 데이터와 연구 기반을 쌓는 일도 모두 한글의 현재와 연결된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는 결국 일상으로 돌아온다. 100년 전 ‘가갸날’을 만든 사람들이 글자를 기념한 이유도 사람들이 더 많이 배우고 쓰길 바랐기 때문이다. 올해의 슬로건 ‘내 곁에 한글’이 설득력을 갖는 지점도 거기에 있다. 거대한 기념물보다 매일 쓰는 문장 한 줄, 누군가에게 정보를 정확하게 전하는 표지 하나, 읽기 쉬운 화면 하나가 문자의 생명을 더 직접적으로 증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공기관의 안내문, 병원의 접수 화면, 재난 문자, 교통 표지처럼 ‘실수 없이 이해해야 하는 글’도 한글문화의 중요한 현장이다. 문장이 지나치게 길거나 행정용어가 어렵고, 글자 크기와 명암 대비가 낮아 읽기 힘들다면 아무리 정확한 표기를 썼어도 정보는 사람에게 도착하지 못한다. 반대로 쉬운 어휘와 명확한 문장 구조, 읽기 좋은 글꼴과 충분한 여백을 갖춘 안내는 문자의 장점을 실제 생활의 편익으로 바꾼다. 한글날을 맞아 예쁜 손글씨나 역사 자료만 보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매일 접하는 공공언어와 화면이 정말 누구에게나 읽기 쉬운지 살펴볼 이유가 있다.
개인의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글을 아낀다는 말이 외래어를 무조건 몰아내거나 모든 사람이 똑같은 말투를 써야 한다는 뜻일 수는 없다. 세대와 지역, 직업과 관심사에 따라 언어는 계속 달라지고 새로운 표현이 생긴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맥락을 배려하고,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며, 차별과 혐오를 쉽게 복제하지 않는 태도다. 문자 체계의 정교함과 언어생활의 품질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글날 100주년이 오래 남으려면 ‘잘 만든 글자’에 대한 감탄이 ‘잘 쓰는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야 한다.
한글날 100주년, 자주 헷갈리는 것
2026년이 한글 탄생 100주년인가?
아니다. 훈민정음 반포는 1446년으로, 2026년은 반포 580돌이다. 100주년은 1926년 처음 ‘가갸날’을 만들어 한글을 기념하기 시작한 지 100년이 됐다는 뜻이다.
왜 한글날은 10월 9일인가?
1940년 공개된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인지 서문에 간행 시점을 1446년 9월 ‘상한’으로 적은 기록이 확인되면서, 상순의 마지막 날인 음력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10월 9일이 기준이 됐다.
10월 9일에 광화문 한글한마당도 열리나?
2026 한글한마당-광화문의 공식 기간은 10월 6~8일이다. 다만 광화문 외벽영상 ‘스물넷, 우주’는 8~11일 오후 8~11시 상영 예정이어서 9일 밤에는 볼 수 있다.
‘일구이륙 무한이륙’ 특별전은 한글날 이후에도 볼 수 있나?
그렇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주제관에서 2027년 2월 9일까지 열린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수요일과 토요일은 오후 9시까지 야간 개관한다.
훈맹정음 100주년 전시는 언제부터인가?
10월 7일부터 2027년 2월 14일까지 인천 국립세계문자박물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열린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주요 자료
- 2026 한글주간 공식 누리집 — 한글주간 및 광화문 한글한마당 일정
- 문화체육관광부·정책브리핑, ‘한글날 제정 100주년, 다채로운 문화예술행사 열린다’ — 광화문 행사, 전야제, 외벽영상, 한글문화산업전, 학술대회 안내
- 국립한글박물관, 기획특별전 ‘일구이륙 무한이륙’ — 전시 기간·장소·구성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일구이륙 무한이륙’ 전시 안내 — 관람시간·무료 관람 정보
- 국립한글박물관, ‘점에서 세상으로: 훈맹정음 100주년’ — 훈맹정음 100년과 특별전 일정
-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훈맹정음 100주년 특별전 안내 — 전시 운영 정보
- 국립한글박물관, ‘한글날이 10월 9일인 이유는?’ — 가갸날부터 10월 9일 정착, 공휴일·국경일 변천
- 연합뉴스, ‘1926년 가갸날이 오늘날 한글날이 되기까지…100년의 기억’ — 특별전 주요 자료와 116건·121점 전시 구성 보도
- 국립한글박물관, ‘우리 곁에 한글날’ — 용산공원 체험 운영시간·휴관일·참가 방식
- 문화체육관광부, ‘2026년 한글발전유공 포상’ — 글꼴 개발과 한국어 확산 관련 공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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